인수전 패자 울고 승자도 결국 울었다

웅진·효성 등 7개사 모두 악재…법정관리·매각 등
전문가 “자사 유동성 파악 철저하게 해야 실패 안 해”


[일요서울 | 강휘호 기자] 재계에도 징크스가 존재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업이 중요한 공사를 결정할 때, 논리와 계산 이외의 요소는 조금도 반영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즉, 처음부터 끝까지 세밀하고 철저하게 분석한 뒤 과학적인 근거에만 입각해 일을 진행하지 않겠냐는 설명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도 때론 미신 아닌 미신에 시달린다. 일부 재계 관계자들은 “가끔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불길한 징조들이 더욱 섬뜩하게 다가온다”며 혀를 내두르기도 한다. 거칠 것 없어 보이는 이들에게 도대체 어떤 징크스가 따라 다닐까. [일요서울]이 알아봤다.

승자의 저주라는 말은 치열한 경쟁 상황에서 과도하게 힘을 소비해 경쟁에서는 이겼지만, 결과적으로 잃은 것이 더 많은 현상을 뜻한다.

유래를 살펴보면 미국의 행동경제학자인 리처드 세일러가 1992년 출간한 저서 승자의 저주(The Winner's Curse)가 시작점이다. 이후 학계 등지에서 승자의 저주라는 단어가 통용된 것이다.

특히 기업 인수·합병(M&A) 과정 중 인수 경쟁에서는 이겼지만 과도한 비용 지출로 인해 기업인수 후유증에 시달릴 때 승자의 저주가 자주 거론된다.


인수에 성공한 입장에선 치열해진 경매에서 실제 가치보다 훨씬 높은 가격을 제시해 매물로 나온 기업을 인수했지만 결국 유동성 상태가 악화되면서 그 후유증으로 큰 손해를 입게 되는 상황이다.

대표적인 예로 STX그룹이 인수합병의 대명사와도 같았다. 범양상선(STX팬오션), 대동조선(STX조선해양) 등을 인수하면서 급성장했지만 2007년 세계적인 크루즈선 건조사인 아커야즈(STX유럽)를 무리하게 인수해 그룹이 휘청했다. 현재 STX그룹은 사실상 해체된 상태다.

또 이러한 승자의 저주를 이야기할 때 건설업계가 단골손님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006년 6조4000억 원을 투자해 대우건설을 인수했다. 그러나 입찰 가격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고, 결국 대우건설은 산업은행 품으로 되돌아갔다.

프라임그룹도 무리한 인수합병의 일례다. 사업 영역을 확장하며 승승장구 하는 와중에 동아건설과 삼안을 인수한 뒤 재무위기를 맞았다. 2011년에는 워크아웃 상태에 이르렀다.

모두가 휩쓸린 M&A

그런데 이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승자와 패자 모두 저주에 휩쓸려 버린 인수전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극동건설 인수전이다. 당시 극동건설 예비입찰 제안서를 제출한 기업은 웅진과 STX, 대한전선, 효성, 동양메이저, 한화건설, 유진기업 등 7개사였다. 경매 방식으로 진행된 최종 입찰에 참여한 3개사는 웅진, STX, 대한전선이다.

먼저 경쟁사들을 뒤로하고 극동건설을 인수한 웅진그룹은 말할 것도 없다. 웅진홀딩스는 2007년 8월 론스타로부터 당시 예상가보다 두 배 이상 높은 6천600억 원을 들여 극동건설을 인수했다. 2009년에는 웅진케미칼과 웅진식품 등 계열사들을 극동빌딩으로 옮기면서 시너지 효과를 노렸다.

하지만 웅진그룹은 성장세를 거듭하다 2009부터 건설경기 악화, 섬유시황 부진, 태양광 산업 침체라는 3중고에 빠졌다. 결국 인수합병으로 확대한 사업군이 그룹 전체의 유동성을 빼앗아 갔고, 2012년 9월 자금난을 이유로 지주회사인 웅진홀딩스와 극동건설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STX그룹은 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조선ㆍ해운 업종의 불황으로 STX팬오션이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채권단이 다른 계열사 경영권을 가져가 그룹이 해체되다시피 하는 상태다. 대한전선도 불운하기는 마찬가지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계속된 인수합병으로 늘어난 부채를 갚기 위해 무주리조트 등 계열사와 시흥공장 토지 등 자산을 내다 팔아야했다. 나아가 창업자의 손자인 설윤석 사장이 경영권을 내려놓기도 했다.

극동건설 인수전 초기에 참여했던 효성, 동양메이저, 한화건설, 유진그룹도 악재를 피하지 못했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은 차명재산 관리로 인한 탈세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고,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은 이른 바 동양 사태를 만들어 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배임 혐의로 기소된 바 있고, 유일하게 저주를 비켜간 듯 보였던 유경선 유진그룹 회장도 검사에게 수억 원의 금품 및 향응을 제공한 혐의로 징역 1년6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상황이다.
상황이 이쯤 되자 이곳저곳에선 승자의 저주를 넘어 극동건설의 저주가 만연하다는 소리가 들린다. 7년 전 극동건설 인수전에 참여했던 기업이 거짓말처럼 모두 수난을 당해 나온 목소리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건설경기 불황이 가장 큰 이유라고 분석한다. 백흥기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승자의 저주라는 것은 인수전에 참여하는 기업들이 자신들의 능력과 시너지 효과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생기는 현상”이라며 “특히 건설업계에서 승자의 저주가 많이 보이는 이유는 건설 경기 불황이 너무 심각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극동건설 인수전에 참여한 기업들이 모두 악재를 만난 것도 경기 침체가 가장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면서 “다만 모든 참여사가 극동건설 인수합병으로 인해 피해를 봤다고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우연의 힘이 조금 보태졌다”고 덧붙였다.

한편 극동건설은 스스로도 운이 나쁜 회사로 유명해 극동건설의 저주에 방점을 찍는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3월 법정관리에 들어갔던 이력이 있고, 이후 6년 만인 2003년에 졸업했지만 2012년 다시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hwihol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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