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앞바다 ‘세월호’ 침몰 사태는 사고 수습이 우왕좌왕 길어지면서 온 국민을 트라우마에 빠지게 했다. 인명피해 규모가 워낙 큰 데다 국가시스템이 너무 부실하다는 충격이 그렇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사고 회사나 정부 당국의 안전 불감증이 일으킨 대형사고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그때마다 정부시스템에 관한 문제가 제기됐고 대오각성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 뼈아픈 희생을 겪어온 토대 때문에 이번 세월호 참사는 더욱 실망스럽고, 답답하고, 분노스러운 것이다. 여객선 안전점검은 그야말로 수박 겉핥기식이었다. 어떤 조사에 의하면 해운 당국의 배 한 척당 점검시간이 평균 13분밖에 안 걸렸다. 해양경찰청이 사고 두 달 전 세월호에 대한 특별 안전점검을 실시할 때 ‘선내 비상훈련 실시 여부’ 분야에 최우수 등급의 ‘양호’ 판정을 매긴 것으로 드러났다.
사고 직후 선장을 선두로 간부선원들이 저만 살겠다고 맨 먼저 도망친걸 보면 이 위기대응 메뉴얼은 극히 형식적이었다. 사고 발생 시 승객들의 대처요령 같은 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정부가 지난 2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범정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도록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했으나 오히려 혼선만 초래했다.

행정기관 간 불협화음이 계속되는 현장에 비통한 얼굴로 대통령이 들이닥치고 나서야 겨우 대오가 맞춰지는 듯 보였으나 컨트롤타워 없는 대책본부가 10개나 돼 우왕좌왕 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국가 재난 통신망조차 설치돼 있지 않아 통신 이원화로 적절시간을 놓친 건 부끄럽고 통한스럽다. 안행부, 해경, 해군 간 교신조차 안 이뤄졌으니 더 무슨 소리를 할 것인가.

큰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재난대응 입법 목소리를 높인 여야 국회의원들은 국회에서 180건에 이르는 안전관련 법안을 깔아뭉개고 있었다. 선박안전관리 업체는 2100개 해운업체로부터 회비를 받아 운영해왔으니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겨놓고 안전하게 관리해 달라고 부탁한 꼴이다. 세금 받아가는 국가 해양재난 시스템이 민간을 못 따르는 기도 안 차는 대한민국상황이었다.

3년 전 천안함 사건의 판박이로 나타나는 현실이 치를 떨도록 만들었다. 지난해 여름에는 충남 태안 안면도에서 해병대 캠프에 참가한 고교생 5명이 목숨을 잃었고 ‘세월호’ 참사 불과 두어 달 전엔 경북 경주 리조트 붕괴사고로 113명의 대학생 사상자가 발생했다. 학부모들 모골이 송연해져 아이들 학교 보내기가 겁날 판이다.

다시는 대형 안전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정부 약속은 지키기 위한 약속이 아니었다. 큰 사고 때마다 내놓는 적당한 수사였을 뿐이다. 1970년에 부산 제주 간 여객선인 남영호 침몰사고로 326명이 숨졌고 1993년엔 서해 페리호 침몰로 292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지만 20년씩 후의 우리 해양사고 대처수준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그대로였다.

박근혜 정부의 핵심 화두가 ‘비정상의 정상화’다. 땅 위에서는 건물 붕괴로 생떼 같은 수백 명 목숨들이 죽어나가고 바다에서는 배가 뒤집혀 수백 명이 죽어 나오는 대형 참사가 새정권 초반기에 두 달 간격으로 발생했다. 오늘의 정치권력이 만들어내는 다른 어떤 물리적 성과보다 하나부터 열 가지가 비정상인 나라를 정상화 시킨 업적이 만세에 빛나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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