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에 살고 있는 이종복(가명, 남)씨와 정미혜(가명, 여)씨는 혼인 10년차다. 남편 이씨와 부인 정씨는 혼인하여 아들과 딸을 낳고 여느 부부처럼 살았다. 부부는 자식들이 커가는 것을 보면서 별 탈 없이 지내는 듯했다. 시누이들이 가끔 부부 문제에 끼어들었지만, 정씨는 자신만 참으면 되겠지 하는 생각에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자녀 둘을 키우는 아내 정씨는 자연스럽게 전업주부로 살았다. 한 해 두 해 지나가면서 집안일과 아이들은 정씨 몫이 되었고, 이씨는 직장을 핑계로 귀가시간이 늦어졌다. 이씨는 직장생활의 스트레스를 정씨에게 풀었고 처가의 아픈 가족사가 마치 아내의 약점이라도 되는 양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정씨는 참고 지냈지만 부부사이는 멀어져만 갔다. 부부관계도 뜸해지다가 각방을 쓰게 된 것도 3년째다. 이씨는 아내에게 대놓고 ‘우리는 부부도 아니고 아이들 때문에 사는 남남’이라고 막말을 퍼부었다.

이씨는 다른 여자와 밤늦게 전화 통화를 하거나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지만 정씨는 굳이 문제삼지 않았다. 그러다가 정씨는 우연히 알게 된 다른 남자와 낮에 몇 번 만난 적이 있는데 남편 이씨가 정씨의 휴대전화를 뒤지다가 이를 발견하고는 아이와 재산을 모두 포기하고 몸만 나가라고 요구했다.

이런 경우 얼핏 보면 아내 정씨의 외도가 혼인파탄의 원인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기존 부부관계를 정리하지 않은 채 다른 이성을 만났다는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인 것이다.

남자와 여자. 가족의 출발점이자 종착지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남녀의 결합에 의해 자녀가 출생하고 다시 그 자녀들이 또 다른 남녀의 결합을 이룸으로써 가족이 확대된다.

가족의 해체도 이와 같은 남녀 결합과 관련된 문제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배우자의 외도(부정행위)는 대표적인 이혼사유다. 외도가 발각된 경우 용서와 화해로 위기가 소나기처럼 지나가는 경우도 있지만, 이혼에까지 이르는 경우가 많다.

남녀가 더 이상 서로를 가족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남편 또는 아내로서 권리와 의무를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앞선 사례를 살펴보면 부부가 각방을 쓰면서 서로 상대방을 가족으로 여기지 않는 경우 이미 혼인이 파탄에 이르렀다고 봐야한다. 혼인 파탄 이후 쇼 윈도우 부부라면 배우자의 외도를 간통 또는 이혼사유로 주장하기 어려울 수 있다. 혼인파탄과 외도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설사 외도가 혼인파탄의 원인이라고 하더라도 재산분할과는 별개의 문제다. 유책배우자라도 재산분할청구권이 인정된다는 것이 대법원의 확립된 판례다.

남녀 사이가 멀어질 경우 언제라도 외도가 남녀 사이에 끼어들 수 있다. 그래서 아내 또는 남편이 가족에서 이탈하지 않게 늘 보살펴야 한다. 부부의 혼외 이성문제, 잘못한 만큼만 책임져야 하지 않을까.

시부모의 경제적 지원이 혼인계약 내용인 경우,
시부모는 부양의무 이행해야

혼인이 가족법상의 계약이라는 것에는 다툼의 여지가 없다. ‘당사자 간에 혼인의 합의가 없는 때’를 혼인무효 사유로 규정한 민법의 규정에 비추어 명백하다. ‘신분에서 계약으로’라는 구호가 말해주듯이 근대 서구 시민법 체제는 중세 봉건적 신분관계를 계약관계로 발전시켰다.

우리 가족법도 종래 신분관계의 구속에서 점차 개인의 의사를 존중하는 계약으로 바뀌고 있고 이와 같은 현상은 현재 진행형이다.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하고 이혼전문변호사가 지상파 방송뿐만 아니라 케이블 방송과 종합편성채널까지 접수한 상황을 보면 우리 가족법과 가정법원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봐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가족법은 일본의 가족법에다가 우리 관습과 서구의 제도를 덧붙여서 만들었고 그 해석은 일본의 예를 따랐다. 가정법원 역시 이런 입법과 해석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박사과정 공부를 하고 있는 정모씨는 아직 학위를 받지 못하고 직장도 구하지 못한 상태다. 하지만 혼인이 늦어지는 것을 염려한 정씨의 부모는 아들 결혼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했다. 정씨는 선을 통해 만난 김모씨에게 첫 눈에 반했고 정씨는 김씨와 결혼까지 생각까지 하게 됐다.

정씨의 부모도 정씨가 김씨와 결혼하는 데 동의했을 뿐만 아니라 정씨가 직장을 구할 때까지 경제적으로 지원해주기로 했다. 김씨는 비록 정씨가 직장이 없더라도 정씨 부모의 지원 약속을 믿고 결혼을 하게 됐다. 게다가 김씨는 정씨와 정씨 부모의 요구대로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김씨의 학위 준비를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정씨의 부모가 애초 약속대로 경제적 지원을 해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런데, 정씨의 부모가 결혼 전 약속과 달리 지원을 중단한 경우 아내 김씨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내 김씨는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고 시부모와 남편에 대한 원망으로 살거나(갈등이 깊어지면 이혼까지 하게 된다), 팔자 탓을 하면서 경력단절이라는 약점을 딛고 취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할까? 슬하에 어린 자녀라도 생겼다면 상황은 더욱 어려워진다.

사실 정씨와 김씨 사이 혼인계약의 내용은 정씨가 박사학위를 받고 직장을 구할 때까지 정씨의 부모님이 경제적으로 지원해 주기로 한 것이다.

즉, 정씨와 김씨는 부부로서 부양의무가 있고, 정씨의 부모는 정씨의 직계혈족으로서 아들과 며느리에 대한 부양의무가 있다. 정씨와 그 부모는 김씨와 사이에 혼인계약을 체결하면서 부양의 방법과 정도에 관하여도 협정이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내 김씨는 체념하거나 이혼을 할 것이 아니라 자력이 있는 시부모에게 부양료 청구를 할 수 있다.
정씨의 부모는 애초 결혼할 때 약속한 생활비(부양료) 지급이 어려울 경우에는 가정법원에 사정변경을 이유로 부양료 감액청구를 할 수 있을지언정 며느리의 부양료 청구 자체를 거부할 수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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