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배려로 나만의 공간이 마련된 뒤 남편 및 자녀와의 관계도 더욱 좋아졌어요. 삶의 활력이 생긴 셈이죠.”일본유학을 마치고 상하이에 위치한 일본계 회사에 다니는 ‘커리어 우먼’ 마오(40대) 씨의 말이다. 중국의 대도시에서는 요즈음 전문직 고소득 여성들, 소위 커리어 우먼 사이에서 세컨더리 하우스(secondary house) 개념인 ‘제2의 가정’을 갖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처럼 퍼지고 있다. 다시 말해 사회적으로 비교적 성공한 전문직 여성들이 업무와 가정으로부터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며 재충전하는 ‘나 만의 가정’이 소리소문없이 확산되고 있는데 마오씨도 그 중 하나이다. 나만의 가정을 갖기 전 그녀는 쌓여만 가는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퇴근 후에도 늘 마음이 초조하고 가슴도 무겁기만 하여 딸 아이의 양육과 가사 모두에도 전혀 신경 쓸 수가 없었다고 한다.

또한 그것이 단초가 되어 남편과 가끔 말다툼도 벌이다가 별거까지 언급하게 되는 등 가정붕괴까지 초래할 뻔 했다고 한다. “의사의 권유로 나만의 시간을 가질 필요를 느꼈는데 남편이 선뜻 동의, 회사와 집 사이에 별도의 원룸 아파트를 구입했어요. 집안 인테리어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들로만 했구요. 이런 나만의 공간이 마련된 후 퇴근 후 잠깐씩 들러 느끼는 짧은 휴식이 삶에 활력을 가져다 주었죠. 결국 우리 가족을 살린 셈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은 상하이 굴지의 로펌에 다니는 미국유학파 출신 뚜원화(杜文花·30대 초)씨에게도 나타난다. 하루가 멀다하고 몰려오는 외국기업에 대한 투자자문 및 컨설팅으로 인해 감당할 수 없는 업무량이 그녀의 신혼(결혼 2년차)생활을 엄습, 급기야는 회사 인근에 아담한 원룸 아파트를 구입하게 되었다. 그녀는 주말을 포함, 일주일에 3일 혹은 4일만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귀가한다고 한다.

“남편에게는 미안하지만 도저히 살 수가 없을 것 같았어요. 결혼생활도 중요하고, 회사 생활도 중요하고…. 중국의 전통상 이해하기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남들 눈치만 본다고 나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잖아요.” 미국유학파 답게 자신의 견해를 다부지게 말하는 그녀는 그녀만의 공간 마련이 현명한 선택이었으며 이후 어느 정도 삶에 여유가 느껴지게 되었다고 토로한다. 그런데 이러한 신종 트렌드에 대해 한 중국인 사회학자는 기혼 여성이 자신만의 공간을 마련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독립한 여성의 질적 삶의 추구욕을 반영한 것으로 가정생활에 긍정적 변화를 가져다 줄 수도 있지만, 불륜 등의 부작용도 우려된다고 평가한다. 최근 중국 여성의 성의식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53%가 자신의 성적 능력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는 등 중국 여성들의 성관념이 점차 대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에는 현재 이른바 ‘AA제’ 가정이란 것이 또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추세이다. AA제 가정이란 부부가 주택구입비용이나 생활비, 그리고 자녀 교육비 등 가정에서 필요한 모든 경제적 지출을 동등하게 부담하는 가정형태를 말한다. 기자는 이와 같은 AA제 가정을 꾸려나간다는 한 중국인을 소개받아 전화로 인터뷰하였다. 이미 초등학생인 딸을 두고 있다는 팅(丁·남·30대)씨는 수년 전부터 교육비를 포함한 모든 생활비를 아내와 동등하게 분담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우리(중국)의 전통 가정 시스템에 의하면 말이 안되는 것이겠죠. 하지만 얼마나 합리적입니까? 이러한 면에서 볼 때 저는 중국사회의 선구자인 셈이죠.” 사실 팅씨 말마따나 그와 같은 중국인이 많지는 않다. 하지만 일본사회에서는 이미 선보인지 꽤 되었고 한국사회에는 아직 익숙지 않은 AA제 가정이 요즘 중국의 젊은 부부 사이에서 조용히 확산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고 한다. 중국사회의 또 다른 한 트렌드로 스며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앞서 말한 중국인 사회학자에 의하면, 이처럼 AA제 가정이 중국에서 확산되고 있는 것은 중국 가정에서 남성에 의존했던 여성의 경제적 독립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는 AA제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이 제도가 부부 사이의 평등과 독립을 도와 주는 제도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그에 의하면 어떤 이들은 가정불화의 한 원인인 금전 문제에 대해 AA제 가정은 부부 사이의 공정한 재산분배와 사용을 보장하므로 부부 사이의 금전 불화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고 추켜세운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이런 가정의 부부들은 서로의 개성과 인격을 존중하므로 부부의 정과 가정의 화목이 돈독해진다며 AA제야말로 부부가 서로 의존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상대방을 존중해 원만한 결혼생활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첩경이라고 강조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중국인들은 아직은 재산처리와 부부 사이의 감정을 연결시키는 일 자체를 가정에 대한 모독으로 받아들이는 등, AA제에 부정적인 견해를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기자는 대학교수인 중국인 지인들 몇몇에게 그들의 견해를 물어 보았다. 그러자 그들은 대부분 “결혼생활이란 두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모든 부담을 구분하지 않고 나눠 맡는 것인데 AA제 가정을 이룬 사람들은 멀지 않아 ‘갈라 설’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들과 같다. 결혼한 사람이라면 도망갈 여지를 남겨두지 말고 결혼생활을 원만하게 꾸려갈 생각을 해야한다”며 완강히 반대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면서 어떤 이는 “AA제 가정은 현대사회에서 사람들 사이의 감정이 갈수록 삭막해지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라며 중국사회에 만연하는 서구의 퇴폐적 자본주의가 중국을 이 따위로 전락시키고 있다고 주장, ‘사상교육 고양’을 말하며 웃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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