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나그네길…” 외로운 중국 속의 한국학생들.상하이의 가을바람은 소슬하기 그지 없다. 중국대륙을 숨가쁘게 이어온 장강이 그 마지막 숨을 끝자락 황포강에서 거칠게 토해냄인지 속살까지 오들오들 떨리는게 아주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다. 그러다가도 무슨 일이 있었냐는 식으로 반짝거리는 햇살은 정말이지 이곳 날씨에 익숙지 않은 외국인들을 ‘상하이의 가을=병원찾는 계절’로 만들고 만다.“한순간 매정하게 들리더라도, 저는, 절대 맡아서는 안된다고 충고하죠.”상하이 소재 한 특례학원 서무주임 박모(40대·여)씨는 단호한 어조로 이렇게 말한다. 그녀는 한국에서의 중국인기를 반영함인지, 중국유학에 대해 많은 상담을 받는다고 한다. 그런데 상담자 중에는 자녀를 중국에 있는 지인이나 친척에게 맡기려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 지인이나 친척들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상담하곤 한다는 것이다. 이에 그녀는 단호히 거절하라고 조언한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되는 경우를 많이 봤기 때문이란다. “아이들 키우는 것이 어디 보통 일입니까?!” 온화한 미소속에 박씨는 그녀의 교육론을 들려준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기의 아이들, 언제 어디로 어떻게 튈지 모르는 ‘럭비공’과도 같은 그들. 그들에게 있어 성장환경, 교육환경이 얼마나 중요한데 그 시기의 아이들을 타인에게 맡긴다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부모와 함께 온 아이들도 얼마나 외로워하는지 안타깝기 그지없는데 말이에요. “그녀 말도 그렇거니와 기자가 직접 만나 본 중국의 국제학교나 중국학교를 다니는 우리의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은 적잖은 외로움에 시달리는 것 같다. 그런데 그 외로움이란게 한국에 있을 그 또래의 친구들에게는 필요없는 성질의 것이다. 우리 학생들은 많은 경우 상사원이나 주재원 등으로 중국에 부임하는 부모를 따라 중국에 온다. 그런데 그들은 언제 다시 귀국할지, 다른 곳으로 발령날지 모르는 불안정한 부모님 신분만큼 그들의 중국체류 또한 언제까지 지속될지, 과연 재학중인 학교에서 졸업까지 맞이할지 등, 불안정한 상태에서 보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로 중국속의 한국 학생들은 유`청소년기의 ‘죽마고우’와는 거리가 먼 ‘뜨네기 악사’(한 한국인 학생의 표현)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국제학교에 다니는 탓에 외국인 친구는 많지만 역시 한국인끼리가 제일 잘 통해요. 그런데 한국인이 너무 적고 또 서로 바쁘다 보니 속 터 놓는 친구까지 되기가 쉽지 않아요….”상하이 소재 AS(아메리칸 스쿨)에 다니는 고교1년생 양군의 말이다. 그는 2년 6개월전에 상사원인 아버지를 따라 가족과 함께 중국에 왔다고 한다. 이후 현재의 국제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친구들의 잦은 전학, 귀국 등으로 인해 ‘진정한 친구’ 사귀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란다. 그래서 한 때는 외국인 친구를 위주로 사귀려 하였지만 이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문화와 전통, 관습 등의 차이를 메우기가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외국인 친구들 대부분도 그들 부모가 그 나라의 상사원이므로 몇 년 안되어 떠나기 때문에 뒤끝이 허탈하게 된다고 한다.

양군은 중국생활속에 남는 것은 이래저래 깊어가는 외로움 뿐이라며 천진하게 웃는다. “친구 사귀기가 싫어요. 친할만 하면 떠나버리니….” 중국생활 5년째라는 이군(고교 2년)의 말이다. 영국계 국제학교에 다니는 그도 처음에는 외국인에 대한 호기심에 외국인과의 교제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지만 ‘많은 것이 너무 달라’ 한국인을 중심으로 교우관계를 다져왔다고 한다. 하지만 조금 친해지려 하면 떠나고만다는 것이다. 그 중에는 꽤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도 있어 메일로 이야기를 주고 받기는 하지만, 역시 ‘보지 않으면 마음도 멀어지기 마련’이란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그 우정도 점차 머리속에서 옅어져 안타깝다는데 결국 그 공허함을 컴퓨터 게임이나 인터넷 등으로 떼운다며 변명아닌 변명을 둘러댄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은 대부분 입학에서 졸업까지 함께하며 평생 친구가 된다는데 우리들은 그런 동창회, 동문회라는 것 잘 몰라요. 저마다 잠시 있다 귀국하면 그만인 걸요. 나그네가 따로 있나요. 우리가 그렇지 뭐.” 이군은 친구들 사이에서 자기들의 주제곡(?)이 한 원로 가수의 ‘인생은 나그네길’이라고 들려주기도 한다.

상사원 부인 최(40대)씨. 그녀는 남편의 주재원 발령으로 인해 두 자녀와 함께 3년전 중국으로 왔다고 한다. 처음에는 북경지사에서 1년 남짓 근무했고, 이후 상하이로 이동발령받으며 2년 정도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 자녀 교육 문제 때문에 가슴이 타들어간다고 한다. “남편이 본국 발령을 받았어요. 이제 내년 초가 되면 귀국해야 하는데 겨우 국제학교에 익숙해지기 시작한 중1, 중3 과정에 다니는 아이들이 한국의 낯선 학교제도에 잘 적응할 지… 이러다가 우리도 졸지에 중국판 기러기 가족(박스 기사 참조)이 되는 것은 아닌지 원”. 그녀에 의하면 한국기업의 상사원으로서의 외국생활은 나쁘지 않은 것 같다고 한다. 대우도 좋고 그만큼 경제적 여유도 생기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한가지, 교육과정에 있는 자녀들을 둔 부모의 입장에서는 자녀교육이 가장 큰 골칫거리라고 한다. 전술한 바와 같은 이동발령이나 귀국발령 등으로 인해 아이들이 한 곳에서 뿌리를 내리기 힘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사정은 비단 저희 집만의 일이 아닙니다. 먼저 와서 지낸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똑같고 또 나중에 온 부모들도 똑 같은 고민을 하고 있으니까요.”“한국의 교육부는 이러한 상사원, 주재원들을 위해 각 대학에 특례입학 제도를 두고 있는데 이 제도를 통한 한국대학으로의 입학도 쉽지는 않아요. 경쟁이 치열할뿐 아니라 그 자격조건도 까다롭기 때문이죠. 따라서 그나마 얼마 안되는 이곳 아이들은, 친구지만 속으로는 쓰러트리지 않으면 안되는 경쟁자이므로 그 속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대단한 것 같아요.” 학원의 서무주임 박씨의 주선으로 최씨와 함께 만난 또 다른 부모 이(40대·여)씨의 토로이다. 한국과는 달리 친구로서 만날 수 있는 폭이 가뜩이나 좁은데다 경쟁상대가 되어야 하고 또 학교별 차별(국제학교 재학생은 중국학교 재학생을 무시한다.)이나 왕따 등으로 인해 중국속의 우리 아이들은 안타깝게도 지리멸렬의 상태에 놓여 있는 상황이다.

청소년기는 부모로부터 떨어져 나가기 시작하며 그 빈 자리를 또래의 친구들이 서로 채워주며 채워받는 가운데 인성을 형성해 나가는 시기가 아닌가. 인생의 소중한 첫 단추를 끼우는 청소년기, 그런데 유학나온 우리 아이들은 선택의 폭이 제한된 상태에서 들쭉날쭉하게 이리저리 휩쓸리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느껴졌다. “유학나온 학생들 가운데 의외로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보이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선망하는 유학길에 올라, 그것도 누구나 부러워하는 미국학교니, 영국학교니, 싱가포르 학교니 하는 국제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실상을 보면 자신을 둘러싼 안팎의 상이한 환경으로 인해 당황하게 되는 것이죠. 한국환경인 가정, 영어권 환경인 학교, 이에 더해 밖으로 나오면 또 다른 환경인 중국이 펼쳐지고…. 이런 현실속에서 아이들은 몇 안되는 친구들과 함께 외롭게 고민하며 방황하는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그런데 청소년기를 계속 불안정하게 보내면…” 본지에서 이미 소개한 바 있는 상하이의 K아카데미 K원장의 충고이다. 자녀 유학을 생각하는 부모들이 다시 한번 곰곰 되새겨 볼 필요가 있는 부분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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