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에서도 어김없이 공영파 방송 KBS 사장의 편향성 논란이 일어났다. 기자들의 제작 거부로 뉴스 프로그램이 파행 방송되는 모습을 민주화 이후 좌 우 정권 초 중반기에 어김없이 봐왔던 터라 전혀 생감스럽지가 않다. 정부 조직이 해체되는 엄중한 뉴스가 실시간 진행되는 긴박한 시기에 돌고래 다큐를 내보내고 있는 KBS 상황이 코믹하고 딴 세상 같았다.

파행 전모가 예전과 다른 게 있다면 이번 길환영 사장의 퇴진 요구가 KBS에서 이념 성향과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한 목소리를 냈다는 사실이다. 노무현 정부를 지나 이명박 보수정권 때의 김인규 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파업에는 진보 성향의 제2새노조만 참여했었다. 이번처럼 노선 다른 양대 노조 모두가 길 사장에게 등 돌린 이유를 놓고 여러 말들이 나왔다.

낯익은 풍경의 출근 저지 투쟁이 사람들 얼굴만 바뀌었지 판박아 놓은 듯 똑같이 나타났다. 역대 KBS 사장들은 취임식을 갖기도 전에 낙하산 인사 논란과 함께 출근 저지 투쟁의 주인공으로 언론에 클로즈업되기 일쑤였다. 작금의 KBS 파장에 불을 지핀 사람은 김시곤 전 보도국장이다. 김 전 국장은 청와대의 인사 및 보도 통제가 이명박 정부 때부터 시작됐다고 했다.

그는 무슨 이유에선지 KBS의 정치적 편향성 논란이 극에 달하고 이념 갈등이 격렬했던 노무현 정부 시절 정연주 전 사장 때의 KBS 사태를 일절 거론치 않았다. 정 씨는 임기 내내 정권 편향적인 방송을 내보내 ‘코드 방송’이라는 비난을 샀다. 그렇게 정씨는 2006년 연임을 따냈지만 KBS 노조의 출근저지 투쟁에 몰려야 했다.

유명한 ‘역주행 출근’ 일화까지 만들고 버텼지만 2008년 이명박 정부에서 부실경영을 이유로 해임되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이같이 일어나지 말아야 될 일들이 공영방송 사장 자리를 집권에 따른 전리품으로 여기는 바람에 매번 발생한 것이다. 노조의 정치적 성향이 불쏘시개가 됐다. 노조와 대치중인 길 사장이 “좌파 노조에 의해 방송이 장악되는 것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한 명분이 힘을 받게 되면 KBS는 실체적 주장이 밀려나고 기존의 이념 싸움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다.

투쟁 방식이 거칠고 격앙된 자리엔 순리가 통하지 않는다. 어느 사이 투쟁 본질이 사라지고 격한 이념 대결로 변화되는 모습을 자주 봐왔다. KBS 뉴스가 며칠째 전파를 타지 못하면서 시청자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직접 수신료를 받는 공영방송이 시청자들의 시청권을 빼앗고 있는 마당에 그냥 입 다물고 있지 않겠다는 분노였다.

공조직이고 사조직이고간에 순리가 설 자리를 잃은 채 완력이 지배하는 조직에서 국민 이목 따위는 아무 소용이 안 된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 회자됐던 ‘땡전뉴스’ 망령이 아직까지 KBS의 분란을 주도하는지 모른다. KBS의 민주화 후 달라진 그림은 좌 우 정권 교체기의 이념 갈등이 ‘코드 방송’ 신조어까지 만들어낸 점이다.

KBS가 입만 열면 강조하는 바가 ‘국민의 방송’이다. 재정이 사실상 의무 부담금인 시청료로 충당되는 국민이 주인인 방송이기 때문이다. 그럼 다른 어떤 방송보다 공정해야 할 의무가 확실한데도 툭하면 정권 편향성 시비를 일으키는 건 이념충돌과 지배구조의 두 가지 문제다. 시청자들이 더 이상 이런 문제의 담보가 될 수 없다는 선언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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