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打的去韓國!!”상하이의 택시에 오르면 종종 눈에 띄는 차내 광고의 하나이다. “택시 타고 한국에 가자!”는 말이다. 아니, 택시를 타고 한국에 간다니 무슨 말인가.위 슬로건 옆으로는 몇 명의 대표적 한류스타들의 사진이 있고 그 아래에는 하얀 가운을 걸친 의사들의 사진과 그들의 약력이 적혀 있다. “한국 ○○대학 의과대학 졸업. 한국성형외과학회 회원. 한국○○성형외과의원 원장 및 상하이 ○○성형외과 원장” 이들은 다름아닌 한국에서 온 한국인 성형외과 전문의들이다. 즉 택시를 타고 한국으로 가자는 것은 이들이 개업한 병원(성형외과)에 가서 한국의 한류 스타들처럼 멋지게 변신하자는 것이다. 이는 바로 중국내 한류의 현주소를 잘 대변하는 것 중의 하나이다.중국에 오는 한국인 가운데 의사들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황해를 건너는 한국인이 증가하는 만큼 이들의 증가도 예상되는 일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일부 의사들의 고객은 한국인이 아니다. 그들은 한국의 연예인과 같아지기를 원하는 유행에 민감한 부유층 중국인을 타깃으로 중국행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즉 그들은 중국에서 지속되고 있는 한류덕 좀 보려고 중국 땅을 밟고 있는 것이다. 상하이의 중심 번화가 난징똥루(南京東路)의 한 빌딩에 위치한 ㅇ성형외과. 입구에 들어서면 한국의 유명배우 사진 10여장이 떡 버텨선 채 중국 고객들을 설레게 한다. 사실 중국에서 한국 배우나 가수들을 성형수술의 모델로 선망하는 것은 더 이상 새로운 흥미거리가 아니다. 그러나 한류 초기에는 한, 두명의 한류 스타 사진을 내걸고 중국병원들에 의한 ‘변신작업’이 이뤄지곤 하였다. 한류 역시 과거의 ‘일류(日流)’처럼 잠시 반짝할 뿐이라 예상되어 한국인 성형외과 의사의 중국진출은 생각지도 못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초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한류는 묵은 나무 배심좋게 타들어가 듯 그 열기가 지속되고 있다.

“성형수술을 위해 한국을 찾는 중국인은 이미 연간 1,000명 선을 넘어섰어요. 이쯤 되면 이제는 우리가 고객을 현장에서 맞이해야 할 때가 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터져나오는 미소를 차마 감추지 못하는 ㅇ성형외과 원장이다. 그런데 이 성형외과 원장은 한국인이 빚은 한류라는 떡을 한국인이 먹고 있는, 즉 한류 덕을 제대로 보고 있는 몇 안되는 케이스라 할 수 있다. 중국인이 어떤 사람들인가. 자동차의 해적판도 며칠이면 만들어 내질 않던가. 그 속에서 그가 선전할 수 있는 것은 다행히 그가 한국인에 의한 한국만의 ‘색채’가 아니면 안되는 독특한 분야에 있으므로 중국인이 감히 범접할 수 없게 차단되어 있기 때문이다. 본지에서는 이미 중국에서의 한류는 우리 한국인에게 이렇다 할 경제적 실익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음을 소개한 바 있다. 한류스타들의 활동을 담은 비디오나 CD, 혹은 포스터나 사진집 등이 해적판으로 제작, 판매되어 중국인들의 배만 불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이 나아지기는 커녕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다.상하이 중심지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아파트 밀집지역. 이곳에는 행인들의 발걸음을 주춤거리게 하는 한 대형 미용실 공사가 한창이다. 한글로 “나의 마음속 헤어”라는 컨셉이 적혀있는 그곳의 상호는 사진에서 보 듯 <귀염성>이다. 인테리어 공사를 진행하는 틈틈이 종업원들에게 한국어 인사를 비롯, 정중한 한국식 서비스 매너를 지도하고 있는 30대의 남자 사장. 그런데 가만 들어보니 그의 우리말 발음이 어딘가 어색하다. 한국인의 한국어 발음도 아니고 그렇다고 조선족 발음도 아닌 것 같고….“한국인 스타들의 헤어 스타일이라면 뭐든지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라며 온갖 헤어스타일이 수록된 몇 권의 사진집을 꺼내보이는 사장은 중국인이다.

이 미용실은 다름 아닌 중국인에 의해 한국인이 경영하는 곳처럼 꾸며지고 있는 것이다. 사장은 그 자신도 미용사로, 한류에서 한국식 미용실 오픈이라는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한국에 가 본적도, 한국어를 제대로 배운 적도 없다는 그는, “이렇게 하면 한국인이 경영하는 곳으로 착각하기 쉽지 않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래야만 사람들이 더욱 많이 몰려들지 않겠냐며 천연덕스런 표정을 짓는다. KFC. 얼마 전까지만 해도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이라는 브랜드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세계적인 브랜드. 그런데 ‘KFC 중국’에서 최근에 새로운 기획상품을 출시하였다. “韓國泡菜, 猪肉卷”, 즉 한국김치 돼지고기 말이가 그것이다. 우리의 ‘상추에 싸먹는 돼지불고기’를 응용한 음식인데 중국대륙의 한류열풍에 세계적인 브랜드의 프랜차이즈 KFC도 한몫 챙기려 달려 든 것이다. 현재 TV 광고를 대대적으로 내보내며 중국인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는 그 맛을 보니, 한국음식 모양을 갖추기는 했지만 기름기 짙은 것이 중국 맛임이 역력하다. 한류의 유명세만 이용, 포장은 한국식이나 입맛 만큼은 중국인의 구미에 맞춘 교묘함이 다분하다.

그런데 이 KFC 매장, 바글바글 거리는 중국인들 사이로 우리의 태극마크 선명한 이 메뉴가 오고가는데 한류와 중국인의 기획력이 또 다시 느껴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같은 한류이지만 중국의 한류는 일본의 그것과 상황이 매우 달라요. 13억, 13억 하며 중국을 두드리지만 우리는 한류가 만든 떡 벌려진 알밤조차 제대로 꺼내먹지 못하고 있잖습니까. 재중 한국인은 서로의 작은 밥그릇만 가지고 티격태격 거리기 일쑤고… 우리는 더욱 머리를 써야 해요. 지금 우리에게는 이 한류의 과실을 잘 따낼 수 있는 기획력있는 사람들이 너무 부족해요. 정말이지 속상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한류하면 입가에 게거품을 머금고 마는, 자칭 한류 ‘터줏대감’인 한국인 김씨는 오늘도 또 억장이 무너진다. 그런데 작금의 중국내 한류를 바라보는 기자에게도 그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한류로 인한 한국인으로서의 가슴 뿌듯함과 당당함. 그러나 허탈함도 물밑듯 밀려온다. 중국속 한류, 언제까지 죽쒀서 남 좋은 일만 시킬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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