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은 경이의 이면에는 손대기 힘든 난제가 쌓여 감도 부인할 수 없다. 그렇지만 대도시 향락가를 고급 리무진이 들락거리며 흥청망청 돈을 뿌려대는 졸부들이나 하루 12시간 이상을 기계에 시달리는 공장 노동자들도 일한 만큼 두둑해진 주머니에 아직은 표정관리에 바쁘기만 한 것 같다. 몇년전까지만 해도 회자되었던 ‘중국회의론(중국은 힘들 것이다 등)’이나 ‘중국부정론(중국은 얼마안가 몰락할 것이다 등)’은 찾아보기 힘들다. 중국만의 독특한 사회주의 체제실험이라는 거시적 관점의 불안감은 일반 삶의 현장속에 녹아들어 마치 아무 문제없다는 듯 능청스러운 것 같은 것이다. 2004년 연말을 보내며 올해의 ‘중국’에 대해 재중국 외국인들과 중국인 자신들의 말을 담아보았다. “중국은 주변에서 들려오는 다양한 충고에 귀를 잘 기울이고 있습니다. 중국정부는 외부로부터 지적받은 우려에 대해 수정하거나 과감히 떨쳐버리는 등 매우 유연한 자세를 취하고 있고요, 인민들은 정부가 이끄는 대로 잘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죠. 이러한 모습속에서는 ‘13억의 혼연일체’라는 단어가 떠오르기도 합니다.”상하이 소재 KOTRA의 한 관계자가 말한 중국평가이다.

중국에서 벌써 10여년을 지내고 있는 그는 ‘독특한 사회주의적 자본주의 정착의 성공’과 ‘평화적 정권교체’까지 이뤄낸 중국이므로 중국정부의 능력에는 이제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향후 10년은 중국이 탄탄대로를 걸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한국에서는 정치적 요인도 고려한 ‘중국경계론’이 부상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일리있는 말입니다. 하지만 대세는 바꿀 수 없어요. 중국 현지에서 중국을 보면 잘 알잖아요. 중국에 대한 세계 각국의 ‘구애’가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우리 한국은 지리적으로 제일 가깝다는 이점을 더욱 잘 활용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국에 대해 더욱 면밀히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경제적 측면에서 볼 때 매년 중국을 찾는 한국인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지만 이들을 위한 체계적인 자료가 아직도 너무 부족해요.” 한국의 중견 D그룹의 중국법인 대표를 맡고있는 기업인의 말이다.

중국에서 중국경기의 활황을 잘 이용하려면 소위 ‘묻지마’식 투자로는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과 다를 바 없다며 단호한 태도를 취한다. “중국의 2004년은, 개인적으로 볼 때, 점수로 치자면 85점 이상에 해당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중국대륙이 경제발전의 단 맛을 차분히 잘 즐겨온 해였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조는 당분간 계속될 것 같아요. 적어도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0년 상하이 엑스포라는 거대한 이벤트까지는 지속되지 않을까 싶은데요.”일본의 한 중견그룹 상사원으로 상하이에 체류중인 한 일본인의 진단이다. 이 일본인은 한 한국식당에서 우연히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런데 보수적이며 후한 평가에 서툰 일본인들의 일반적인 성향에 비춰볼 때, 그의 중국평가는 꽤 후한 편이다. 그 원인에 대한 질문에 그는 몇 해 동안 중국전역을 누비고 다니면서 조금씩 느껴온 결과라고 들려준다.

회사일로 일본에도 자주 오가는 덕에 중국에 대한 내외적 시각을 웬만큼 갖추게 되었다고 자평하는 그는, 시시각각으로 변모하는 중국에 대한 일본 지식인층들의 변함없는 ‘중국불안론’, ‘중국붕괴론’이 아쉽기만 하다고 한다. “한 개인이나, 어느 사회, 더 나아가 어느 국가라도 각각 장단점이 있기 마련 아닙니까? 완벽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러 변수로 인해 중국의 10년이나 20년 후를 내다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르겠지만 적어도 몇 년 앞의 중국은 오늘의 장미빛 전망이 현실화되어 있을 것입니다. 중국에 대한 한국의 적극적 자세, 정말 잘하고 있는 겝니다, 정말 부러워요.” 그의 중국평가는 어느새 한국에 대한 부러움으로 바뀌고 만다. “며칠전에도 공안에 대한 대규모 시위가 있었잖습니까? 그런데 최근 3년간의 비공식 통계만 보더라도 이러한 시위와 항거가 급속히 잦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어요. 중국이 점점 위태해지고 있습니다.”상하이 주재 독일인 학자의 중국평가이다.

그에게 있어 중국의 2004년은 ‘격변’의 도화선이 한층 더 짧게 타들어간 한 해인 것 같다. 치밀하고 꼼꼼하기로는 전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독일인들, 그 피를 여지없이 물려받은 그답게 그의 중국평가는 신중 그 자체이다. “경제발전, 경제발전하고 장미빛 전망만 부각되고 있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잘 될 경우를 말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고 나는 외국기업이나 외국인의 중국진입에 겁을 주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내 말은, 밖에서 본 중국보다 안에서 본 중국이 훨씬 위태하므로 이러한 점도 세심히 고려하며 중국을 대하라는 것이지요. 위기상황이 매년 더욱 심해지고 있음을 다시 한번 주지시키고 싶은 것입니다.” “사실 지금 세상에 누가 사회주의 이론, 마르크스 사상을 믿겠습니까? 공산당원이 된 이유? 아니 지금 이 사회(=중국)에서 공산당원이 아니면 여러모로 불편하고 또 출세하기도 힘드니까 그렇지 뭐 다른 이유가 있겠습니까? “연말을 맞이하여 동료 중국인 교수들과 함께한 송년회 자리에서 나온 말이다. 서너명이 참석했는데 그들은 한명의 ‘무당파’를 제외하고 모두 공산당원이다. 그런데 그들의 공산당에 대한 인식은 ‘퍽’ 가벼운 것 같다.

입당원서 한장 써내고 일년에 한 두번 모임에 참가하거나 혹은 전해져오는 서류더미 받아 쓰레기통에 버리기만 하면 생활하고 출세하는데 지장없으니 가입해도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무당파인 교수는 공산당에 가입함으로써 얻어지는 실질적 이익과 가입을 위한 번거로움을 생각할 때 아직은 가입 그 자체가 귀찮다며 웃어 넘긴다. 이러한 30대 후반~40대 후반의 중국인들에게서 받는 공산당과 당원사이의 관계는 우리사회의 정당과 당원간의 관계보다 더 밋밋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시대는 완전히 바뀌었다. 사실, 출생과 성장배경 등, 모든 것이 판이한 사람들로부터 ‘일사불란’이니 ‘만장일치’니 하는 것을 구하려 한다는 그 자체가 무모한 것이 아닌가. 이제는 더욱 자연스럽게 서로 다른 점을 인정해야 한다.

그 속에서 합의점을 구해나가면 된다.” 수십년간 마르크스 레닌 사상과 중국의 사회주의를 연구하며 지도해 온 한 명문대학 종신교수의 말이다. 격동의 그 문화대혁명기를 구사일생으로 보내고 온갖 눈치와 압박속에 사회주의체제를 홍보해 온 그이다. 그렇지만 두툼해진 양눈 볼의 당당함처럼 그는 이제 공개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바뀌었다. 그리고 또 바뀌고 있다고.드물게도 상하이지역에 눈이 나부낀다. 하지만 창가 저편에서는 그래도 미래를 그려나가는 건물공사가 한창이다. 그 꼭대기에 위치한 기중기의 분주함 사이로 아른아른 나타나는 2005년 중국의 모습… 바야흐로 ‘중국, 2005년편’이 벌써 막을 올리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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