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대희 전 대법관 총리 내정자의 자진 사퇴를 보면서 다시 한번 정치권 해묵은 패악을 목도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많은 젊은 학생들의 희생을 낳은 세월호 참사의 근본 원인인 관피아(관료+마피아) 척결이 요원해졌기 때문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는 정치권이 어린 학생들의 죽음을 애써 무시하고 선거와 정략적 사고에 빠져 부패한 관료를 몰아내는 데 적합한 인물이 사라졌다는 아쉬움도 한몫하고 있다.

물론 안 전 대법관이 5개월간 16억 원을 받은 전관예우성 수임료가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대법관 출신 인사가 대형로펌에 들어가 1년에 303년에 100억원 버는 것보다는 낫지만 말이다. 또한 각종 쏟아지는 의혹에 대해 명확한 해명을 하지 않고 청문회에서 하겠다는 태도 역시 오만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옛 선현들의 말씀중 牛刀割鷄’(우도할계: 소잡는 칼로 닭을 잡는다)는 말이 있다. 즉 소 잡는 칼이 따로 있고 닭 잡는 칼이 따로 있다는 말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안 전 대법관의 자질론을 정치권이 문제를 삼았지만 누구보다 관피아 척결의 최적임자라는 점은 그의 과거 행적을 보면 분명하다.

안 전 대법관은 이미 정치권뿐만 아니라 관료들 사이에 유명한 칼잡이로 통한다. 안 전 대법관이 노무현 정부시절 국민 검사로 알려지기전 초년생 특수부 검사때부터 그의 손을 거치면 살아남은 공직자나 정치인이 거의 없을 정도로 특수 수사통의 전설이었다.

대검 중수부 핵심 요직을 지낸 안 전 대법관은 참여정부 초기 대선 비자금 수사를 하면서 한나라당을 차떼기 전당으로 만들었고 노무현 대통령도 울게 만든 최측근 안희정 충남도지사를 구속했으며 박지원, 박주선 의원과 한광옥 국민통합위원장도 철창행을 면치 못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사시동기로 참여정부 시절 중수부장과 대법관에 오른 그지만 과감하게 노 대통령 최측근을 감옥에 보낼 정도로 강단이 뛰어났다. 또한 2010년 대법관 재직 당시 재산이 8억원 가량을 갖고 있어 대법관 평균 재산 19억 원의 절반 수준에 머물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오죽하면 안 전 대법관 부인이 큰 집에서 살고 싶다고 할 정도였을까. 이런 강단과 청렴함이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 후보 눈에 들어 영입 케이스로 왔고 총리로 내정되는 데 주효한 배경이 됐다.

하지만 안 전 대법관의 성품을 두려워하는 세력들의 입장에선 막강해진 총리실에 안 전 대법관의 내정은 가히 충격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그룹이 바로 친가인 검찰이고 외가인 정치권 인사들이었다. 검찰내에서 안 전 대법관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상반되지만 공통적인 것은 물리면 죽는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안 전 대법관 때문에 2008년 감옥에 간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아무리 안받았다고 하소연해도 소용없었다. 무조건 죽이려 달려드는 칼잡이 검사의 대표적인 사람이라고 평가했을 정도다.

안 전 대법관이 내정된 바로 다음날 정치권은 사전에 준비했다는 듯 검증의 칼을 들었다. 새정치민주 연합은 관피아 척결보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빅엿을 먹이는 게 중요했고 선거 승리가 더 중요했다. 또한 여권 차기 대권 주자의 싹을 자를 수 있어 13피의 효과를  노렸다.

반면 청와대가 안 전 대법관을 총리로 지명했지만 적극 방어해야 할 여당은 소극적이었다. 야권이 총공세에 나설 때 집권 여당은 침묵하거나 간헐적으로만 방어했다. 여당은 청와대가 정부 인사때마다 배제당하는 것에 대한 간접 화풀이이자 자신들의 밥그릇이 없어질 수 있다는 안대희발 경고에 대한 방어기제가 작동했다. 여기에 안 전 대법관 관련 음해성 소문을 그럴듯하게 포장해 흘린 검찰과 관피아까지 가세해 사퇴이후까지 카더라식흑색선전이 난무했다.

검찰에서는 안 전 대법관을 2의 채동욱이라고 비아냥거렸고 정치권에서는 이명박 정권 시절 세종시 총리로 폄하당한 정운찬 전 총리에 비견해 세월호 총리로 비하했다. 다시는 재기할 수 없게 식물인간으로 만든 셈이다.

이제 좀 있으면 지방 선거다. 안철수식 새정치가 빛바래진 이후 여든 야든 기정 정치에 신물이 나고 정부에 비판적인 유권자들은 어쩔 수 없이 차악을 찍어야 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이석기 사태로 진보 정당 후보에게는 표를 줄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2번을 찍자니 야당이 미덥지 않고 기권하자니 세월호 분노가 가시질 않는다.

보수 유권자들 역시 마찬가지로 딜레마에 처해 있다. 1번을 찍자니 세월호 참사가 박근혜 정부와 집권 여당에게 책임이 없다는 자인으로 누가 알까 겁난다. 투표를 안하자니 2번이 당선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어쨌든 여권 지지자든 야권 지지자든 정치권의 보이지 않는 선택의 강요에 따라 서로 차악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렸다.

그러나 안 전 대법관은 예외가 됐다. 정치권은 국민들에게 최선이 아니면 차악을 뽑아달라고 강요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차악을 식물인간으로 만들었다. 앞으로 누가 세월호 총리가 될지 모른다. 현재까기 거론되는 인사들중에서 안 전 대법관만큼 공직자와 사정기관 인사들의 이해관계를 벗어나 눈치 보지않고 강단 있게 관피아라는 거대한 괴물에 맞서 싸울 마땅한 인물은 나는 떠오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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