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명실상부한 3부 요인중 한명인 정홍원 국무총리가 볼썽스런 신세다. 지난 427일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과 박근혜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위해 자진사퇴를 의사를 밝혔던 그다.

그러나 세월호 희생자가 단 한명도 구조되지 않은데다 시신마저 전부 수습되지 않은 상황에서 던진 사의는 '무책임하다'는 따가운 국민 여론에 부딪혔다. 이에 '선수습 후사퇴' 입장으로 선회한 청와대는 정 총리의 사직서를 수리를 하지 않으면서 그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당장 서울광장 분향소에 보낸 총리 조화마저 되돌려받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망신'만 당한 정 총리는 이후 외부 행사는 확 줄이고 총리로서 최소한 법적 의무 업무만 처리했다. 청와대와 사전 조율을 한 자진 사퇴였지만 결과는 '독박'만 쓰고 책임감 없는 총리, 인정머리 없는 총리로 낙인찍힌 채 '바지 총리'로 전락했다.

무늬만 총리직을 한달간 유지해오던 521일 기쁜 소식이 그에게 전해졌다. 박 대통령이 안대희 전 대법관을 총리로 전격 지명한 것이다. 정 총리로선 무거운 굴레를 벗고 보통 사람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당장 그는 총리 지명 소식에 서둘러 짐을 쌓고 총리 공관을 떠날 참이었다. 그동안 '바지 총리'로 당한 설움을 짐작하면 충분히 이해가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떠나는 그의 발목을 이번에는 안 전 대법관이 잡았다. 지명된지 일주일만에 안 전 대법관의 빗나간 '전관예우'로 자진 사퇴 선언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정 총리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짐을 풀고 총리 공관으로 발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돌아가는 그의 발걸음 한걸음 한 걸음이 얼마나 무거웠을 지는 그와 가족만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지난한 13일의 시간이 흐른 610일 청와대는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을 총리로 지명했다. 한번 안대희 전 대법관으로부터 당한 정 총리는 서두르지 않았다. 특히 문 전 주필은 지명된지 3일도 안돼 터진 '일본 식민지배와 남북 분단은 하나님의 뜻이다'라는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정치권, 종교계, 시민사회단체로부터 십자포화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짐을 풀 생각도 했었으리라.

하지만 청와대와 여권은 안대희 전 대법관 때와는 달랐다. 청와대가 정면돌파 의지를 밝히면서 여권도 문창극 옹호에 적극 나섰다. 누구보다 문 후보자의 총리 지명을 바라는 정 총리다. 과연 이번에는 짐을 싸서 총리 공관을 떠날 수 있을까. 그가 총리 공관을 떠나지 못하고 다시 짐을 푼다면 얼마나 처량한가. 대한민국 역시 이렇게 쓸만한 인재가 없다는 것에 참담함을 느낄 것이다. 물론 아직은 더 두고 볼 일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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