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국내 로펌(법무법인)에 근무하는 전직 경제 관료들이 무려 177명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정부 부처 중에서 힘센 곳으로 알려진 기획재정부, 국세청, 관세청, 금융감독원, 공정거래위원회, 감사원 같은데서 일했던 고위 공무원 출신들이 현직에서 누릴 것 다 누리고 퇴직 후에는 또 로펌들의 스카웃 대상이 되는 실태였다.

로펌들로부터 고액 연봉에 고급승용차와 비서까지 제공받는 이들 고급관료 출신들이 하는 일이 ‘자문’은 허울이고 후배 관료들을 상대로 한 로비가 주 업무라고 한다. 세무나 금융관련 소송에 직접 나서는 경우도 있다. 로펌 측이 후배 공무원들에 대한 영향력을 인정해서 소송 한 자락을 맡긴다는 것이다. 해당 부처의 업무를 꿰뚫고 있는 전직 관료들이 소송 전 단계에 ‘비싼 밥 값’ 좀 하겠다고 나서면 후배가 외면해 버텨낼 재간이 없다.

전화 걸고 밥 한 끼 먹자는 선배 말을 무시하기가 어려울 뿐더러 자신의 퇴직 후를 생각 안 해볼 도리가 없다. 로펌 주변에선 “후배들에게 얼마나 전화 많이 하고 인기 있느냐에 따라 연봉이 결정된다”는 말이 공공연하다. 현직이 나중에 같은 입장이 되기 때문에 잘나가는 선배에게 줄 대고 싶어 안달하는 후배공무원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더욱 후배 공직자들을 긴장케 하는 것은 로펌에 근무하던 퇴직 관료들이 다시 정부 부처의 장관 차관으로 화려하게 복귀하는 ‘회전문 인사’다. 때문에 현직 떠난 선배를 ‘꺼진 불’ 취급을 못하도록 정부가 더 전관예우 풍토를 조장하고 있다는 비아냥이 난무한다. 통치권 입장에서 고위공무원 출신들이 공직 생활에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살려 국가 발전에 기여케 하기 위한 구관 발탁 인사가 명백한 문제를 만든 셈이다.

로펌에서 근무하는 관피아 족이 대정부 로비 창구 역할을 하며 기업들의 아픈 곳을 해결해주는 해결사 폐해는 엄청나다. 후배인맥을 통해 기업들 세금이나 과징금을 줄여주고 정부 제재를 비켜갈 수 있도록 한데는, 국세청이나 공정거래위가 기업에 거액의 세금이나 과징금을 부과해놓고 로펌과의 소송에서 지는 사례가 어쩌다 혹간 있는 일이 아니다.

근래 와서는 대형 로펌들이 재벌 회장 같은 거물급 ‘범털’ 재소자의 ‘열외’ 수형생활을 위해 교정청 간부 출신까지 고용한다고 한다. 주요 선진국에선 나랏돈으로 키운 전문가적 지식과 경험이 기업들 주머니 지키기에 쓰이도록 두고 보지 않는다. 프랑스는 공무원 퇴직 후 5년간 유관기관에 취업을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공무원연금을 박탈하거나 2년까지 실형을 받도록 하고 있다.

미국은 전직 공무원이 재취업한 뒤 퇴직 전에 담당했던 업무와 관련해 대정부 활동을 할 수 없도록 엄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법치는 퇴직 공무원들과 그들이 몸담았던 기관 현직 공무원들의 접촉을 투명하게 관리하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유명무실한 공직자윤리위원회 재취업 심사를 책임 있는 독립기구에서 다루도록 할 용의는 없는 걸까, 결국 ‘초록은 동색’이라는 말로 귀결 되는 건가. 사회 양극화 현상은 점점 심화되고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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