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의 요람인 대학내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져 충격을 주고 있다. 22일 대구지방경찰청은 시간강사를 성폭행한 후 강의 배정 등을 이유로 상습적으로 성상납을 받아온 국립대학 교수를 적발했다. 문제의 교수는 경북대 A학과에 근무했던 오동일(45·가명, 지난5월 해임)씨. 지난 21일 이미 연구비 착복과 금품수수 혐의로 구속된 그는 30대 여성 시간강사 박성희(37·가명)씨에게 수업 배정 등을 대가로 상습적으로 성상납을 받아 온 범행이 추가로 드러나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오씨와 박씨의 잘못된 만남은 지난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씨는 어학당에서 알게 된 다른 학과 시간강사인 박씨와 친분을 유지해오던 차, 그해 6월 박씨를 자신의 연구실로 불러들여 강제로 성폭행했다.그러나 성폭행을 당한 사실을 차마 고발하지 못하는 박씨에게 오씨는 곧바로 ‘검은 미끼’를 던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박씨를 학과수업 강사로 추천해준다는 것이었다.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오씨는 수업배정을 해주는 대가로 박씨에게 성관계를 요구했다. 처음부터 박씨가 그 제안을 쉽게 받아들일리 만무했다. 그러나 수업배정을 받기가 ‘하늘의 별따기’와 같은 시간강사의 현실에 비춰 볼 때 오씨의 유혹은 거부하기 힘든 것이었다. 고민끝에 결국 박씨는 오씨의 제안을 받아들이기에 이른다. 오씨는 같은 해 7월 중순경 박씨를 대구의 한 유원지 인근에 위치한 모텔로 데려가 성관계를 가졌다.

물론 그들의 위험하고 비도덕적인 ‘거래’ 뒤에는 자신의 학과에 강사로 박씨를 추천해주겠다는 둘만의 비밀스런 합의가 있었다.그러나 그것은 단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미 한번의 ‘사고(성폭행)’로 시작된 이들의 잘못된 유착관계는 점점 수렁속으로 깊숙이 빠져들어갔다. 당연히 둘 사이의 검은 거래도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오씨는 박씨에게 계속해서 ‘달콤한’ 미끼를 던졌다. 지난 2002년 2월말 학기개강에 앞서 박씨를 만난 오씨는 또다시 “강의를 배정해놨다”며 접근해 성관계를 가졌다. 또 얼마후에는 “박사과정 진학 시험문제를 사전에 알려주겠다”는 말로 꾀어 성관계를 가졌다.하지만 오씨의 요구는 점점 노골적으로 변했다. 오씨가 요구하는 대가는 성관계를 넘어 금전적인 요구로까지 이어졌다.

2002년 10월께 음주운전 단속에 적발돼 고액의 벌금을 물게 된 오씨는 박씨에게 벌금을 대납해달라고 요구했다. 망설이는 박씨에게 오씨는 “다른 시간강사들은 스승의 날에 알아서 100만원씩 갖다주기도 한다”며 “(대납을 거부하면)시간강사의 특혜에서 제외시킬 수가 있다”고 압력을 넣기도 했다. 시간강사 자리에서조차 밀려날까 두려웠던 박씨는 결국 며칠 후 자기 집에서 오씨에게 100만원을 건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00만원은 그야말로 ‘껌값’이었다. 2003년 5월경에 오씨는 김모씨에게 빌려주기로 했다는 1,000만원을 오씨에게 대신 차용해주라는 노골적인 요구를 했다. 물론 이때도 오씨가 내건 조건은 수업배정이었다.

때마침 2학기 시간강사 배정을 앞두고 있던 박씨는 아파트 대출금 상환을 위해 저축해두었던 돈을 포함해 두차례에 걸쳐 오씨에게 1,000만원을 건네줄 수밖에 없었다. 경찰 조사결과 오씨와 박씨의 부적절한 행각은 3년 7개월여의 기간 동안 무려 17차례나 계속된 것으로 밝혀졌다.이들의 잘못된 유착관계는 지난해 말 “성 상납을 받는 교수가 있다”는 진정을 받고 조사에 들어간 경찰에 의해 결국 일단락지어졌다. 하지만 순수히 학문연구가 이뤄져야할 상아탑내에서 벌어진 이번 사건의 파장은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대학원에 누가 공부하러 가나요?”

S대 박사과정에 있는 김모(33·여)씨는 대뜸 “대학원에 공부하러 가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김씨에 따르면 순수하게 학업을 위해 진학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 그는 “일단 박사과정에 접어들면 대부분은 교수를 목표로 한다”며 “시간강사 자리부터 꿰어차려고 여간 경쟁이 치열한 게 아니다”라고 귀띔했다.문제는 이 과정에서 강사와 대학원생들은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교수’의 눈치를 봐야한다는 것이다. 김씨에 따르면 교수에게 밉보이거나 ‘찍히면’ 승산이 없다. “일단 자리를 얻거나 지키기 위해서는 학사일정이나 연구와는 관련없는 교수 개인의 잔심부름까지 해가며 ‘입맛 맞추기’에도 소홀할 수 없다”는 것이 김씨의 말이다. ‘강사는 교수의 눈치를 봐야한다’, ‘시간강사는 교수의 개인 비서나 심부름꾼 노릇을 해야한다’는 식의 루머는 이미 대학가에 널리 퍼져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불합리한 권력을 휘두르는 일부 교수와 자신의 입지구축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부당한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강사들의 ‘잘못된 ’유착관계를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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