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가 이슬람 수니파의 극단주의 무장 조직 ISIS (이라크 시리아 이스람국가)의 공격을 받고 다시 전면 내전의 도가니로 빠져들었다. 이라크의 2대 도시인 모슬이 ISIS에 의해 함락되었고 50여만명에 달하는 주민들이 피란길에 올랐다. ISIS는 6월18일 수도 바그다드 60km 까지 진격한 상태이고 목표는 과격 수니파 지배의 회교왕국을 건설하는 데 있다.

ISIS는 모슬을 점령하면서 술과 담배 금지, 여자들의 불필요한 외출 통제, 회개않는 이라크 정부 부역자 처형, 등 과격하다. 포로의 귀와 코 등 신체의 일부를 잘라내 수집하는 등 잔혹하다. 그들은 이라크 정부군 포로 1700명을 이미 처형했다고 발표했다.

2003년 3월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 아랍권에서 반미로 앞장서던 이슬람 수니파 소속의 사담 후세인 대통령을 체포, 처형했다. 미국은 반후세인 운동을 벌이다 24년간 망명 생활하던 시아파의 누리 알 말리키를 총리로 내세웠다. 미국은 140억달러(14조원)를 쏟아부었고 4000여명의 전사자를 낸 뒤 2011년 8월 미군을 이라크에서 모두 철수시켰다. 우리 건설업체 20여개가 진출해 있고 1500여명의 근로자들이 파견돼 있다.

28만명에 달하는 이라크 정부군이 1만5000에 불과한 ISIS에 파죽지세로 밀린 데는 분명히 까닭이 있다. 알 말리키 총리의 권력독식과 민심이탈, 수니파 배제, 정적 탄압, 부패, 무능 등에 기인한다. 미국의 한 칼럼니스트는 그를 ‘총체적 멍청이(total jerk)‘라고 규정했다.

‘멍청이’ 알 말리키는 수니파 중에서 자신에게 협조적인 온건 인사들을 끌어안았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급할 땐 그들을 이용했으면서도 정권 기반이 안정되자 숙청하고 핍박하였다. 알 말리키는 2010년부터 국방부, 내무부, 정보부 장관을 겸임하며 권력을 독점했다. 절대 권력은 절대 썩게 마련이다. 이라크인들은 자국 군대와 경찰을 “외인부대” “점령군” 이라고 혐오한다. 시내에 자동차를 주차하려 해도, 감옥에서 풀려나기 위해서도, 돈을 찔러주어야 한다. 이라크 군·경은 ISIS가 공격해오면 무기를 버리고 도망치기 바쁘다.

알 말리키 총리가 수니파를 포용했고 부패하지 않았으며 독재로 빠지지 않았더라면, 이라크인들은 ISIS 공세를 충분히 예방 또는 방어할 수 있었다. 오늘날 이라크인들이 겪는 전면 내전의 고통은 바로 통치자를 잘못만난 데 연유한다.

지도자의 무능과 폭정으로 인한 이라크인들의 비극은 30여 년 전 시작되었다. 1980년 9월 후세인 대통령은 샤트 알아랍 강 접수와 호메이니 회교혁명군 타도를 내세우며 이란에 침공했다. 8년간의 이라크-이란전의 시작이었고 두 국민들에게 100만 명의 희생자를 냈다.

후세인은 종전 2년 뒤인 1990년 8월 인구 230만의 작은 나라 쿠웨이트를 침공했다. 쿠웨이트가 역사적으로 이라크 영토였고 제국주의와 결탁하며 아랍 민족을 배신하였다는 구실이었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다국적군의 참전과 공습으로 이라크는 초토화 되었다. 5-10만의 전사자를 또 냈다. 이 전쟁 또한 못난 통치자가 자초한 재앙이었다. 그러나 후세인이 제거된 후 미국의 지지로 집권한 알 말리키 총리도 독재·부패·무능으로 빠져 들었다. 끝내 ISIS의 전면 공세를 유발, 붕괴위기로 내몰려 이란과 미국 등 외국의 지원을 간청한다.
2천800만 이라크인들은 지도자를 잘못 만난 탓에 1980년부터 30여 년간 전쟁으로 죽어간다. 66년간 통치자의 실정으로 굶주림과 전쟁에 시달려온 2천400만 북한 주민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라크가 ISIS의 공세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다시 미국의 제한적 군사개입과 ‘멍청이’ 알 말리키 교체 그리고 온건 수니파를 영입하는 초 종파적 정부 수립이 전제돼야 한다. 30년 이라크인들의 참상을 지켜보며 통치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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