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님, 좋은 땅 있는데요….”최근 강남에 사는 K(여·48)씨는 이같은 전화를 자주 받는다. 세칭 ‘기획부동산 업자’들로부터 걸려오는 부동산 구입의사 타진이다. ‘기획부동산 업자’란 땅을 확보한 뒤 레저단지나 펜션단지로 용도를 변경한다는 명목을 붙여 부유층을 상대로 매매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단순 부동산 중개업 차원을 넘어 대규모 부동산을 매매대상으로 하는 등 기업형 부동산 거래를 하고 있다.그러나 자칫 이들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갔다가 낭패를 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최근 서울중앙지검은 지능적인 사기수법을 일삼는 대형 ‘기획부동산’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수사를 벌이고 있다. 검찰은 강남 테헤란로 일대에 기획부동산 업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투자자들도 수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수사 결과에 따라 사기 피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가능성도 있어 기획부동산 문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인 셈이다. 현재 검찰 수사에서 드러난 기획부동산 업체들의 대표적인 사기수법을 알아본다.

사례1 = 허위과장 선전

현재 검찰의 수사대상에 올라있는 기획부동산 업체는 ‘기획부동산 사관학교’로 불리는 S컨설팅을 비롯, C레저, K레저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대규모 부동산을 매입해 분할한 후 텔레마케터와 같은 조직적인 판매망을 구축, 투자자를 끌어모으고 있다는 것. 대다수 업체들은 강남 테헤란로 일대에 화려한 사무실을 차려놓고 수백명의 텔레마케터들을 고용해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묻지마 투자’를 유혹하고 있다. 이들은 사실상 ‘불모지’인 땅을 개발예정지인 것처럼 꾸며 투자가치가 높은 땅이라고 속여 파는가 하면 개발과는 전혀 무관한 땅을 마치 곧 레저단지 등이 들어설 것처럼 팸플릿을 만들어 투자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최근 검찰에 적발된 기획부동산 피해자는 3,800여명, 피해액은 1,2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사례2 = 탈세

기획부동산들이 물의를 빚는 가장 큰 이유는 감언이설로 투자자를 모은 후 폭리를 취하고도 세무서에 신고하는 금액은 터무니없이 낮게 신고, 탈세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 결국 이에 따른 부담은 투자자들이 안게 된다.검찰 관계자는 “기획부동산업체들은 불모지를 허위과장광고로 속여 파는 것도 모자라 영업사원이 매매가의 10% 이상을 수수료로 가져간다”며 “정말 좋은 땅을 싸게 파는거라면 8,000평의 임야를 팔아 10억원 이상의 이득을 남기고, 영업사원이 수천만원을 챙기는 것이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게다가 일부 업체들은 회사 운영비를 충당하기 위해 할인을 해주겠다며 중도금과 잔금을 일찍 내라고 권유하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다.

사례3 = 유령회사

검찰이 파악한 상당수의 기획부동산은 본사외에도 XX센츄리, XXX인베스트 식으로 다른 이름을 걸어놓고 영업을 하고 있다. 마치 여러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것처럼 눈가림을 하고 있지만 상호만 다른 같은 회사일 뿐, 사업자등록증 대표와 사장 이름이 일치하지 않는 ‘바지사장’이 앉아 있는 경우도 많다. 이는 문제가 생길 경우 도피할 준비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회사가 순식간에 문을 닫고 사라지거나 눈가림식으로 단기간 영업을 중단했다가 다른 건물에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로 치장된 사무실을 마련, 상호만 바꾼 채 사람만 그대로 옮겨가는 시스템도 비일비재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 관계자는 “4~5개 정도의 계열사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C업체의 경우, 이미 회사는 다 죽어가는데도 투자자들은 자신의 피해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이런 경우가 한둘이 아닌 상황인데, 투자자들이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파장은 어마어마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 “판매가격 보면 사기가 보인다”

테헤란로의 한 기획부동산업체에서 ‘부장’으로 근무했던 한모(33)씨는 “기획부동산의 내부 운영원리를 알면 구매자들이 얼마나 많은 부당한 부담을 지고 있는지 알 것”이라며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한씨는 “판매가격은 모든 비용과 엄청난 이익이 계산된 가격이다. 애초의 땅값에 ‘찍새’라 불리는 현지작업자 및 답사담당과 판매원(판매가격의 10%)수당은 물론 간부들의 수당까지 계산되어 있다. 또 ‘칼질’이라 불리는 토지 분할비용과 등기비용, 식비와 기름값 등 답사비용, 접대비용, 답사차량 임대료(그렌저나 에쿠스급), 게다가 텔레마케터들의 임금 및 전화비, 사무실 임대료 등 회사 운영비까지 감안하면… 이해가 되는가?”라고 되물었다. 한씨는 또 “억대가 넘는 인테리어 비용은 물론이고 홈페이지 및 조감도 제작비, 세미나비 광고비도 투자자들에게서 빠진다고 보면 된다”며 “평당 2~3만원대의 땅이 20~50만원대에 거래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털어놨다.

-기획부동산업체들의 주타깃은 누구인가.▲ 서민들보다는 웬만큼 여유자금이 있는 중산층 주부들이다.

- 투자유도 방법은.▲ 아파트나 리조트가 들어선다거나 도로가 난다는 식으로 여러 가지 개발호재를 말한다.

- 의심하는 사람들도 많을 텐데.▲ ‘비밀정보’임을 강조한다. ‘고위 공무원에게 들은 정보다’, ‘관청과 협의됐다’, ‘매물이 없어서 못판다’, ‘상무님이 특별히 빼놓은 땅이다’라는 말에 누가 솔깃하지 않겠는가.

- 직원들은 어떤가.▲ 공인중개사와 같은 전문인은 드물다. 텔레마케터가 대부분이고 간부급은 친분이 두터운 사람들끼리 ‘실장’, ‘부장’, ‘이사’ 등의 직함을 달고 활동한다.

- 토지매입과정은.▲ ‘007가방’에 30억~40억원씩 들고 현지에 내려가 맹지를 사들인다. 매매대금의 10∼30%의 대금을 먼저 주고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치거나, 계약 후 일정금액을 치르는 등 여러 방법으로 판을 짠다. 판매가격이 결정되면 ‘칼질’을 통해 분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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