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투기꾼들의 싸움은 언제까지일까. 얼마전 기획부동산을 낀 부동산 투기사범들이 대거 적발된데 이어, 수도권 일대에서 부동산 투기를 벌인 이들이 또다시 무더기로 적발됐다. 수원지검 수사과는 6일 성남과 화성, 용인 등 수도권 일대에서 부동산 투기를 벌인 531명을 적발, 기획부동산업체 대표 A씨 등 8명을 구속하고 52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그러나 이는 전초전에 불과하다는 것이 검찰 관계자의 얘기다. 서울중앙지검에서 전국적인 대형기획 부동산을 대상으로 ‘전면전’에 들어갔다는 소문에 바짝 긴장한 관련 업체들은 실질적인 대책마련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흉흉한 분위기에 사실상 업무중단”

현재 모든 기획 부동산 고소 및 인지 사건을 집중 배당받은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는 S업체, C레저, K레저 등 전국의 수십여개 업체들을 주요타깃으로 전면적인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특히 이번 조사대상에는 ‘내로라’하는 대형기획 부동산업체들은 물론, 단속을 피해 지방에서 활동하는 업체들까지 대거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불법영업 및 투기사실이 적발될 경우 엄청난 파장이 예상된다. 또아직까지 피해사실을 감지하지 못한 피해자들이 무더기로 속출, 엄청난 고소고발 사건이 발생하는 등 극심한 혼란이 예상된다. 검찰이 전면전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퍼지자 기획부동산업체들은 ‘산넘어 산’이라며 잔뜩 움츠러든 표정이다.

일부는 ‘폭풍전야’를 대비, 임시 휴업 및 업종변경, 이직에 들어가는 등 나름대로의 대책마련에 들어간 상태다. 특히 ‘대대적인 칼바람이 불어닥친다’는 소문에 앞서 설상가상으로 교수와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과 공무원, 부동산중개업자 등이 포함된 투기사범이 무더기로 검거됐다는 보도가 터지자 많은 업체들은 초상집 분위기였다. 서울 강남의 A기획부동산업체. 올초만해도 200명의 텔레마케터를 고용해 ‘노른자땅 선전’에 열을 올리던 업체였다. 추석전 통화에서 이 업체의 김모 부장은 “몇몇 업체가 이미 검찰 조사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있다. 실제로 모 업체는 두달여 동안 영업을 하지 않고 있는 상태”라며 당시의 뒤숭숭한 상황에 대해 귀띔한 바 있다. 그러나 김씨는 “이쪽 바닥에서는 악성루머들이 자주 나돌기 때문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며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6일 오후 통화에서 그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분위기가 안좋아 통화가 곤란하다”며 전화를 피했다. 내용인즉, 잠정 휴업에 들어갔다는 것. 그는 피해사실이 드러나지 않았음에도 땅을 산 사람들로부터 하루에도 수백통씩 전화가 걸려와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자신도 속은 게 아닐까’하는 사람들의 성화에 업무가 사실상 중단된 상태라는 것이다. 다른 업체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칼바람’을 앞두고 간부들은 아예 출근을 하지 않거나, 당분간 영업을 중지하라는 지시가 내려온 업체도 있다는 것이 그의 얘기다. 김씨는 “당장의 천둥번개는 피하고 보자는 거죠”라며 힘없이 전화를 끊었다.

이직·장기휴업 업체 부지기수

또 다른 부동산 컨설팅업체 B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국세청 세무조사와 검찰조사가 시작되자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전 직원이 추석전부터 ‘휴가’에 들어갔지만 분위기는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문제는 업체가 야심적으로 확보해놓은 가평, 여주 일대 1만평이 넘는 땅을 사겠다는 사람이 수개월째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평당가를 낮춰봤지만 무반응. 이 업체 신모 부장은 “검찰조사에서 문제가 생길 경우 이를 책임질 사람은 사실상 없다. 회사가 공중 분해될 것을 우려, 현재 이직을 고려중”이라 털어놨다. 그는 “많은 업체들이 팔지 못해 떠안고 있는 땅이 엄청나다. 또 단속으로 인해 적극적인 영업이 불가능해 문을 닫는 업체들이 속출할 것”으로 전망했다.

신씨는 “강남에만 200~300개가 성업중이었던 것이 이제는 70~80여 곳도 안된다”며 “임대료조차 감당하기 힘든 업체, 언제 문닫을지 모르는 업체들이 상당수”라고 귀띔했다. 간부급들의 이직이나 휴직도 눈에 띄게 늘었고, 토목공사만 완료한 상태에서 필지를 분양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펜션이나 전원주택 분양대행 업체로 옮기거나 몇 명이 뜻을 모아 대행업체를 차리는 경우도 다반사라는 것이다. 또 아예 자동차 세일즈나 보험설계사 등 다른 분야에 발을 디디는 사람들도 여럿 봤다는 것. 신씨는 “사실 그동안 쏠쏠한 재미를 봤던 업체들도 험악한 분위기로 인해 땅이나 상가 등을 ‘정상적으로’ 분양하기도 한다”며 “대신 수익은 예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그는 “모든 기획부동산업자들이 전문 사기범인양 보도되는 것은 억울하다”며 “우리가 개발한 땅을 사들여 이득을 봤거나, 쓸만한 땅 좀 알아봐달라며 돈을 싸들고 찾아오는 전문직 종사자들도 여전히 있다”고 전했다.

# 지능·조직화되는 투기 “대책 없다”

이번 수원지검에 철퇴를 맞은 업체들은 부동산에 관한 불법 수단은 총동원했다는 것이 검찰 관계자의 말이다. 세금을 피하기 위한 미등기 전매, 증여, 현지인 명의를 이용한 차명거래, 맹지를 개발부지로 속여 파는 ‘전통적’인 수법은 물론 ‘신탁’이라는 신종수법도 등장했는데, 이번에 등장한 ‘위장신탁’ 수법은 대규모의 땅을 매입해 다수에게 분할매도하는 과정에서 서류상으로는 토지소유자가 위탁자가 되고 구매자가 신탁자가 되는 방법이다. 즉 땅에 대한 재산권 행사를 다른 사람에게 위임한다는 ‘신탁계약서’를 체결하는데, 표면상으로는 땅을 신탁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땅을 사고파는 거래가 뒤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부동산중개업자나 법무사들까지 개입, 법적인 장치까지 교묘하게 이용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실태를 파악하고 있는 부동산 관계자들은 “드러난 투기현황은 새발의 피”라며 “현재 기획부동산의 수그러든 분위기는 일시적인 현상이다. 일부 업체들은 죽는 시늉을 하면서도 지금도 값싼 맹지를 보러 다닐 것”이라며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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