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행세를 해서 혼인신고를 한 경우 혼인을 취소할 수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지난 2012년 부산가정법원 제1부(장홍선 부장판사)는 A(37세, 남)씨가 아내 B(33세, 여)씨를 상대로 제기한 ‘혼인취소’ 청구소송에서 두 사람의 혼인을 취소한다는 판결을 했다.

A씨와 B씨는 2010년 8월경부터 사귀었다. 당시 A씨는 보험회사 영업사원으로 근무하며 월 수입이 평균 12만 원에 불과했고 카드빚으로 인해 생활고에 시달렸다. 반면 B씨는 취업준비생이었지만 부모의 도움으로 비교적 경제적 여유가 있어 데이트 비용을 주로 냈고 A씨에게 선물도 사주며 사이가 깊어졌다.

아내 B씨는 혼인신고를 하기 전 남편 A씨에게 “부동산 경매로 돈을 많이 벌어 300억 원 가까운 돈이 있는데 결혼하면 재산의 일부를 주겠다”고 말했다. 이를 믿은 A씨는 2011년 1월 양가 부모 상견례나 결혼식을 생략한 채 B씨와 혼인신고만 했다.

그런데 혼인신고 후 B씨는 A씨에게 증여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A씨는 경제적 어려움이 더해지자 2011년 5월 중순 B씨의 부모에게 재산 상태를 물어보았다. B씨의 부모는 ‘딸은 아무런 재산이 없다’고 말했고, 화가 난 A씨는 B씨와 부산가정법원에 혼인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하여 1심 재판부(부산가정법원 가사5단독)는 “B씨가 결혼하면 거액을 주겠다고 약속했다는 A씨의 주장은 근거가 부족하다”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남편 A씨가 월평균 수입이 12만원에 불과하고 카드빚으로 생활고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아내 B씨가 A씨에게 선물을 하거나 데이트 비용을 부담하면서 재력이 있는 것처럼 속여 결혼한 것은 잘못이라고 판단했다. 아내 B씨는 법정에서 “남편 A씨를 놓치고 싶지 않아 거짓말을 했다”며 진정성을 알아달라고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원고는 자신의 재력에 관하여 거짓말을 한 피고에게 속아 피고와 혼인했고, 결혼하면 수억 원의 거금을 증여해 주겠다는 피고의 약속은 원고가 혼인을 결정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로 고려됐던 것으로 보인다”며 “B씨의 행동은 민법에 정해진 혼인의 취소사유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민법 제816조는 ‘㉠근친혼 금지규정을 위반하였을 때(8촌 이내 혈족 사이의 혼인은 무효), ㉡혼인당시 당사자일방에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악질 기타 중대 사유있음을 알지 못한 때, ㉢사기 또는 강박으로 인하여 혼인의 의사표시를 한 때’를 혼인취소 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사기 또는 강박으로 인한 혼인은 사기를 안 날 또는 강박을 면한 날로부터 3월 이내에 가정법원에 혼인취소를 청구할 수 있다.

단기 혼인파탄의 경우 혼인취소를 원하는 부부가 많다. 특히, 국제결혼을 할 때 일방이 취업목적으로 위장결혼을 하는 경우와 이 사건과 같이 혼인의사를 결정할 때 속은 경우에는 혼인취소의 필요성이 많다.

그런데 재판실무상 혼인취소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혼인취소를 청구하는 경우 재판부로부터 ‘이혼으로 청구취지를 변경할 것’을 권고받는 경우가 많다. 이혼을 하는 경우에도 이혼 후 재혼 등을 염두에 두고 혼인취소로 서류정리를 하려는 경우가 많은 것도 재판실무상 혼인취소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다. 

혼인신고 하지 않으면 법률상 부부로 인정하지 않는다

결혼 3년차 김모 씨(32)는 얼마 전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고 큰 충격에 빠졌다. 1년이 넘는 시간동안 자신을 감쪽같이 속인 남편의 행동에 치가 떨렸다.

김씨는 남편을 간통죄로 고소하기로 했으나 뜻대로 할 수 없었다. 김씨와 남편은 결혼식만 올리고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살아온 사실혼 관계이기 때문이다. 사실혼 관계에 있어서 부정행위를 하더라도 간통죄를 적용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안 김씨는 혼인신고를 미뤄 결국 자신의 발등을 찍었다며 한탄했다.

우리나라는 법률혼주의를 채택하고 있어 결혼 후 함께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으면 법률상 부부로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혼인신고 없이 함께 살아온 배우자가 사망해도 재산을 상속 받지 못하며 다른 사람과 또 혼인을 한다고 해도 중혼이 되지 않는다. 다만, 김씨의 경우 배우자의 외도에 대해 간통죄로 처벌할 수는 없겠지만 부정행행위를 이유로 위자료를 받을 수는 있다.

함께 살기만 해서 사실혼이 되는 것은 아니고 사실상의 혼인 관계를 영위하고자 하는 의사와 상식적으로 부부 생활이라고 인정할 만한 사실이 존재해야 한다. 이 점이 동거와 다른 점이다. 특별한 사정없이 혼인신고를 미루는 사람들은 ‘살다가 도저히 맞지 않아서 헤어질 수 있는데 혼인신고부터 덜컥 하는 것은 족쇄를 너무 일찍 채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짜 족쇄는 법률관계의 기록이 아니라 온전히 상대를 믿지 못하고 예측가능하지 않은 삶을 살며 불안해하는 마음이다.

혼인도 계약이라 할 수 있지만, 일반 거래 관계의 계약과는 달리 전면적이고 포괄적인 계약이다. 계약이 어그러졌을 때 충격은 돈으로 회복되기 어렵다. 혼인은 신중하게 결정하되 순수하고도 모든 것을 걸 필요가 있지 않을까.

가벼운 배는 작은 물살에도 뒤집힌다. 적당한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아내, 혹은 남편과 결혼이라는 긴 여행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동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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