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원이 지난 8월 29일 수감중이던 대전교도소에서 다시 청송교도소로 이감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신씨가 지난해 말 청송교소도에서 대전교도소로 이감된지 약 8개월만이다. 신씨가 다시 청송으로 이감된 내막은 무엇일까.

영화 제작 접촉막아

10일 오후. 신씨의 남동생과 전화통화를 할 수 있었다. 그는 담담하게 전화를 받았지만 언론을 경계하는 기색이 뚜렷했다. 동생과 통화를 하는 도중에 수화기 건너편에서는 “끊어! 끊으라고!”하는 고함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가족들이 무척 예민한 상태라는 것을 짐작케 했다. 신씨의 남동생은 통화자체를 곤란해하며 대부분의 질문에 “죄송합니다”라는 말로 대신했다. 신씨의 근황에 대해서도 “요즘 면회를 안가봐서 모르겠다”며 대답을 피했다. 또 “최근에는 아버지만 면회를 갔다 오신 걸로 알고 있다”며 “그냥 잘 있다고 하더라”는 말만 반복했다. 다만 워낙 운동을 열심히 하는터라 신씨의 건강상태는 양호하다고 전했다.

그러나 대화도중 신씨가 대전교도소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어디로 이감됐는지에 대해 극구 함구하던 그는 “형님은 다시 청송으로 옮겼습니다”라고 어렵게 털어놨다. 청송에서 대전교도소로 이감된지 불과 8개월만에 신씨가 다시 청송으로 간 이유는 무엇일까.신씨 동생에 따르면 신씨의 대전 교도소 생활은 그다지 편안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교도소측에서 형님을 무척 괴롭힌 걸로 안다. 형님이 많이 고생한 것 같고 힘들어했다고 하더라. 여러 가지 처우가 좋지 못했다고 들었다. 그래서 형님이 다시 청송으로 보내달라고 해서 옮기게 됐다”고 말했다.

이감은 수용처우상 문제

그러나 대전교도소측의 설명은 다르다. 보안과 관계자에 따르면 신씨의 청송교도소 이감은 신씨의 요청에 의해서가 아니라 ‘수용처우상’의 문제다. 또 신출귀몰한 탈주행각을 벌인 신씨가 여전히 교도소내에서는 특별관리 대상이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그는 “신씨의 경우 아무래도 좀 더 각별한 주의를 요하는 것이 사실이다. 대전교도소의 경우 시설구조상 신씨를 수용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판단하에 이감을 결정했다”며 “6개월~1년마다 재소자들을 적절한 수용기관으로 옮기는 것은 신씨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종종 있는 일”이라 설명했다.청송으로 옮겨달라는 신씨의 요청이 받아들여진 것이냐는 질문에 교도소측은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관계자는 “대전교도소는 장기수들만 400명이 넘는다. ‘요주의 인물’인 신씨를 일일이 관리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며 “재소자가 원한다고 옮긴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그렇다면 교도행정이 엉망이 될 것”이라 일축했다. 신씨가 재이감된 청송 제2교도소 관계자 역시 비슷한 입장이다. 그는 “여기는 100% 독방 시스템이다. 신씨처럼 유명한(?) 인물일 경우 다수의 장기수들을 관리하는 대전교도소보다는 아무래도 이곳에서 관리하는 것이 수월하다는 판단에서 이뤄진 일”이라 설명했다. 다만 개미 한마리 빠져나가지 못한다는 최고의 감호경비를 자랑하는 청송교도소지만 개인 시간이 좀 더 자유롭게 주어지는터라 신씨에게는 오히려 편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신씨는 여전히 요주의 인물

그렇다면 신씨 동생의 말대로 신씨의 대전교도소 생활에 어떤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청송에서 대전으로 이감된지 불과 8개월만에 다시 청송으로 이감된 것으로 봐서 분명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보안과 관계자는 “특별히 난동을 피우거나 큰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신씨가 다른 재소자들에 비해 관리가 어려운 인물이었음은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교도소측과 신씨가 적잖은 갈등을 겪었음을 짐작케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교도소측은 신씨의 구체적인 대전교도소 수감생활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관계자는 “신씨의 일거수일투족이 여전히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만큼 신씨는 언론을 은연중 많이 의식한다”고 말했다. 언론의 과도한 관심이 일종의 ‘영웅심리’를 자극해서 교화에 어려움을 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또 신씨의 속내를 잘 모르는 청소년들까지 그를 영웅화하고 동정심을 갖게 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몇 달전 국내 몇몇 영화사에서 신씨의 얘기를 영화화하고자 신씨와 여러번 접촉했으나 교도소측에서 나서서 이를 막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는 것.

영웅화, 동정심 우려

관계자는 신씨의 행동을 쭉 지켜본 결과 신씨가 여전히 세상에 미련이 많은 것 같다고 전했다. 세상과 단절된 생활을 하는 ‘무기수’라고는 볼 수 없을 만큼 세상에 강한 의욕을 갖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언제 어떤 돌발행동을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교도소측에서는 그를 항상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신씨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개인적인 성격이나 신상, 가족과 관련된 문제기 때문에 자세한 것을 일일이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켜본 결과 신씨는 아직 멀었다. 인격적으로도 교화될 부분이 많다는 말이다”라고 귀띔했다. 그는 이어 “사실 신씨가 오랫동안 수감생활을 한 것도 아니지 않나. 몇가지 면만 부각되어 언론에 비춰지는 대로 그가 모범적이고 착실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만 믿는다면 곤란하다”고 덧붙였다.


# 대전교도소 출소자 S씨 인터뷰
“청송으로 가고 싶어했다”

대전교도소에서 얼마전 출소했다는 S씨는 12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무척 흥분된 목소리로 교도소내에서 여전히 행해지고 있는 구타 및 인권유린 현장을 고발했다. S씨는 “‘인권’이라는 말은 교도소내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수많은 재소자들이 인간취급을 받지 못한 채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특히 대전교도소의 경우 형량이 높은 장기수들을 수용하고 있어서 그런지 욕설과 구타까지 행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일부 재소자의 경우에는 족쇄는 물론 리어카를 묶는 줄로 온몸을 꽁꽁 묶은 채 대여섯개의 자물쇠를 채워놓는 등 ‘개만도 못한’ 대우가 행해졌다고 전했다. 재소자들이 인권위에 제보를 했지만 그때마다 기각결정이 났다는 것. 그러나 이에 대해 교도소측은 “요즘이 어떤 시댄데 구타가 이뤄지겠는가.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완강히 일축했다.

“말 한마디라도 함부로 했다가 재소자들이 걸고 넘어질 경우 문제가 심각해진다. 인권유린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 교도소 관계자의 주장이다.S씨는 신창원과의 특별한 인연에 대해서도 말했다. 지난 97년 부산 교도소에서 신씨를 처음 알게 됐다는 그는 “신씨는 모든 운동에 천부적 소질을 지닌 사람”이라며 “특히 체육대회때 달리기는 항상 1등이었다”고 회상했다. 몇 달전 대전교도소 의무실에서 신씨를 다시 만나 인사를 나눈 후로 운동시간에 틈틈이 얘기를 주고 받았다는 S씨는 신씨의 대전 교도소 생활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말해주었다. S씨에 따르면 신씨는 대전 교도소생활을 무척 힘들어했으며 “청송으로 다시 가고 싶다”는 말을 여러차례 했다고 한다. 17사에 수감되어 있던 신씨에게는 운동을 할때도 3명의 기동대원들이 달라붙어 감시가 이뤄졌으며, 교도관들이 그에게만큼은 일절의 편의도 봐주지 않아 종종 심한 말다툼을 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17사는 지난해 교도관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은 김모씨와 같은 중범죄자들이 수감되어 있는 곳이다.

신씨가 너무 힘들어하자 신씨의 누나가 올 여름에 교도관들에게 ‘잘 좀 봐주라’며 특별히 부탁을 했음에도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 한편 S씨는 신씨에 대해 화가나면 불같지만 평소에는 조용조용하고 ‘인간적’인 사람이라고 평했다. 환갑이 넘은 재소자에게 교도관들이 과도하다 싶을 때는 먼저 나서서 ‘어른한테 그러지 말라’고 말리는가하면 재소자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넬 줄 아는 인간적인 모습을 자주 접했다는 것이 S씨의 말이다. 또 신씨는 의외로 순수해서 가식적이거나 이중적으로 자신을 포장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신씨는 자신을 드러내기를 원치 않는 성격으로 언론플레이를 한다거나 영웅심리에 젖어 있다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고 전했다. 다만 가족들의 면회도 예전보다 뜸해지고 독방생활이 계속되자 무척 갑갑해했으며 세상에 대한 강한 그리움을 표현했다고 S씨는 전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