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몇몇 언론은 원로 영화배우 N씨의 체포 영장 소식을 보도했다. 다단계업체 명예회장으로 활동하던 N씨가 투자금을 불법 유치한 혐의로 내사를 받던 중 중국으로 출국, 경찰이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신병확보에 나섰다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그간 주옥같은 작품에 출연, 탄탄한 연기력을 인정받으며 한국영화계의 원로배우로 명망이 높았던 N씨가 불법 다단계 회사에 연루됐다는 소식은 사람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N씨의 체포영장은 사실무근

사건을 담당한 서울경찰청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일부 언론의 보도내용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광역수사대 정준호 반장은 “사건 관련 인물에 대한 구속영장은 이미 10월 중순에 발부됐고, 이에 따라 회사 사장 우모씨는 현재 재판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명예회장으로 활동했던 영화배우 N씨에 대한 조사도 우리측에서는 이미 끝났는데 왜 갑자기 그런 보도가 나갔는지 모르겠다”며 어리둥절해했다.

경찰에 따르면 N씨는 경찰이 R사에 대해 조사를 벌이던 지난 7월, 부인의 신병치료를 이유로 중국으로 출국한 뒤 3차례의 소환요구에 불응하다 10월 초 법원으로부터 체포영장이 발부되고 지명수배와 기소중지 조치가 내려지자 11월초 귀국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재파악이 되지 않아 20일자로 N씨에 대해 체포영장이 발부됐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이미 사건은 서울중앙지검으로 넘어간 상태라는 것이다.서울중앙지검 형사4부 관계자는 “현재 이 사건은 마무리된 것이 아니며 계속 조사중인 상태”라고 전했다. 검찰 관계자는 “N씨가 11월 초 귀국, 검찰에 자진 출석했다. N씨는 지난 17일에도 조사를 받은 뒤 귀가했으며, 지명수배는 해제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N씨 “나도 피해자” 혐의 부인

검찰에 따르면 N씨는 R사의 명예회장으로 홍보를 맡아 온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R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유명 영화배우인 N씨가 자신의 인지도를 이용, 투자자들에게 투자를 권유해 손실을 입혔을지 모른다는 가능성에도 무게를 두고 방문판매법과 유사수신행위규제법 위반 여부에 대해 조사를 벌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N씨의 혐의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없다. 검찰은 “N씨가 R사의 불법 투자자 모집에 구체적으로 개입했는지의 여부는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상태”라고 밝혔다.검찰에 따르면 N씨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N씨는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R사의 사장 우모씨와의 인연으로 명예회장으로 활동했으나 경영에 대해서는 관여한 바가 없으며, 오히려 자신도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 사업에 투자하면 높은 배당금을 주겠다는 말을 믿고 자신도 투자를 했는데, 아무런 이득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명예회장으로서 N씨가 유명세를 이용, 회사를 홍보한 점은 인정되지만, 불법행위 여부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상태다. N씨 자신 역시 R사에 돈을 투자했다가 손실을 입은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다”며 “추가 혐의가 없다면 불구속 상태에서 조사를 계속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R사에 대한 관심도 증폭되고 있다. 2004년 6월 창립된 R사는 국내 최초로 가정용 의료 기기 시장에 렌털 마케팅 개념을 도입해 주목을 받았다. 고가의 의료 장비를 구매하기 어려운 서민층을 상대로 렌털 영업전략을 도입한 이 회사는 누구나 부담 없이 최첨단 의료기의 효능을 체험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으로 호평을 받아 한때 하루 매출액이 30억원에 이르는 등 급격한 성장을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R사 회장 한때 ‘성공스토리’ 주인공

회사가 급격한 성장세를 이루자 R사에 대한 언론의 반응도 뜨거웠다. 이 회사의 제품은 모 언론사가 주최하는 우수 기업상, 우수 마케팅대상 및 히트상품으로 여러차례 선정되었다. 또 회사 사장인 우모씨 역시 ‘윈윈(Win-Win)형 블루오션 전략’의 선두주자로 평가받으며 ‘성공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급부상했다.그러나 이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과 검찰 관계자의 말을 종합해본 결과 R사의 실상은 언론에 비춰진 이미지와는 달랐다. 경찰 관계자가 지적한 R사의 문제점은 확정금리 배당조건을 내세워 투자자를 모집했다는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R사는 “의료기 임대사업에 투자하면 투자금의 30~250%의 배당금을 주겠다”고 속여 1년여간 투자자 5,900여명을 모집, 3,100억원 상당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러나 경찰에 따르면 일정수익의 확정금리를 제시해 광고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것이다.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회사가 수십억에 달하는 월 매출을 올리고 있다는 소문과는 달리 탄탄한 재정기반을 갖춘 회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검찰은 이 회사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재정부실을 꼽았다. 검찰 관계자는 “R사는 돈을 지급할 능력도 없으면서 높은 배당금을 내걸고 투자자를 모집한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재정적으로 취약한 회사가 투자자를 모집하기 위해 내건 조건은 명백한 ‘사기’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또 R사가 방판(방문판매) 등록도 되어있지 않은 회사였다는 것도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R사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은 이번 사건과 관련, N씨가 조사를 받은 것과 직결된다. 즉, 투자자를 끌어들이는 과정에서 N씨가 어느정도의 역할을 했으며, 어떤 영향력을 미쳤는지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다는 것이다.특히 N씨의 아들이 대표이사로 있는 모 일간지 2004년 12월 15일자에 따르면 “OO건강랜드가 14일 개장식과 함께 본격 운영에 들어갔다. (중략) R사 회장 N씨, J의료기 대표이사 우모씨 등 관련 인사들이 개장식에 참석했다”는 실명기사도 나와 있다.

# R사 관계자 ‘모르쇠’로 일관

R사측으로부터는 이번 사건과 관련, 어떠한 사실도 확인할 수 없었다. R사 관계자는 “우리 회사는 홍보팀 자체가 없다. 답변을 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현재 회사의 사정에 대해서도 그는 “나는 전화만 받을 뿐 아는 바가 없다. 실질적인 업무 관계자들은 회사에 없다”며 대답을 피했다. 그에 따르면 회사의 간부나 경영진들은 회사에 나오지 않는 상태며, 전화연결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N씨에 대해서도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러나 과거 R사에서 근무했다는 O씨의 얘기는 이번 사건에 대해 일절 아는 바가 없다는 관계자의 말과는 달랐다. 이상한 정황들은 지난 여름부터 포착됐으며 경찰이 조사에 들어간 직후부터 회사는 휘청거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는 “경영진들이 조사를 받고 있는 상황인만큼 R사는 영업중단 상태”라며 “수사가 시작된 7,8월경부터 영업은 중단됐다고 보는 편이 맞다”고 전했다. 그는 N씨에 대해 “홍보 역할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며 “N씨가 영업에 관여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가끔씩 회사에 들른 것을 본 적이 있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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