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우리가 세월호 침몰 사태에 분노한건 ‘해피아’들과 유병언 일가의 탐욕에 찬 비리 행태 때문이 아니었다. 배에 이상이 발생한 때부터 침몰할 때까지 1시간동안 우리 눈에 비친 일들이 너무 황당하고 충격적이어서였다. 최초 사고 시점에 어느 누구도 학생들을 포함한 탑승객들에게 탈출하라는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는 대목은 설마 선장이하 선원들이 자기들만 살려고 허둥댄 짓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탈출 명령에 수백명 승객들이 우왕좌왕 하게 되면 해경 구조선이 도착도 하기 전에 배가 가라앉을지 모른다는 염려가 그들 중에 반드시 있었을 것이라고 여긴 게다. 만약 사고현장에 도착한 해경이 구조 임무를 원활하게 해냈다면 승객들을 나몰라라 팽개쳤던 선장과 선원들이 그나마 탑승 학생들의 동요를 막아 구조를 성공케 했다는 위안이 가능할 수 있었던 측면이다.

그런데 해경이 현장에 도착하고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못해서 배안에 갇힌 어린 학생들이 “해경이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면서 속절없이 그대로 물속에 가라앉아야만 했던 야만스러운 광경에 온 국민이 치를 떤 것이다. 누구 말처럼 해상에서도 육지처럼 온갖 교통사고가 날 수 있다. 서로 추돌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고, 태풍에 조난당할 수도 있고, 암초에 걸려 넘어질 수도 있다.

육지에서도 대형 화물 과적 차량이 적재량을 못 이겨 넘어지는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이럴 때 화물주나 운수업자에 대한 비난은 거의 없다. 사고처리 후 대충 벌과금 물고 인명피해 없으면 그걸로 끝일 것이다. 바로 그런 점이다. 세월호 사고 역시 해경이 민첩하게 대응해서 대형참사로 이어지지만 않았으면 우린 또 그렇게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2014년 잔인한 4월의 세계를 경악케 만든 세월호 참사가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라는 하늘의 경고로 여겨지고 이 경고를 무시하면 더 큰 재앙을 맞게 될 것이란 두려움마저 생긴다. 희생자 가족들에겐 매 맞을 소리겠으나 민주주의가 피를 먹고 자란다고 한 것처럼 국가 발전에는 언제나 국민의 고귀한 희생이 따랐다. 도피중인 유병언 부자를 빨리 잡아야 하지만 세월호 참사가 유병언 일가의 재산을 찾아내 묶고 유병언 부자(父子)를 법정에 세우는 게 본질은 아니다.

벌써 세월호 사고가 무심한 세월 따라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조금씩 사람들 가슴을 떠나려할 때 이번에는 군(軍)에서 또 부모들 애간장 녹이는 어이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5명의 장병이 희생당한 22사단 총기사고 역시 최초 공격을 받은 직후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 한 시간 넘게 두 시간 가까이 아무런 응급조치를 받지 못한 채 죽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살릴 수 있는 귀한시간을 속수무책으로 보내 참사로 이어지게 했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야만적 상황을 빚었다.

이런 예기하지 못한 큰 사고들이 복잡한 사회에서 언제 또 일어날지 모른다. 철저한 점검이 물론 중요하지만 사고 후의 수습책은 국격의 문제이다. 드러난 인재(人災)는 말할 것 없고 태풍피해 같은 천재(天災)도 피해규모로는 안전불감증이 만든 인재가 많았다. 곧 장마가 밀어닥칠 시기에 어느 방송사가 전국의 수해위험 지역을 돌아보니 아찔해 보이는 제방 등 시설물이 육안으로만 몇 십군데 였다는 보도가 나왔다.

야만국가가 따로 있는 게 아닐 것이다. 국민의 생활고를 해결치 못하는 나라는 후진국에 속하지만 국민의 생명을 눈앞에서 죽게 버려두는 나라는 변명 못할 야만국가가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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