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 김무성 체재 ... 바주류 권력이동

▲ 지난 14일 송파구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패한 서청원 의원이 무대에서 내려가고 있다. 정대웅 기자

“미래를 보고 선택한 것”…차기 대권구도에 영향 줄 듯

[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집권여당 새누리당의 새 지도부를 뽑는 7·14 전당대회를 앞둔 지난 봄 무렵 여권 내 친박계(親朴·친 박근혜 대통령 계열) 핵심 인사들은 긴박하게 움직였다. 당 대표 후보로 내세울 친박계 대표주자를 고르기 위해서다. 당시엔 김무성 의원이 사실상 출사표를 던진 상태였다. 당시 청와대 이정현 홍보수석과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 홍문종 사무총장, 김재원 전략기획본부장,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 등 친박 핵심들은 ‘김무성 대표 체제’만은 막아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김 의원은 ‘친박계 좌장’이었다가 ‘비박계 좌장’으로 돌아선 인물이다. 박 대통령이 대권주자일 때 몇 차례 갈등을 빚다가 세종시 원안 수정 파동에서 ‘절충안’을 제시했다가 눈 밖에 났다. 2012년 대선에서 막판에 선대위 총괄본부장을 맡아 친박계 좌장으로 복귀하는 듯 했으나 ‘김무성의 정치’를 하기 위해 백의종군을 선언했다. 지난해 4·24 부산 영도 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에 재입성한 뒤엔 활발하게 독자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그의 별명을 딴 ‘무대(무성이 대장)계’가 등장하면서 단숨에 차기 대권주자 반열에 올랐다.

단숨에 대권주자 반열 올라

만일 여권의 유력 대권주자인 김 의원이 당권을 장악하면 박 대통령의 힘이 급격히 떨어질 것이란 게 친박 핵심들의 판단이었다. 특히 김 의원이 ‘MB 정부의 박근혜’ 역할을 할 것으로 우려했다. 박 대통령이 이명박 정부 시절 세종시 문제 같은 대형 이슈에 대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면서 위상을 높여 나간 사례를 벤치마킹할 수 있다는 분석이었다.

김 의원은 이 대목에 대해 당시 “청와대 일각에서 나를 견제하고 모함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김무성이 대표가 되면 레임덕이 빨리 온다’ ‘대통령과 각을 세울 거다’ ‘껄끄럽다’ 하는 말들이 들린다는 거였다.

실제로 그 시점에 청와대 핵심 참모와 새누리당 친박 핵심부에선 그런 기류가 감돌았다. 박 대통령에게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김 의원이 ‘미래 권력’으로 등장하면 청와대가 여당을 통제하면서 국정운영을 일사분란하게 이끌어 가기 어렵다는 걱정을 했다.

따라서 전당대회에서 김 의원에게 맞설 강력한 친박계 대항마가 필요했다. 그 무렵 친박 핵심 그룹은 다양한 카드를 검토했다.

‘1번 카드’는 지난해 10·30 경기 화성갑 보궐선거를 통해서 정계에 복귀한 서청원 의원이었다. 그가 정치와 선거경험이 풍부한 데다, 대권 욕심이 없기 때문에 당 대표가 되더라도 박 대통령과 부딪칠 일이 전혀 없을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다만, 서 의원은 이미 한 차례 당 대표를 지냈고, 과거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두 차례나 사법처리를 받은 전력이 걸림돌이었다.

서 의원 본인도 그 때까지는 “명예회복을 위해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나선 것이지 당 대표를 다시 할 생각이 없다. 또 상도동계 정치 후배인 김무성 의원과 어떻게 대결을 벌이느냐”며 손사래를 쳤다고 한다.

한때 강창희 대표 카드 검토

그러자 친박 핵심부는 ‘2번 카드’를 꺼내들었다. 황우여 당시 대표를 19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으로 보내고 임기가 끝나는 강창희 국회의장을 당 대표 경선에 내세우는 복안이었다. 그러나 대전을 텃밭으로 하는 강 의장은 당원은 물론, 국민여론에서도 표의 확장성이 별로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강 의장도 “입법부의 수장(首長)을 지낸 사람이 정당 대표 경선에 나서는 건 옳지 않다. 당의 원로로 남겠다”고 출마에 부정적인 생각을 내비쳤다. 결국 ‘2번 카드’는 접었다.

마지막으로 등장한 ‘3번 카드’는 ‘최경환 차출론’이었다. 박 대통령의 경제가정교사이자 ‘복심(腹心)’으로 통하는 최경환 당시 원내대표를 친박계의 간판으로 전당대회에 내보내는 방안이 집중 검토됐다. 당시 최 원내대표도 차출에 응할 뜻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친박계 한 중진 의원은 “‘최경환 카드’가 유력하게 검토됐고, 본인도 출마 채비를 했던 것으로 안다”며 “최 원내대표가 내게도 출마 의사를 피력하며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최 의원은 박근혜 정부의 산실(産室)인 TK(대구·경북) 출신이란 점이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했다. 다른 지역 대의원들의 반발을 살 수 있었던 까닭이다. 박 대통령도 경제전문가인 최 의원을 당 대표로 내세우기보다는 각료로 중용하겠다는 복안을 일찌감치 갖고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최 의원은 최근 개각에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발탁됐다.

결국 친박 핵심부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서청원 의원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서 의원은 당 대표 도전을 공식선언한 뒤 “나는 생각이 없었는데 주변에서 자꾸 나가라고 해서 출마했다”고 밝힌 바 있다.

지방선거 경선도 줄줄이 실패

친박 핵심부는 이후 서청원 후보 당선을 위해 총력전을 펼쳤다. 친박계 의원들의 보좌진을 권역별로 배치하고 사생결단식 각오를 다졌다. 하지만 경선 결과는 김무성 의원의 압승이었다. 서 의원과 함께 친박계 후보로 나섰던 홍문종 의원도 비박계인 김태호·이인제 의원에게 밀려 최고위원 자리에도 앉지 못했다.

김무성 신임 대표체제의 등장은 ‘친박계 굴욕’의 결정판이었다.

앞서 국회의장 후보 경선에서도 친박계 황우여 전 대표가 친이계(親李·친 이명박 전 대통령 계열) 정의화 의원에게 더블스코어 차이로 지는 수모를 당했다. 정 신임 의장은 MB 정부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친이계 박형준 전 의원을 국회 사무총장에 임명하기도 했다.

또 지난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새누리당 후보 경선에서도 친박계 후보들이 대거 나섰으나 비박계인 홍준표(경남지사)·남경필(경기지사)·원희룡(제주지사)·권영진(대구시장) 후보에게 줄줄이 고배를 마셨다.

현 정부 출범 1년반 만에 정권의 중심이 돼야 할 친박계가 맥을 쓰지 못하는 건 세월호 참사와 잇단 인사 실패로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이 뚝 떨어진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다만 이런 현상을 ‘친박계의 몰락’으로까지 볼 수는 없다. 아직 박 대통령의 임기가 전반기인 데다, 민심이 회복되면 친박계도 서서히 제 자리를 찾아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정권 안에서 주도권 이동이 일어나고 있는 건 확실하다. 여권의 차기 대권구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7·4 전당대회 결과는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김무성 대표 미래를 보고 선택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가뜩이나 차기 대권 경쟁구도에서 야권에 비해 여권 후보가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당원들이 계파를 따지지 않고 인물을 보고 투표했다는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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