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성관련 범죄들이 국민적 지탄을 받으며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최연희 의원 여기자 성추행’ 사건과는 달리 다른 국면으로 흘러가고 있다. 우선 여교사 성폭행 사건은 자칫 묻힐 수도 있었다. 그런데 수사기관의 수사나 피해자 본인의 문제제기가 아닌 제 3자에 의해 인테넷을 통해 급속도로 세상에 알려졌다. ‘제 2의 개똥녀사건’으로 번질 조짐도 보이고 있다. 여교사가 법률 상담을 받기 위해 쓴 글에는 ‘자신은 이 사건이 대중에게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분명하게 밝혔다. 하지만 누리꾼들은 이 사건과 관련한 글들을 인터넷에 퍼날랐다. 일부는 사건현장에 있던 교사들까지 성폭행범으로 몰아 실명과 사진을 무차별적으로 공개해 일파만파로 커져 버렸다.

시도만 있었다(?)

서울 구로경찰서는 같은 학교에서 기간제(임시) 교사로 근무했던 여교사를 성폭행한 혐의로 전교조 조합원 서울K중학교 교사 W(28)씨를 구속했다고 20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W씨는 지난 1월 9일 “송별회 겸 회식을 하자”며 지난해 12월 계약이 만료된 기간제 교사 C씨와 같은 학교 남자교사 2명을 자기 집으로 초대했다. 소주 3병과 양주 2병을 나눠 마셨다. 그는 10일 새벽 다른 동료 교사들이 귀가한 뒤 술에 취한 C씨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성폭행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던 W씨는 최근 경찰 조사에서 “(성관계를 하려고) 시도는 했으나, 술에 너무 취해 실제로 성폭행을 하지는 않았다”며 범행 사실을 시인, 현재 구속 수감중이다.

피해 여성은 사건발생 후 대한법률구조공단 사이버상담실에 글을 올리고 법적자문을 구했다. 피해여성은 게시판이 피해자의 이름만 공개되지 않고 운영된다는 사실이 몰랐다고 한다. 그런데 신원이 알려지지 않은 제 3자가 ‘K중 여교사 성폭행 사건’이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상에 유포시켰다. “저는 지난 2005년 4월 25일 쯤부터 동년 12월 28일까지 계약직으로 서울 K중학교에 교과지도와 교육정보부서에서 근무를 했다”는 자기소개와 사건의 내용들이 피해자가 직접 쓴 글로 받아들여졌던 것. 이에 누리꾼들은 이 글을 게시판과 포털 사이트에 퍼나르며 “성폭행범이 교사라니 치가 떨린다”며 “파렴치범들의 신상을 공개하자”고 주장했다.

법적 자문 구하려다 ‘봉변’

이 외에도 입에 담기 힘든 욕설로 도배하기 시작했다. ‘전교조 조합은 성폭행범 집단이다’, ‘똑같은 방법으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등의 사이버폭력 수준의 글들도 비일비재하다. 또한 자신을 K중학교 학생이라고 밝힌 누리꾼은 “(이번 사건과 연루된 교사들은) 학교에서 몰래 야한 동영상을 보다가 학생에게 들키는 등 원래 학생들 사이에서 변태로 불렸다”는 글을 올렸다. 다른 누리꾼도 “한 교사는 수업 시간에 여학생들이 질문하면 다가와서 어깨동무를 했기 때문에 학생들이 모두 싫어했다”는 등의 글을 올렸다.

‘주요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에 이 사건을 1위에 올리자’는 주장도 나왔다. 실제 ‘여교사 성폭행’ 사건 관련 글은 지난 21일 한때 실시간 검색어 순위 1위에 올랐다. 가해자와 관련자들의 처벌을 요구하는 서명운동도 이곳저곳에서 벌어졌다. 일부 네티즌들은 관련자들의 실명과 사진을 공개하고, 사실과 다른 내용까지 덧붙여 과장·확대·재생산했다. 회식에 동석했던 남자 교사 2명은 이미 경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네티즌은 이들까지 공범으로 몰아붙쳤다.

마녀사냥식 대응 지양해야

피해여성의 상담을 맡은 천주교성폭력상담소 관계자는 “현재 인터넷에 유포 중인 글은 피해여성이 쓴 글이 각색되거나 왜곡된 것”이라고 밝혔다. 피해자와 관련자들은 네티즌의 무분별한 ‘퍼 나르기’와 ‘마녀사냥식’ 비판으로 심각한 심적 고통을 겪고 있다. 상담소 관계자는 “피해여성은 사건의 구체적인 내용이 알려져 자신의 개인 정보가 노출되는 것과 관련자들의 실명과 사진이 공개된데 대해 상당한 심적 부담과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며 “피해여성이 더 이상 이 사건이 인터넷상에서 논의되지 않기를 간곡히 바라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 조사 결과 무혐의로 밝혀진 동료 교사들 또한 정상적 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심적 고통을 느끼고 있는 상황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학교도 피해를 보고 있다. 주요 사이트에서 해당 학교 이름을 입력하면 관련 사건 내용이 담긴 글과 가해 혐의의 교사 사진까지 뜬다. 이 학교 관계자는 “학교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글을 모두 삭제했다”고 말했다. 포털사이트 관계자도 “이와 관련된 글을 삭제하고 있지만, 블로그, 미니홈피 등을 통해 확산되는 것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하소연했다.기간제 교사란 학교장이 1년 또는 2년 등 기간을 두고 채용하는 임시교사를 말한다. 정규직 교사가 출산·질병 등으로 정상적으로 교단에 설 수 없을 때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채용한다. 문제는 이들의 신분이 불안하다는 점이다.

2003년 4월 충남 B초등학교에서 S교장이 기간제 여교사에게 차 심부름을 시켰다가 문제된 적이 있다. 당시 기간제 교사는 이 일을 인터넷에 올렸고 전교조의 항의를 받은 S교장은 고민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교조는 당시 기간제 교사의 인권 문제를 부각하며 교육부에 대책을 요구했다. 전교조도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해당 교사를 직위해제하고, 기간제교사의 교권 신장과 여교사 인권보호를 위해 노력할 뜻을 밝혔다. 대검찰청 형사부는 인터넷 명예훼손은 피해자 고소 없이도 수사기관이 적극 단속하겠다고 밝혔다.

고소가 접수되면 수사에 착수하던 관행과 달리 피해자 고소 없이도 사건을 파악해 수사한다는 것이다. 또한 경찰청 사이버 테러대응센터는 “원래의 글과 달리 네티즌들이 글을 퍼나르면서 가필(加筆)해 사건을 왜곡시켰다면 이는 명백한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이라며 “특히 술자리에 참석했다는 이유만으로 성폭행범으로 단정해 실명과 사진을 공개한 것은 중대한 범죄”라고 말했다. 현행법상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은 7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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