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까지 출근, 퇴근 시간은 따로 없다

▲ <뉴시스>

출범 초 칼퇴근서 “365일 무휴 근무하라”
종편 출연 등 공세적으로 국정홍보 나서

“주말에 차분히 챙기다 보니까 또 그때 연락을 하게 돼서, 그래서 어차피 우리는 주말 없이 살아야 할 것 같아요. 다 각오하시고 들어오지 않으셨어요? 지금 각오한다면 때가 너무 늦었어요.(웃음)”

박근혜 대통령이 월요일인 지난 14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참모들에게 ‘365일 무휴 근무’를 독려하자 참석자들은 크게 웃으며 동감을 표시했다. 수석들은 전날 일요일과 그 전날 토요일에도 김기춘 비서실장이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 참석한 터였다.

청와대 고위 참모는 “우리는 ‘월 화 수 목 금 금 금’이 아니라 ‘월 화 수 목 월 월 월’처럼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반 직장 같으면 금요일에 주말 분위기가 나지만 지금 청와대는 금요일은 물론, 토·일요일에도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처럼 바짝 긴장한 상태에서 근무한다는 의미다.

그는 또 “아침 7시까지 출근하고, 저녁 퇴근 시간은 따로 없다. 일을 마치는 시간이 퇴근 시간”이라며 “그런 생활은 수석비서관부터 비서관, 행정관은 물론, 사무직 여직원들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사실 박근혜 정부 초기엔 청와대 참모들이 칼 퇴근을 하는 풍조가 있었다. 청와대 연풍문 앞에는 퇴근하는 직원들을 인근 지하철역까지 태워주는 첫 셔틀버스가 오후 6시 10분에 온다. 당시 이 첫 버스에 타려는 직원들이 길게 줄을 섰다고 한다. 과거 정부 청와대에선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풍경이었다.

세월호 참사 후 기강 강화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한 인사는 “우리 때 출근 시간은 수석실별로 다르지만 정무나 홍보 파트 등은 새벽 6시였다”며 “이 때문에 집이 먼 사람들은 청와대 인근 삼청동이나 효자동에서 원룸이나 하숙생활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말했다.

그 이전의 노무현, 김대중, 김영삼 정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청와대 참모들은 스스로 ‘3D 업종’에 종사한다고 한숨을 내쉬곤 했다. 비서실 업무에 매달리느라 개인생활이 없어지고 가족들도 소홀히 하게 되는 까닭이다.

박근혜 정부 초기에 청와대 참모들이 칼 퇴근을 할 수 있었던 건 박 대통령의 업무 스타일과 무관하지 않았다. 여성 최초로 청와대 주인이 된 박 대통령은 관저에서 집무실로 오전 9시 정각에 출근해 별다른 공식 일정이 없으면 6시에 어김없이 사저로 올라갔다. 이 때문에 비서실장부터 수석비서관, 비서관, 행정관, 사무직 여직원까지 줄줄이 칼 퇴근이 가능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가 청와대 풍경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국가 개조, 국가 혁신을 기치로 내건 박 대통령이 가장 우선적으로 청와대 군기잡기에 나섰다. 그러자 과거 정권 청와대보다 오히려 더 빡빡해졌다. 출근 시간이 빨라지고 퇴근시간이 늦어진 건 물론이고, 공휴일도 없어졌다.

박 대통령이 최근 여름휴가를 별도로 가지 않고 청와대 안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으로 대신하기로 결정하자 참모들 사이에선 “우리도 여름휴가를 반납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오갔다.

내부적으론 박 대통령이 별도의 일정을 잡지 않고 관저에 머무는 28일부터 8월 1일까지 닷새 동안 휴가를 떠나란 지침이 내려졌다. 하지만 대통령이 청와대 안에 있는데 같은 시기에 참모들이 일제히 청와대를 비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히 대통령이 직접 참모진을 다그치기 시작한 시점이어서 청와대 비서실은 어느 해보다 무더운 여름을 보내고 있다.

‘지시하고 받아 적는’ TV화면

청와대 참모들의 변화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그동안 박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나 수석비서관회의의 모습은 한마디로 ‘지시하는 대통령과 받아 적는 국무위원(혹은 수석)’이었다. 이런 장면이 TV 화면을 통해 자주 비치면서 박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가 더 깊이 각인됐다.

지금은 달라지고 있다. 지난 22일 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는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2기 내각 각료들이 처음 참석한 회의여서 주목을 받았다. 이 자리서 박 대통령은 내각이 경제 살리기에 총력전을 펼칠 것을 지시하며 특유의 깨알같은 주문을 쏟아냈다. 다른 때 같으면 참석자들이 일일이 받아 적느라 고개도 못 드는 게 익숙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날 회의에선 어느 누구도 받아쓰기를 하지 않았다. 요점만 간략하게 메모할 뿐이었다.

최근 9명 가운데 5명이 새로 선임된 청와대 수석비서관들도 마찬가지다. 수석비서관회의가 부쩍 활력이 붙었다고 한다. 김기춘 실장이 주재하는 회의에선 물론이고, 대통령 주재 회의에서도 할 말은 하는 분위기로 전환됐다고 청와대 고위 참모가 귀띔했다.

이뿐만 아니다. ‘청와대 전(全)수석의 홍보수석화’도 논의됐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 참모들은 그동안 언론 접촉을 가급적 꺼렸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조차 참모들 얼굴 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조용하게 일하는 분위기가 확산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청와대의 활동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고, 국정성과들도 국민들에게 전달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

가령 박 대통령 비선라인의 인사 개입 의혹이 잇달아 보도되는데도 공식적으로 해명하려는 인사 파트 참모도 없었다. ‘만만회’의 멤버로 꼽혔던 이재만 총무비서관도 마찬가지였다. 함께 지목됐던 박 대통령 동생 박지만씨나, 고(故) 최태민 목사 사위였던 정윤회씨는 공인 신분이 아니어서 그렇다 쳐도 현직 청와대 참모인 이 비서관마저 언론보도와 야당의 공격에 침묵했다. 야당은 이 비서관이 종종 서류를 싸들고 청와대 밖으로 나가서 정부 요직 인사 자료를 정윤회씨에게 ‘보고’하는 거 아니냐는 의혹마저 제기했지만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

인사 개입 의혹에 묵묵부답

청와대 김동극 인사지원팀장(2급 선임행정관)은 김기춘 실장이 위원장인 청와대 인사위원회의 실무책임자다. 마땅히 비선라인이 청와대의 공식 인사 시스템을 무시하고 인사에 개입한다는 의혹에 대해 입장을 밝혀야 하지만 단 한 번도 해명하지 않았다.

이번 비선라인 인사개입 논란뿐만 아니다. 김기춘 실장은 자신의 거취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루머에 가까운 여러 소문들이 나돌았지만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재만 비서관과 함께 ‘문고리 권력 3인방’으로 불리는 정호성 1부속실 비서관, 안봉근 2부속실 비서관도 자신들을 놓고 권력전횡설이 정권 초반부터 기정사실처럼 떠돌고 있는데도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그러자 정가에선 “뭔가 켕기는 구석이 있기 때문에 나서지 못하는 거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의혹이 꼬리를 물고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청와대 참모들의 언론기피증’이란 지적까지 제기되자 새로운 라인업 구성을 마친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은 언론을 통해 공세적으로 국정을 홍보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한다. 불통 대통령, 불통 청와대 논란을 차단하기 위해 수석비서관들이 앞장서 국민들과 소통하는 길을 찾기 시작했다는 전언이다.

현재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방안은 과거 정권에선 아예 없었던 종합편성채널을 활용해 국정홍보를 하는 일이다. 현재 종편이 시사 토크 프로그램 편성에 치중하면서 정치여론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매체로 자리 잡았다.

따라서 각종 국정현안이 이슈로 등장할 때마다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수석비서관이 직접 종편에 출연해 청와대와 정부의 입장을 설명하는 것으로 국민들의 궁금증을 해소해 주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주로 세종시에 머무는 장관들은 방송출연을 위해 수시로 서울로 오기는 어렵다. 반면, 청와대 참모들은 종편에 적극 출연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 있다. 거의 모든 종편 방송국은 청와대와 승용차로 불과 10분 거리에 있다.

특히 새로운 진용이 짜인 청와대 참모 중엔 조윤선 정무수석처럼 대중성을 갖춘 정치인 출신도 있다. 안종범 경제수석은 경제학자 출신으로 국회의원까지 지내 경제현안이 발생했을 때 공세적으로 정권의 입장을 설명하고,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를 갖추고 있다. 신설되는 인사수석의 경우 지금처럼 인사 실패 논란이 일어날 때 종편에 출연해 적극 방어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김기춘 실장 청와대 떠날 것”

다만, 청와대 참모들의 언론 노출에 부정적인 김기춘 실장이 수석비서관들의 방송 출연을 흔쾌히 수락할지는 미지수다. 김 실장은 참모들이 방송에 나가 앵커나 다른 패널들과 토론을 할 경우 말꼬리를 잡혀 또 다른 논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판단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 대목과 관련해 여권 내부 정보에도 밝은 야권의 한 중진 의원은 “김 실장이 2기 내각 구성이 완료되면 퇴진할 생각인 걸로 안다”고 밝혔다. 아직 인사청문회가 완료되지 않은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정식 임명되고, 정성근 전 후보자의 자진사퇴로 공석 상태인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새로 지명돼 인사청문회 절차를 통과하는 시점에 홀가분하게 청와대를 떠날 것이란 설명이다.

청와대 참모들이 언론접촉에 적극성을 띠려고 하는 건 박 대통령의 ‘의중’을 읽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최근 들어 자신부터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청와대 참모들에게도 변화를 주문하고 있다. 무엇보다 국무회의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받아쓰기’가 사라진 건 박 대통령의 전반적인 소통 방식이 달라졌음을 의미한다. 여기에 덧붙여 참모들에게도 대 국민 직접 설득을 지시했다는 말이 들린다.

박 대통령은 정홍원 국무총리로부터 독대 보고를 받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고 한다. 최근 최경환 부총리를 청와대로 불러 대면 보고를 받은 것으로도 알려진다. 조만간 다른 부처 장관들로부터도 순차적으로 직접 보고를 받을 예정이다. 지금까지는 장관들이 대통령을 만날 기회가 극히 제한돼 있었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 참모들과도 ‘스킨십’을 늘려나가고 있다. 최근 9개 수석비서관실로부터 순차적으로 대면 보고를 받았다. 이 자리에는 수석비서관과 소속 비서관들이 모두 참석해 소관 분야별로 업무를 보고했다. 그동안은 대면보고 대신 서면이나 전화보고를 선호해 왔지만 확 바뀌었다.

박 대통령이 참모들에게 공휴일 없는 아침형 인간이 될 것을 지시하고, 대 국민 소통강화를 주문하면서 군기를 잡는 일이 국정운영 스타일의 전반적인 변화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