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이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최근 교사가 학부모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하는가 하면 교실에서 교사가 학생에게 폭행을 당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스승의 권위와 위상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교권을 흔드는 충격적인 사건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 그 수위가 도를 넘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본지는 8년차 교사인 이모(여·34)씨를 만나 이번 사건과 관련, 알려지지 않은 ‘교권침해’ 사례와 그 실상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취재진이 이씨와 연락을 한 건 지난 24일. 경기도 내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상당히 조심스러운 입장이었다. 최근 파문이 일고 있는 교권침해 관련 사안에 대해 교직원과 학생, 학부모 등 모두가 극도로 예민해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서울 소재 A중학교 교사로 2년 째 근무하고 있다는 이씨는 “교사와 학생 간 ‘사제동행(師弟同行)’은 이제 옛말”이라며 “학부모와 교사 사이의 갈등의 골은 이미 곪을 대로 곪은 상태”라는 말로 입을 열었다. 이씨는 “이번에 터진 사건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이라며 “실제론 이보다 심한 사례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하지만 교사들이 피해사례 노출을 꺼려해 속앓이 하는 데 그치고 있다”며 “학교 측도 이미지상 사건의 확대를 우려, 쉬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체벌시 항의 ‘심각’

요즘 교내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이씨에 따르면 최근 들어 학부모에 의한 폭언 및 협박, 폭행 등의 부당한 행위로 인한 교권침해 사례가 크게 증가했다고 한다. 특히 학생지도와 관련해 학부모의 무리한 항의나 협박 등의 사례가 부쩍 늘었다고. “지나치게 일일이 간섭하는 부모들이 늘었어요. 만약에 과제를 하지 않거나 잦은 지각, 시험 부정행위 등을 일삼는 학생들에겐 교육적인 차원에서 어느 정도의 체벌은 당연한 것 아닌가요. 하지만 이에 대해 ‘과잉체벌’ 운운하며 자기 자녀만을 생각하는 몇몇 이기적인 부모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들은 교육부 및 교총에 빗발치게 항의전화를 하는가 하면 협박, 폭언은 기본이고 담임교체, 직위해제, 심지어 민·형사상 고발까지 하죠.” 실제로 이씨는 이 같은 피해를 입은 장본인이다. 물론 사건 종결에 합의가 돼 현 교직생활에 별 무리는 없지만 지금도 당시를 생각하면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라고. 사건은 지금으로부터 3년여 전. 이씨가 경기도 소재 B중학교에 몸담고 있을 때의 일이다. “김모(15)군이라는 학생이 교과서를 여러 번 안 가져와서 그 벌로 일주일 동안 방과 후 10~20분 간 교실 청소를 시켰어요. 당시엔 아무 문제없이 지나갔는데 최근 김군의 아버지가 저에게 찾아와 ‘이 일로 인해 김군이 정신적인 피해를 입어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등 문제가 많다’며 책임지라는 거예요. 진짜 황당했죠.”

고소사건도 비일비재

이 과정에서 김군의 아버지는 이씨의 뺨을 때리고 삿대질을 하는 등 위협적인 제스처를 취하며 “무릎을 꿇고 반드시 용서를 구하게 만들겠다”고 협박까지 했다고 한다. 게다가 김군의 아버지는 사실을 부풀려 “이씨가 김군을 소홀히 대하고 체벌을 했다”면서 이씨를 ‘폭력교사’로 규정하여 행정기관에 진정, 교육청 게시판에 관련 글을 게재하기도 했다고. 이후 이는 ‘허위사실’로 판정, 게시글은 삭제되고 이씨와 김군의 아버지가 합의함으로써 사건은 마무리 됐다.이뿐만이 아니다.

자녀가 따돌림을 받아도 모든 책임은 교사에게 전가되기 일쑤다. 일반적으로 학교에서는 집단 따돌림 등을 파악하기 위해 학생들과 일대일 면담을 하기도 하고 설문조사를 하기도 한다. 그 결과 가해자와 피해자에 대한 제보가 적발되면, 당사자와 그의 부모에게 자세한 정황 및 진상을 확인하고 가해자와 피해자 학생의 학부모끼리 치료비 보상 등 합의가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들의 합의가 원만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학교와 교사에게 책임을 요구하거나 소송을 제기하게 된다는 게 이씨의 설명. 실제로 2006년 1월 전라도 모 중학교에서는 이 같은 집단 따돌림 사건으로 현재 소송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교사는 소송 이래 지금까지도 안정적으로 교직에 전념하지 못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초임 교사는 무시당해

이씨에 따르면 학생들의 폭언·폭행 등 부당행위로 인한 교권침해 사례도 부쩍 늘고 있는 추세다. 신규로 발령받은 교사가 그 대표적인 케이스. 중·고등학교 초임교사는 학생들에게 무시당하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이씨는 “특히 남자 고등학생들은 사회 초년생인 신규 여교사보다 덩치도 크고 나이도 별반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이라며 “또한 입시를 앞두고 학교보다 학원에 의존하는 요즘 추세에 따라 교사들을 만만하게 보거나 무시하는 경향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일례로 작년 경기도 소재 모 중학교에서는 새로 발령받은 미술교사가 수행평가를 실시하던 중 한 남학생(16)이 작품을 부수고 교사에게 대드는 일이 발생했다. 자신의 평가점수가 낮다는 이유에서였다. 서울 소재 모 남자 고등학교에서는 한 건장한 학생(18)이 새로 부임한 영어담당 여교사에 대해 “시험문제를 어렵게 내서 내신 성적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죽여버리겠다”라는 등의 폭언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최근에는 인터넷을 통해 교사들을 인신공격, 허위사실을 유포해 명예훼손을 하기도 한다.

이씨는 “인터넷 포털사이트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통해 집단 인신공격을 받는 경우도 있다”며 “이들은 보통 PC방 등에서 익명으로 욕설, 비방 글 등을 올린다”고 전했다.게시판에는 심한 욕설과 비하발언, 모욕 등의 글이 도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또한 심한 경우 일부 학생들은 교사의 문란한 사생활, 학생과의 염문, 학생을 상대로 성추행 등 허위사실을 유포해 교사들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심각한 정신적 손상을 초래하기도 한다고.

교권 침해 대책 마련 ‘시급’

이처럼 교권이 붕괴되는 이유는 뭘까. 교육부 및 교총 관계자들은 “무엇보다 교사와 학부모, 학생 등 교육주체 간의 신뢰가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또 “학부모 등 교육수요자의 권리가 크게 부각되면서 교육전문가인 교원의 전문적 판단을 무시하고, 자기 자녀만을 생각하는 일부 학부모의 이기심도 배제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그들은 설명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는 소수 학부모와 일부 학생들에게 국한된 문제라는 것. 교총 관계자는 “그래도 아직 우리 사회에는 부모와 스승을 존경하는 학생들이 더 많고, 제자를 사랑하는 교사들이 더 많은 것이 기정 사실”이라며 “최근 불거진 교권침해 사건으로 인해 국민들이 교육계를 폄하하거나 불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교권침해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할 계획”이라며 “이런 사태가 또 벌어질 경우 교사나 학교장이 즉각 경찰에 고발케 하는 등 적극 대응 하겠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2006년부터 부적격교원 대책이 전국적으로 시행, 교육수요자나 제3자에 의한 왜곡사실 유포로 인해 다수의 선량한 교원들이 신분피해와 명예훼손을 당할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는 현세태로 볼 때 ‘명예훼손의 교권침해 피해사례’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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