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차된 차량 유리창에 부착된 휴대폰 번호를 이용해 교통사고를 낸 것처럼 위장해 접근, 성관계를 맺은 뒤 불륜을 미끼로 수천만 원을 뜯어낸 속칭 ‘꽃뱀’ 일당이 경찰에 검거됐다. ‘꽃뱀’이란 이른바 부유한 남성을 유혹해 사기를 치는 여성을 나타내는 은어. 전남 여수경찰서는 지난 5일 꽃뱀 사기행각을 주도한 최모(28)씨와 남편 조모(27)씨, 공범 김모(43)씨를 공갈·협박 혐의로 구속했다.

그러나 경찰이 주목하고 있는 점은 이들 부부가 ‘실제부부’인지 ‘서류상부부’인지의 여부. 경찰은 “이들은 거처가 불확실하고 혼인신고 날짜도 범행을 저지르기 얼마 전인 작년 11월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며 “뭔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는 판단에서 수사를 확대하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경찰은 “압수한 최씨의 통장과 장부에 수천만원씩 돈이 입금된 것으로 보아 피해자가 여럿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하지만 이들이 신고를 꺼려 수사에 어려움이 따르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경찰이 전하는 최씨 일당의 수법은 한 편의 ‘범죄영화’를 연상케 한다. 이들은 각자의 역할에 따라 서로를 1번 선수(알선책), 2번 선수(꽃뱀), 3번 선수(남편) 등으로 구분한 뒤 미리 짜놓은 시나리오대로 범행을 벌여왔다.

돈 궁한 남성 공범 활용

남편 조씨는 인터넷 게임 등을 통해 상대방과 친분을 쌓은 뒤 돈 문제로 곤란을 겪고 있는 남성들을 포섭해 범행에 끌어들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로 이번에 공범으로 붙잡힌 김씨도 이 같은 과정을 거쳐 꽃뱀 일당의 일원이 됐다고 한다.조씨는 “‘물 좋은’ 사람을 한명 알선해 주면 불륜을 가장, 합의금을 뜯어내 나눠주겠다”며 김씨에게 범행을 은밀히 제안했다.

김씨는 그동안 도박 등으로 많은 돈을 탕진한 데다 빚까지 지고 있던 터라 이 같은 유혹에 쉽게 넘어갔다. 김씨는 조씨의 제안에 따라 범행대상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처음엔 자신의 주변인물을 범행대상으로 선정했다고 한다. 그래야 타깃의 생활이나 행동반경 등을 훤히 알 수 있기 때문. 그러나 김씨의 시나리오대로 진행되는 데 계속해서 변수가 따르자 김씨는 타깃을 바꾸기에 이른다.

김씨가 정한 타깃은 대기업 간부 및 공무원들. 그는 퇴근시간에 맞춰 대기업의 주차장으로 가 ‘값비싼’ 차량을 점찍고 그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후 그들을 2~3일간 미행해 집을 알아내고 배후를 캐내면 1단계 역할 끝. 이는 무식하지만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방법치고는 정확한 방법이었다. 이렇게 범행대상, 즉 ‘물주’가 선정되면 1번 선수의 바통은 2번 선수에게 넘겨진다.

외모 ‘짱’ 몸매 ‘짱’ 유인

2번 선수인 최씨는 흔히 잘 알려진 꽃뱀들의 사기행각(무작정 여성이 남성을 유혹해 성관계를 맺고 상대 남성을 협박해 거액의 합의금을 뜯어내는 것)과는 달리 상황에 맞는 ‘빌미’를 만들어 접근했다. 차량 유리창에 휴대폰 번호가 부착돼 있는 차량을 골라 일부러 접촉사고를 낸 뒤 차량 주인을 불러내 유혹하는 방법을 사용했던 것이다.

때문에 최씨는 상대남성에게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었고, 남성 역시 한 치의 의심 없이 최씨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게다가 최씨는 수려한 외모와 늘씬한 몸매의 소유자. 차량 주인이자 상대남성인 A(47)씨는 대기업 간부였다.최씨는 “죄송하다. 반드시 사례하겠다”며 A씨에게 자신의 연락처를 주고 이후 “같이 식사나 하자”며 그를 불러냈다. 이후 최씨 일당의 계획에 따라 A씨는 최씨에게 호감을 드러냈고 결국 감쪽같이 속은 A씨는 최씨와 몇 차례 성관계를 맺고 내연의 관계로 발전했다.

‘신고한다’ 위협 합의 이끌어내

그러던 5월 2일 저녁. 3번 선수인 조씨는 시기가 무르익었다고 판단, 현장에서 바람잡이 역할을 할 김씨를 데리고 현장에 출동했다. 이들은 전북 전주의 한 모텔에서 성관계를 맺은 뒤 나오는 최씨와 A씨를 덮쳤다. 조씨는 “불륜사실을 경찰에 신고하겠다”며 A씨를 협박했고, A씨가 의심하지 못하도록 아내 최씨에게 심한 욕설과 손찌검을 하는 등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때 김씨가 나서서 “조용히 해결하라”며 바람을 잡았고, 당황한 A씨가 오히려 “고소는 하지 말고 합의하자”는 얘기를 꺼내도록 유도했다.

최씨 일당이 A씨에게 요구한 돈은 무려 4천만원. 당장 그런 큰돈을 구하기 어려워 시일을 늦춰보려고도 했지만 계속되는 협박과 재촉에 A씨는 위험을 무릅쓰고 사채까지 끌어다 쓰게 된다. “부인에 이어 회사에도 간통사실을 폭로하겠다”는 협박은 A씨에게 곧 ‘몰락’과도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A씨는 4천만원을 조씨에게 건넴으로써 일단 체면은 지켰지만 감당할 수 없는 이자에 허덕이고 있다는 후문이다.

경찰에 따르면 한바탕 사기극에 놀아난 A씨는 ‘혹시나’하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이 없어 감히 의심 섞인 말을 꺼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고. 그러나 사전에 맞춘 듯이 일이 착착 진행돼 가는 것을 수상히 여긴 A씨가 경찰에 신고하면서 결국 이들 ‘꽃뱀일당’은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경찰 조사결과 최씨 일당은 A씨 사건에 앞서 작년 12월께 전북 전주에서 공무원인 B(44)씨에게도 같은 수법으로 2천5백만원을 뜯어낸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최씨 일당은 부유층 남성과 지위가 높은 사람 중 40대 중후반 남성만을 범행대상으로 선정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래야 협박이 가능하고, 자신의 지위 때문에 체면상 경찰에 신고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피해자 더 있을 것”

그렇다면 이들 부부는 왜 이 같은 꽃뱀 사기행각을 저질렀던 것일까. 이들이 진술한 내용에 따르면 신혼생활을 하는데 형편이 마땅치 않아 목돈이 필요해 이 같은 일을 저질렀다는 것. 경찰은 그러나 꽃뱀 최씨와 남편 조씨가 ‘실제부부’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조사결과 이들의 거처가 불확실한 점, 결혼식을 올리지 않은 점, B씨를 상대로 범행을 저지르기 바로 며칠 전에 혼인신고를 올린 점 등 미심쩍은 구석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사건을 담당한 경찰관계자는 “이들은 범행을 위해 혼인신고를 하고 부부행세를 하며 사기행각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이들이 굳게 입을 다물고 있어 진위를 밝히는데 어려움이 따르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또 경찰은 “압수한 최씨의 통장과 장부에 최근 5개월 동안 수천만원씩 돈이 입금된 것으로 보아 이번에 적발된 사건 외에 피해자가 여럿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하지만 피해자들이 자신의 신분이 탄로날 것을 우려, 신고를 꺼려 수사에 애를 먹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꽃뱀일당’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또한 ‘성’을 이용해 돈을 벌어보겠다는 황금만능주의라는 측면에서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 경찰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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