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검증 방식 어떻게 바뀌나

정무, 홍보라인 교체와 인사수석 신설 계기
내정 검토단계서 언론에 흘려 여론 떠봐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이던 2012년 12월 27일 윤창중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수석대변인이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기자실에 나타났다. 인수위원장과 부위원장 등의 인선 결과를 발표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손에는 투명 테이프로 밀봉된 노란 봉투가 들려 있었다.

윤 수석대변인은 “당선인으로부터 받은 명단을 제가 봉투로 밀봉해서 가지고 왔다. 저는 안 봤다”고 했다. 이어 엄숙한 표정으로 테이프를 떼고 명단을 꺼낸 뒤 김용준 인수위원장 등에 대한 인선 내용을 발표했다 이 장면은 TV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됐다.

그날의 봉투 개봉 퍼포먼스는 ‘박근혜식 인사스타일’의 압축판이었다. 공개된 시스템에 의한 인사가 아니라, 일부 핵심 측근들과만 상의한 뒤 인사를 단행하는 막후 결정 방식이다. 이 때문에 ‘수첩 인사’ ‘밀봉 인사’ ‘깜깜이 인사’ ‘불통 인사’ ‘비선라인 인사’ 등 온갖 부정적인 시선이 박 대통령에게 따라 붙었다.

정무·홍보 전문성 확보

‘박근혜식 인사스타일’은 새 정부 구성과정부터 시작해 최근의 국무총리 및 장관 인선까지 줄줄이 인사 참극이 일어나는 원인이 됐다. 박 대통령에게는 ‘인사가 만사(萬事)’가 아니라 인사가 망사(亡事)가 돼 버렸다. 특히 세월호 참사에 따른 국가 대혁신의 첫 단계로 추진했던 내각 개편마저 차질을 빚으면서 청와대는 만신창이가 돼 버렸다. 뭔가 돌파구가 절실했다.

인사 문제로 혹독한 시련기를 보냈던 박 대통령은 ‘안대희·문창극 국무총리’ 카드가 잇달아 무산된 직후부터 인사 검증 방식 개선 작업에 들어갔다고 한다. 크게 두 갈래였다. 하나는 청와대에 인사수석비서관실을 신설하는 조직개편이었고, 다른 하나는 정무라인과 홍보라인을 교체하는 인적개편이었다.

먼저 인사수석엔 정진철 전 중앙인사위원회 인사정책국장을 앉혔다. 기존 비서실에 있던 김동극 인사지원팀장(2급 선임행정관)도 행정안전부(현 안전행정부) 인사정책관 출신인 만큼 인사행정 전문 관료를 실무 투톱으로 배치한 셈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더 심혈을 기울인 대목은 정무와 홍보라인의 전문성 확보였다. 인사실무도 중요하지만 요직 인선과정에서의 정무적 판단과 ‘언론 플레이’가 인사 성공 여부를 좌우한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무수석의 경우 전임 박준우 수석은 직업외교관 출신으로 정치엔 문외한이나 다름없었다. 실제로 박 전 수석을 두고 여권에서 조차 “존재감이 없다”는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따라서 박 대통령은 국회의원 시절 당 대변인을 지낸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을 차관급인 정무수석에 앉히는 강수를 뒀다.

홍보수석도 마찬가지다. 전임 이정현 수석은 박 대통령이 대권주자일 때 대변인 역할을 오래 했으나 언론의 생리를 파악하고 다가서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박 대통령은 정치부 기자 생활을 오래 한 윤두현 전 YTN 보도국장에게 홍보라인을 맡겼다. 윤 수석은 청와대에 입성하자마자 천영식 전 문화일보 정치부장을 홍보기획비서관으로 발탁했다. 홍보수석실의 김진각 국정홍보비서관도 한국일보 기자 출신이다. 실전 능력을 갖춘 홍보라인을 꾸린 셈이다.

정무수석과 홍보수석은 김기춘 비서실장이 이끄는 청와대 인사위원회의 고정멤버다. 조 수석과 윤 수석이 인사작업에 참여하면서 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동안의 밀봉 인사, 깜깜이 인사에서 탈피해 미리 여론을 탐색하는 방식을 구사하기 시작한 일이 가장 큰 변화다.

정성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의 낙마 이후 다른 인물을 물색하는 과정에서 몇몇 사람을 언론에 슬쩍 흘려 여론을 떠보는 일이 대표적인 사례가 된다.

정 전 후보자가 7월 16일 자진사퇴하고, 다음날 유진룡 장관이 면직된 직후 청와대 주변에선 김정기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후임으로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는 말이 나왔다. 언론은 김 교수가 어떤 인물인지 검증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열흘 후에는 김종덕 홍익대 미술대 교수 이름이 거명되기 시작했다. 김장실 새누리당 의원, 모철민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도 오르내렸다. 언론은 그들의 성향, 경력 등에도 관심을 보였다.

핵심인사가 언론에 흘려

주목할 대목은 이들 4명이 거론되는 수준이 인사철이면 흔히 나돌아 다니는 ‘하마평’과는 발설자부터 다르다는 사실이다. 정권 핵심 인사가 ‘의도’를 갖고 언론에 흘렸다고 한다. 그 ‘의도’는 물론 여론검증이다. 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 중 하나였던 ‘철통 보안’을 폐기하고 언론을 통해 후보자들의 평판 등을 비교평가해 보는 절차를 거치고 있는 셈이다.

한 정치평론가는 “박 대통령이 인사실패 최소화를 위해 과거 DJ(김대중 전 대통령)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즐겨 썼던 방식을 벤치마킹하려는 것”이라며 “조윤선 수석의 정무감각과 윤두현 수석의 홍보감각에 의한 판단을 박 대통령이 받아들인 것 같다”고 말했다.

DJ는 재임 시절 요직 인사를 할 때마다 발탁하고 싶은 인물을 측근들을 통해 언론에 슬쩍 흘려 여론의 반응을 타진해 보곤 했다. 당시 주로 활용된 매체는 조선일보였다. 보수신문인 조선일보가 진보정권과 성향이 맞지는 않아도 현실적으로 최고 판매부수를 유지하는 신문을 선택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김대중 정권 때 청와대를 출입하던 다른 언론사 기자들은 인사 때마다 조선일보에 인사특종을 빼앗겨 불만이 팽배했었다.

‘DJ식 정치’를 추구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유사한 방식을 썼다. 고위 정무직 공무원에 대한 후보자 사전 공개 방식이었다. 정식 임명 절차를 거치기 1주일 전쯤에 후보자를 복수로 공개한 뒤 여론의 검증과정을 거쳤다.

인사수석실 신설에 논란

노 전 대통령도 2005년 새해 벽두에 발생한 ‘이기준 교육부총리 인사 파동’ 이후 사전 여론검증의 필요성을 인식했다고 한다. 당시 노 대통령이 발탁한 이기준 교육부총리 후보자는 사외이사 겸직, 장남 이중국적 문제가 불거지면서 지명 5일 만에 물러났다. 이에 책임을 지고 박정규 민정수석, 정찬용 인사수석이 사퇴하기도 했다.

결국 박 대통령은 새로운 참모진의 조언을 받아 인사수석실 신설과 사전 여론검증 강화로 인사 참사 터널을 빠져나오려는 노력을 시작한 셈이다. 하지만 두 가지 시도 모두 단점도 있기 때문에 성공 여부는 불투명하다.

먼저 노무현 정권에서 한 차례 설치했던 인사수석실의 경우 제대로 운용하지 못할 경우 실질적인 권한은 없고 책임만 지는 부서로 전락할 수 있다.

과거 정부에서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한 인사는 필자에게 “인사수석실 신설이 해법인지는 생각해 봐야 한다”며 “인사수석실이 실권 없이 대통령과 핵심 참모들이 미리 결정한 인사에 대해 뒤치다꺼리만 하게 되면 없는 것만도 못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더구나 또 다시 인사 실패를 저질렀을 경우 대통령과 실세들은 뒤로 숨고 인사수석실이 모든 책임을 떠안는 결과도 예상할 수 있다”며 “우리 정권은 그런 점을 감안해서 인사수석실을 만들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사전 여론검증 방식은 공개된 후보자 가운데 최종적으로 배제된 사람들의 명예가 치명적으로 훼손되는 맹점이 있다. 비교평가에서 떨어졌다는 주홍글씨가 남을 뿐 아니라 경쟁 과정에서 온갖 투서가 난무할 가능성이 높은 까닭이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 신임 참모들도 그런 부작용을 충분히 예상했음에도 ‘고육책’을 쓰지 않을 수 없는 건 그만큼 인사 문제가 국정운영의 발목을 단단히 잡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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