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열기로 전 세계가 들썩이고 있는 가운데 각 나라마다 월드컵 예상 우승팀을 바탕으로 돈을 걸고 맞히는 축구도박, 이른바 ‘베팅(내기)’이 성행하고 있다. 학교, 회사 등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내기’는 종이에 A부터 H까지 조 나라 이름과 4강, 8강, 16강 우승팀후보를 적어 일정 금액을 베팅, 경기 결과를 맞히는 사람에게 총 금액이 돌아가는 게임이다. 하지만 오프라인상에서만 축구내기를 즐기는 것은 이제 식상한 듯하다.

요즘 축구내기는 인터넷, 휴대폰 등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승패 맞히기에서 더 나아가 골 넣는 선수 맞히기, 스코어 맞히기, 심지어 경고와 반칙 횟수 맞히기를 하는 등 소소한 것까지 내기를 하는 식으로 점점 바뀌고 있는 추세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경우에 따라 고액의 당첨자가 속출하기도 하지만 거금을 날리는 피해사례도 적지 않다. 암암리에 지하시장에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고도 알려진다. ‘대박’을 좇는 전문 꾼들은 물론, 일반 축구팬, 심지어 학생들까지 열광하고 있는 현 ‘축구도박’의 백태에 대해 알아봤다.




‘축구 토토’ 대목 장사

현재 한국에서 스포츠를 대상으로 한 합법적인 도박은 경마와 경륜, 그리고 축구 복표사업인 ‘스포츠 토토’이다.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이래 성행하고 있는 ‘스포츠 토토’는 최근 독일월드컵이 시작되자 전국적인 베팅 열풍으로 예전보다 매출액이 3배 이상 급증했다고 한다. 토토 관계자에 따르면 평소 한 게임당 베팅 총액은 3~4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번 독일월드컵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무려 10~15억원까지 크게 증가했다는 전언이다. “월드컵 초반부터 이런 분위기라면 경기 중반을 넘어서면서 그 열기는 더욱 고조, 20억원 이상으로 크게 뛸 것으로 전망된다”고 이 관계자는 밝혔다. 이에 따라 토토 복권으로 대박을 터뜨린 사례도 적지 않은 분위기. 지난 13일에 열렸던 토고-한국 전에서 스코어를 정확히 맞힌 당첨자들은 자신이 베팅한 금액의 수십 배에 달하는 배당금을 챙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편의점 등에는 토토 복권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고, 입금기까지 다운되고 있는 실정이다.

‘인터넷 카페’ 우후죽순

우리나라는 영국이나 유럽처럼 큰 규모의 축구도박회사가 있거나 한글로 된 축구도박 관련 사이트가 없기 때문에 대부분 ‘인터넷 카페’를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모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는 ‘월드컵 내기 카페’가 등장했다. 또 기존의 카페들 중 상당수도 한국팀 성적 맞히기와 우승팀 알아맞히기 등의 내기 코너를 새롭게 운영,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인터넷은 경기 결과를 예측하는 내기 열풍에도 한몫했다. 인터넷 서비스업체 나우콤은 인터넷을 통해 월드컵 64경기의 골득실점차를 맞히는 ‘베팅 프로그램’을 개발, 눈길을 끈 바 있다. 이 베팅 프로그램은 경기마다 스코어를 알아맞히는 사람이 베팅 금액을 모두 가져가는 것. 당첨자가 여러 명일 경우에는 베팅 금액 비율로 나눠 가지는 방식이다.

‘휴대폰’ 실시간 베팅

휴대폰으로 베팅에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다. ‘벳 더 플레이’(bet the play) 서비스가 그것. 이는 젊은 층으로부터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실시간 베팅 프로그램으로서, 경기를 보면서 골이 터지는 시간을 맞히면 된다. 골이 터지는 순간을 분 단위로 예측해야 하기 때문에 경기가 시작된 이후에도 어느 때나 베팅에 참가할 수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월드컵 경기를 관람하던 중 휴대폰 버튼을 누르고 1분 안에 골이 터지면 배당금을 받게 된다. 베팅은 현금 대신 사이버 머니인 ‘큐 칩’을 사용, 배당 역시 사이버 머니 형태로 받는다. 이용요금은 무선인터넷 데이터 요금 외에 경기당 1,000원의 정보 이용료가 추가된다. 이밖에 최종 스코어 맞히기 베팅, 골 넣은 선수를 예측하는 선수 베팅 등도 가능하다는 게 서비스 관계자의 설명이다. 소위 ‘큰손’이라 불리는 알짜도박꾼들은 합법적인 그것보다 ‘암암리에’ 이뤄지는 축구도박판에 몰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이른바 ‘지하 축구도박 시장’이다. 지하 축구도박 시장은 영국과 유럽에 머무르지 않고 전 세계에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하시장은 특히 중국이나 태국, 홍콩, 동남아 등지에서 엄청난 고객을 확보하고 있기도 하다. 2002년 한국이 ‘4강 신화’라는 성적을 거두면서 이곳 시장에서는 한국 대표팀의 경기가 좋은 베팅 대상이 되곤 한다는 게 도박사들의 말이다.

초등생도 돈걸고 내기 걸어

월드컵 시즌에 맞물려 부는 이 같은 ‘베팅 열풍’에 대해 크게 걱정하는 분위기는 감지되지 않고 있다. 사행심을 조장하는 일반적인 그릇된 도박문화와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오히려 월드컵 경기를 ‘100배 즐기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분위기다. 또 ‘일시적인 신드롬’에 불과하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과열된 월드컵 열기는 ‘사행성 도박성 내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없지 않다. 특히 어린 학생들까지 월드컵 열풍에 가세하고 있다는 사실은 가히 충격적이다.

실제로 중학교 교사 이상미(26)씨는 “국가대표팀 평가전에 반 아이들이 한 사람 당 만원씩 걸고 내기를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스포츠는 스포츠 그 자체로 즐겨야지, 어린 학생들까지 축구도박에 빠지는 것은 그릇된 현상”이라고 우려했다. 인터넷 동호회 카페에 가입한 한 회원은 “1인당 20만원씩 20명이 모여 축구도박 내기를 했는데 한 사람이 싹쓸이 해 400만원을 챙겨 갔다”며 “월드컵 이후 도박성 내기를 조장, 누군가 몰아가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포털사이트에서 월드컵 카페를 운영 중이라는 자영업자 B씨는 “동호회 게시판에 재미로 월드컵 내기를 하자는 제안을 했는데 지나치게 고액을 거는 회원이 있어 접근 금지시키고 관련 글을 삭제했다”며 “우리 사회의 한탕주의가 월드컵을 빌미로 또 한 차례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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