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교도소 로비스트’ 기막힌 사기행각 전말

한 전과자가 교도소 간부와의 친분을 이용, 교도소 및 구치소 공사권을 따주겠다고 속여 건설회사 등을 상대로 10억원 대의 사기행각을 벌인 사건이 최근 발생했다. 청송감호소 및 전국 교도소에서 18년간 복역한 김모(66)씨가 사건의 장본인. 김씨는 오랜 옥살이 끝에 저절로 교도소 사정에 밝아진 점을 활용, 교도소 공사 계약을 따준다거나 식자재 납품을 알선해 주겠다며 관련 업자들에게 돈을 뜯어낸 것으로 드러났다. 로비를 명목으로 거액을 뜯어낸 ‘가짜 교도소 로비스트’인 셈. 서울 금천경찰서는 교도소 2곳의 신·증축 공사 시공권과 교도소 4곳의 식자재 납품권을 따주겠다고 속이고 업자들에게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한 로비 자금 등으로 13억 5,000만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상습사기)로 김씨를 14일 구속했다.



‘풍부한 사기경험’이 발단
경찰에 따르면 이 기막힌 사기극은 김씨가 2004년 8월 출소 후 사업을 구상하다 ‘풍부한 사기 경험’을 다시 발휘하면서 시작됐다. 실제로 김씨는 동종 전과 8범으로, 무려 18년 징역살이를 했다. 짧지 않은 세월을 감옥에서 보낸 그가 할 줄 아는 것은 ‘사기’였고, 아는 사람이라곤 ‘교도소’ 관계자들뿐이었다. 호적상에는 가족들이 있지만, 출소 후 아무도 그를 찾지 않았고 사실상 연락되는 이도 없었다는 게 경찰의 설명. 따라서 김씨는 65세 이상의 무의탁 독거노인인 셈. 그는 국민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돼 한 달에 37만원씩 지급받으며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과거에 숱한 사기로 큰돈을 쥐었던 그가 고작 이정도 액수에 만족할리 없을 터. 김씨는 장기간 복역하며 자연스레 알게 된 교도소 사정과 관계자들을 이용해 적극적으로 사기행각을 벌이기 시작했다.

‘교도소 간부 친분’ 이용해 접근
경찰에 따르면 작년 1월, 김씨는 식자재 업에 종사하고 있는 지인을 통해 ㅌ건설회사 상무이사 ㄱ모(44)씨를 소개받았다. 김씨는 ㄱ씨에게 ‘전국 교도소에 식자재를 납품하고 있어 많은 교정직 공무원들과 친분이 있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어 그는 “OO교도소와 OO구치소의 확장 및 증축 공사가 예정되어 있는데 담당공무원에게 로비하여 공사권을 따주겠다”며 접근했다. ㄱ씨는 안 그래도 건설공사를 수주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던 터라 김씨의 제안에 귀가 솔깃했다. 게다가 OO교도소와 OO구치소의 신·증축공사의 시공사를 피해 건설사인 (주)OO건설로 선정하겠다는 교도소장과 구치소장의 직인이 찍힌 위조 신·증축 공사계약서까지 내보였기에 더욱 그랬다고 한다. 김씨는 ‘시설국장에게 적어도 1,000만원은 줘야 일이 풀린다’, ‘법무부 및 구치소장의 저녁접대비 300만원이 필요하다’, ‘OO교도소장과 OO구치소장 간에 갈등이 있으니 그들에게 각각 인사해야 한다’, ‘OO구치소 공사대금이 55억여 원인데 이 중 1%를 예치금으로 입금하라’ 등의 명목으로 ㄱ씨에게 돈을 뜯어냈다. 이렇게 해서 김씨는 1년여 동안 61차례에 걸쳐 무려 3억 5,400여만원을 받아 챙겼다.

‘유령회사’ 만들어 회장행세
김씨의 사기행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번엔 납품업자를 상대로 식자재 납품 로비자금을 챙긴 것. 그는 ㅊ물산, ㅎ유통, ㄷ유통 등 수시로 ‘유령회사’를 만들어 회장행세를 했다. 또 OO구치소 등 3개소, OO교도소 등 4개소 식자재 납품계약서를 위조한 뒤, “납품을 알선해 주겠다”며 유통업자 3명에게서 10억원을 받아 챙기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김씨가 건설업자, 유통업자 등에게 1년여 동안 뜯어낸 돈은 총 13억 5,400여만원. 김씨가 한 달에 지급받는 37만원을 1년 동안 받는 액수(4,440,000원)를 따져보면 무려 300배 이상에 달하는 금액을 사취한 셈이다. 이 과정에서 김씨는 편취한 돈을 입금받기 위해 은행에서 대포통장을 개설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대포통장’이란 노숙자, 신용불량자 등의 명의로 개설돼 대부분 각종 범죄에 악용되는 은행 계좌를 말한다.

‘철저한 입단속’으로 발각되지 않아
그렇다면 ‘알만한’ 업체의 간부급 인사들이 김씨의 ‘터무니없는’ 사기행각에 이처럼 쉽게 넘어갔던 이유는 무엇일까.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업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직접 교도소 관계자와 대면시켰다고 한다. 경찰은 “하지만 교도소 관계자들이 김씨와 ‘짜고 친 고스톱’은 아니었던 것 같다”며 “실제로 김씨는 교도소 관계자와 업자들을 대면시키긴 했지만 자신의 행각이 발각될 것을 우려, 교도소장과 건설업자가 오랜 시간 대화하지 못하도록 무던히 애썼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즉, 건설 관련 이야기가 나와 들통날까봐 ‘대충’ 소개만 하고 보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김씨는 인력사무실에서 사람을 고용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법무부 시설국장, 법무부 차관, OO구치소 청장 등을 사칭하며 고용된 이들은 업자들을 속이기에 충분했다.
김씨의 ‘주도면밀함’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김씨가 위조한 교도소장 및 구치소장 발행의 신· 증축 공사 계약서에 찍혀 있는 관인은 사용 후 증거 인멸을 위해 길거리 휴지통에 버렸다. 또 김씨는 위조된 계약서를 업자들에게 보이며 “세상에 알려지면 계약이 해지된다”고 위협해 보안을 유지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업자들에게 철저히 입단속을 시켜 오랫동안 발각되지 않고 사기 행각을 벌일 수 있었다”며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는 등 사회 전반적인 경제가 침체돼 건설업자들이 수주하기 위해 애를 쓰고, 납품업자들이 납품처가 없어 곤란을 겪고 있는 점을 악용한 사례”라고 비난했다. 이어 “18년을 ‘죄와 벌’로만 탕진하고, 칠순이 다 된 나이에 또 다시 감옥에 들어가게 된 그를 보니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며 안타까워했다. 현재 경찰은 편취한 돈을 입금 받기 위해 은행에서 대포통장을 개설한 점과 이 같은 터무니없는 사기행각이 계속 이어진 점을 중시, 조직적인 범죄로 더 많은 피해자가 있을 것으로 보고 계좌추적 등을 통해 편취 금액과 관련자 등 여죄수사에 주력 중이다. 수억원의 리베이트를 주면서까지 시공권과 식자재 납품권을 받아 내려다 덜미가 잡힌 이번 사건은 현 사회의 ‘부실공사’와 ‘부정식품’으로 이어지는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