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완도 괴물소동 사건

최근 완도 일대서 염소 습격 사건이 발생, 주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괴물의 실체가 밝혀졌다. 멧돼지가 정체불명의 괴물이었던 것. 전남 완도군은 25일 “군 공무원, 전남 밀렵감시단, 전문 엽사 등으로 조사팀을 구성해 괴물 출현 소동을 빚은 완도군 생일면을 방문, 현지 조사를 벌인 결과 멧돼지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괴물의 정체가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의 공포는 좀처럼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흔히 초식동물로 알려진 멧돼지가 ‘완전’ 잡식성이라는 사실에 오히려 ‘진짜 괴물’이라는 분위기다. 현재 주민들은 이를 ‘괴물멧돼지’라고 부르고 있으며 “이러다 사람까지 먹어 치우는 것 아니냐”는 등의 우려와 함께 각종 괴담에 더욱 시달리고 있는 실정이다.



25일 완도 괴물이 멧돼지로 판명난 가운데 아무도 없는 백운산 밑자락에서 또 한 마리의 염소가 희생됐다. 최근 몇 달 새 알려진 것만 해도 벌써 20여 마리가 넘는다.
24일 완도군 생일면사무소에 따르면, 염소는 생일면 464가구 916명의 주민 가운데 48가구에서 900여 마리나 키우는 짭짤한 부업거리다. 그러나 1년 전부터 정체불명 괴물의 습격을 받아 염소들이 떼로 희생됐다. 최근에는 매일 밤 2~3마리가 괴물의 밥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괴물의 실체가 밝혀졌어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고 한다.
괴물멧돼지들은 처음에는 용두리 산에 출몰하다가 최근에는 유촌리, 금곡리 등 해발 482m의 백운산으로 영역을 넓혀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섬마을 전체에 방목하는 염소는 물론 묶어놓은 염소까지 모조리 먹어치울 기세다.


간밤에 염소 습격, 뼈까지 ‘꿀꺽’
“밤에 잠들기 무섭다.”
완도군 생일면 서성리 황번하(57)씨의 말이다. 최근 완도군 일대를 중심으로 염소들이 떼로 괴물멧돼지들의 습격을 당하면서 황씨는 매일 밤잠을 설치고 있다. 황씨는 “최근 마을에서 일주일새 죽어나간 염소만 수십 마리”라며 “아침에 눈뜨면 염소들 머릿수 세느라 바쁘다”고 말했다.
황씨에 따르면, 그는 백운산 밑에 있는 자기네 밭에 흑염소들을 묶어 놓았는데 세 마리 중 한 마리가 희생됐다. 황씨는 “죽은 염소는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고, 나머지 두 마리는 인근 계곡에 숨어 있었다”면서 “얼마나 몸부림을 쳤는지 고삐가 풀려 염소들의 상태가 거의 ‘만신창이’였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근처에 사는 정평균(53)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정씨는 “아침에 일어나 경운기를 타고 염소가 있는 들판에 갔는데 머리만 남고 뼈까지 완전히 사라졌다”며 “그 단단한 뼈까지 통째로 삼킨 게 멧돼지라니 과연 괴물이긴 괴물이다”라며 괴물멧돼지의 급격에 혀를 내둘렀다.
서성리 정광균(46) 이장은 “전에는 방목하는 염소들만 죽어 나갔는데 최근 들어 밭에 묶어 놓은 염소들까지 처참히 찢겨 희생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초식동물로 알려진 멧돼지가 어떻게 염소를 잡아먹었는지 의문”이라며 황당해 했다.


괴물멧돼지 수년전부터 습격
서성리로부터 6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금곡리도 괴물멧돼지 습격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금곡리는 64가구에 13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이며, 이 중 40가구 이상이 600여 마리의 염소를 키우고 있다.
김주체(42)이장에 따르면 금곡리 일대는 서성리보다 더 오래 전부터 더 많은 염소들이 습격을 당했다. 3년 전부터 100여 마리 이상이 죽어나갔다는 것.
김이장은 “금곡리는 서성리보다 더 산이 울창하고 숲이 우거져 피해가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며 “실제로 멧돼지는 풀이 무성하게 자란 곳을 중심으로 다니는 습성이 있다”고 말했다.
사실, 김이장은 이번 괴물소동을 두고 ‘들개와 멧돼지 중 하나일 것’이라고 나름의 논리를 펼쳤던 장본인이다. 하지만 염소가 습격당한 현장과 공격 부위로 봐서 이들의 소행은 아닌 것으로 잠정 결론을 냈었다.
김이장에 따르면, 멧돼지는 수풀이 우거진 곳을 좋아해 자주 활보하고 다니긴 하지만 그들은 발자국이 남는다. 또 멧돼지가 잡식성이라고 해봤자 뱀, 두더쥐, 토끼, 개구리 등을 먹는 게 고작이다. 염소를 통째 삼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라는 게 김이장의 주장이다.
또한 들개는 염소를 공격하긴 하지만, 공격하더라도 목을 공격해 숨통을 끊고 살만 뜯어먹는 수준이지, 뼈까지 씹어 먹는 재주(?)까진 없다는 게 그의 말이었다.
최기호 반장은 “하룻밤 사이에 염소 2~3마리를 해치워서 괴물이 1마리는 아닐 것으로 당시 추정했었다”면서 “실제로 멧돼지의 특성상 무리지어 다니는 것으로 보아, 괴물의 실체가 정말 멧돼지가 맞긴 맞는 모양”이라며 괴물의 실체가 멧돼지인 것에 대해 다소 허탈한 심정을 내비치기도 했다.


각종 루머에 마을 분위기 ‘흉흉’
생일면사무소에 따르면, 이처럼 백운산 일대를 휩쓸고 다니는 괴물멧돼지 때문에 마을 분위기는 나날이 흉흉해지고 있다고 한다. 염소 습격사건이 잇따라 터진 후, ‘괴물 괴담’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을 뿐더러 각종 루머까지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밤새 댁의 염소는 아무 탈이 없습니까”라는 게 인사가 될 정도라고 한다.
괴물멧돼지와 관련, 각종 괴담과 루머도 쏟아지고 있다. “어미 염소는 머리만 남기고, 아기염소는 뼈까지 다 씹어 먹는다”, “염소만한 아이도 먹어치운다”, “무리로 다니면 어른도 삼킬 모양새다” 등의 소문이 그것.
완도군은 “혹시 주민들까지 습격할지 모르니 밤 외출도 삼가 달라”며 “조만간 전문 엽사들을 구성, 멧돼지 소탕작전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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