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시도 ‘성인 박람회’ 논란

‘혹시나’ 했던 기대가 ‘역시나’ 수포로 돌아갔다. 음지에 있는 성문화를 양지로 끌어내겠다는 (주)섹스포 측의 거창한 취지는 역시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여론과 함께 결국 ‘해프닝’으로 끝나게 됐다. 서울시와 여성단체는 당초 이번 행사에 대해 ‘선정성 논란’을 들먹이며 즉각 전시장 폐쇄를 요구했고, 주최측은 힘없이 꼬리를 내렸다. 물론 행사는 성인용품 전시 등으로 진행되긴 했지만, 이마저도 밀수된 불법 성기구인 것으로 드러나 물의만 빚었다. 일각에서는 주최측에서 때이른 행사를 벌이려다 오히려 역풍을 불러온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처음 시도된 ‘성인전용 박람회’였다는 점에서 이번 행사는 성공여부를 떠나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사실이다. 진행돼야 할 이벤트는 없고, 항의소동만 일었던 이번 섹스박람회의 허와 실을 짚어봤다.


지난달 31일 서울 강남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SETEC). 이날 이곳에서는 개장시간인 11시 전부터 몰려든 인파로 북적거렸다. 국내 첫 섹스박람회 ‘2006 서울 섹스 에듀 엑스포’(이하 ‘섹스포’)가 개최, 성인 남녀부터 장애인, 노인까지 행사장을 찾았기 때문이다.


관람객들, 이벤트 취소에 분개
하지만 주최측으로 알려진 (주)섹스포 박승각 대표이사는 “이벤트 행사가 모두 취소됐다”며 행사의 파행을 알렸다. 취재진 및 많은 인파들을 향해 박대표는 “모델들이 공연이 불가능한 일반 관광비자로 입국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밝히며 “행사가 대폭 축소됐음을 양해해 달라”고 전했다.
당초 섹스포가 진행할 이벤트는 ▲세미스트립쇼 ▲트랜스젠더 선발대회 ▲즉석연인키스대회 ▲미스섹스포 선발대회 ▲란제리 패션쇼 ▲누드 사진전 등이었다.
박대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행사장을 찾은 입장객들의 항의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사전 공지도 없이 갑자기 이벤트를 취소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것. 아마추어 사진작가 박모(69)씨는 “누드모델 사진을 찍기 위해 멀리 인천에서 일부러 왔는데 성인용품 전시만 둘러보고 가게 생겼다”면서 “주최 측의 사기행각에 놀아난 기분”이라며 분개했다.


성인용품 전시장 초라하기 짝 없어
전시장 내부는 한마디로 말해 ‘동네 성인용품 가게’ 수준에 불과했다. 업체를 구하지 못해 비어있는 부스가 태반이었고, 그나마 참가단체들마저 국내 성인용품점 프랜차이즈 업체들이었다. 부스 사용료 200여만원을 내고 박람회에 참여했다는 업체 관계자는 “참가 업체 모두가 성인용품 판매업자이고 매출 신장을 위해 박람회에 참여했는데, 생각과 너무 달라 실망스럽다”며 울상을 지었다.
또, ‘성교육박람회’라는 당초 취지와 다르게 이곳은 자위기구와 보조기구 등 낯 뜨거운 성인용품만 즐비했다. 70여개 부스 중 절반 이상은 여성과 남성의 성기나 특정 신체 부분을 본뜬 기구 등을 전시해 놓았다. ‘성인용품 판매 금지’라는 현수막이 걸렸지만 실제 부스에서는 제품 구입이 자유로웠다. 이월된 의류상품, 건강용품, 아이디어상품, 먹거리 등 섹스포 본래 취지와는 맞지 않는 물품을 전시하는 부스들도 상당수였다. 대형 가죽소파 매장은 왜 이곳에 자리 잡고 있는지 의문스럽기까지 했다.


에로영화 촬영 ‘맛배기’만
이번 박람회의 유일한 이벤트인 ‘에로영화 촬영 이벤트’ 현장. 가면을 쓴 에로 여배우 2명이 등장하자 관객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하지만 침대에 앉아만 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나가버리자 관람객들의 항의가 쏟아졌다. 50대 중반의 한 관람객은 “지금 관람객을 농락하는 것이냐”며 “우리가 어린 애도 아니고 배우가 옷을 입은 채로 침대에 앉아만 있는 것이 영화 촬영이라고 하면 믿겠느냐”며 언성을 높였다. 이에 질세라, 진행요원들도 목소리를 높이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우리도 입장료가 아깝지 않은 이벤트를 보여드리고 싶다”며 “그런데 서울시가 못하게 막는 것을 어떡하느냐”고 반문했다.
이번 행사를 보고 나온 100명 이상의 관람객들은 “사기를 당한 것 같다”며 매표소로 몰려가 환불을 요구하기도 했다. 주최측은 일부 입장객에게만 환불을 해주는가 하면, 1만 5,000원이던 입장료를 슬그머니 1만원으로 내리는 등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 비난을 샀다.
김모(64)씨는 “조잡한 기구들만 잔뜩 전시해놓고 돈 1만원을 내놓으라고 한다”며 “단 돈 1,000원도 아깝다”며 열을 올렸다.
한편 이곳에 전시ㆍ판매했던 성인용품 상당수가 불법 성기구로 드러나 물의를 빚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특히 수입이 불가능한 일본제 ‘섹스 돌(sex doll)’ 등이 버젓이 전시되고 있어 관세청과 경찰이 부랴부랴 현장 조사에 착수했다. 관세청 관계자는 “전시 물품 상당수가 국내로 불법 반입된 것으로 보고 밀수 여부를 조사 중”이라며 “불법 수입 음란물로 판명날 경우 전시ㆍ판매업체를 관세법 위반으로 처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음지의 성(性)을 더 음지로
일각에서는 당국의 지나친 규제 때문에 대회 본래 취지가 훼손됐다며 서울시를 원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모(65)씨는 “개막 하루 전 ‘섹스포를 폐쇄하겠다’고 엄포를 놓을 요량이었으면 허가는 뭐하러 내주었느냐”며 “면밀한 검토 없이 허가해 주고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뒤늦게 사업자만 물 먹이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 섹스포 주최 관계자는 “이번 행사는 그동안 쉬쉬하고 음지에서만 즐겼던 성을 과감하게 양지로 끌어내기 위한 시도였다”면서 “첫 번째 열리는 행사라 미숙했고, 애로사항도 많았다. 많은 차질이 있었지만, 다음부터는 여건이 나아질 것”이라며 매년 행사를 열 뜻을 내비쳤다.





# 기자회견서부터 ‘가슴 노출’ 해프닝 사고 잇따라
파행까지 치닫게 된 이번 행사의 ‘불길한 기운’은 사실 기자회견서부터 감지됐다. 지난달 29일 오후 1시 서울 힐튼호텔 지하 1층 국화룸에서 열린 기자회견장은 다소 썰렁했다. 홍보가 덜 된 탓인지, 주요 언론사가 오지 않는 사태가 벌어졌으며, 모델들이 늦게 도착해 기자회견이 20분 이상 지연되기도 했다. 또, 기자회견에 앞서 주최측 대표의 연설도 엉성하기 짝이 없었으며, 모델들이 앉아야 할 좌석 앞에 놓인 이름이 잘못돼 한 칸씩 건너뛰어 자리를 재정리하기도 했다. 회견 진행이 이렇다보니, 이곳에 모인 취재진들의 반응 역시 냉담할 수밖에 없을 터.
아니나 다를까, 모델들을 향한 질문은 고작 4~5개가 전부였고 따라서 예정시간보다 45분 일찍 끝났다. 애초 2시간이 예정이었으나, 1시간도 채 안 돼서 모든 간담회가 끝난 셈이다. 뿐만 아니다. 취재진들의 카메라 세례를 받는 도중, 한 모델의 실수로 가슴이 드러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모델은 당황하며 얼른 옷매무새를 고쳐 입었지만, 이미 플레시는 여기저기서 빗발친 후였다.
‘성문화의 양성화’와 ‘성의 상품화’를 두고 거센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 열렸던 성인용품 박람회는 결국 해프닝만 남겼다.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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