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의 ‘민간근무휴직제도’ 악용 실태 집중 추적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2003년 1월부터 운영해온 ‘민간근무휴직제도’가 말썽을 빚고 있다. 이 제도를 이용해 민간 기업에 파견된 공무원들이 약정 보수보다 두 배 이상 많은 급여를 챙겨온 것으로 드러났다. 1년 안팎의 파견 근무 기간에 이들이 벌어들인 돈은 많게는 2억원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이는 명백한 규정 위반이다. 약정 보수 외의 금전을 수령할 경우, 해당 부처 장관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파견 공무원들은 휴직을 전후해서 해당 기업 관련 업무를 처리하는 부서로 이동해 논란의 불씨를 제공했다. 시장감시본부 독점감시팀장에 임명된 이 모씨의 경우, 이러한 문제로 내부 감찰을 받고 지난 9월 초 사퇴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 직원들의 ‘불공정’한 제도 이용이 일부 언론에 보도되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들에게 제출한 감사원 자료에도 이와 같은 문제점이 지적돼 있다. <일요서울>은 민간근무휴직제의 도입 취지와 공정위 직원들의 파견 실태를 집중 취재했다.


‘경제검찰’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의 ‘불공정’ 행위가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드러났다. ‘공명정대’해야 할 공정위 직원들이 휴직 후 민간 기업에 근무하면서 약정 금액보다 2배 이상 높은 급여를 받는가하면, 취업 전후 시점에 해당 기업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자리로 이동해 논란을 빚고 있다.
지난 9월 27일 한나라당 이계경 의원이 감사원과 공정위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민간기업과 정부부처의 이해증진 및 상호발전을 위해 도입한 ‘민간근무휴직제도’가 일부 공정위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를 몰고 왔다.

파견 기업 재취업 사례 ‘급증’
이 의원은 “4급 이상 퇴직자 가운데 85% 이상이 삼성전자, 롯데건설, 김&장 법률사무소 등에 취업했다”면서 “기업과 법무법인에 재취업한 이들의 역할에 대해 의구심이 일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민간근무휴직제가 도입된 2003년 1월부터 이 제도를 이용한 직원 중 상당수가 파견됐던 기업에 재취업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민간근무휴직제는 공무원이 민간 부문의 업무수행방법, 경영기법 등을 습득하고 기업 현장의 고충을 파악해 정책 수립에 반영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그러나 파견된 기업이 공정위 관련 업무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논란의 소지가 끊이질 않았다.
실제로 일부 직원의 경우, 민간 기업의 유관 업무 담당자로 복귀해 불필요한 의혹을 사기도 했다. 공정위 4급 직원 박 모씨는 법무법인에 1년간 근무하면서 약정 보수 7천만원 외에도 보상금 명목으로 1억 3,000만원이 넘는 급여를 챙겼다. 이밖에도 민간근무휴직제에 참여한 공정위 직원 중 11명이 매월 적게는 450만원에서 많게는 1,200만원의 웃돈을 받았다.
민간근무휴직자는 규정상 승인된 약정보수 외 특혜수령이 금지돼 있으며, 보수 수준 등 근무조건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소속 장관의 승인을 받아 중앙인사위원회에 통보해야 한다.
감사원도 공정위가 휴직공무원의 근무실태를 점검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특혜 수령 금지 규정을 위반한 사실을 지적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정무위 한 관계자는 “민간 기업으로부터 1억원 안팎의 돈을 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해당 기업의 사안을 공정하게 처리할 수 있겠느냐”면서 “공정위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련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련 기업들은 급여가 추가로 지급된 근거로 “성과상여금으로 지급된 것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감사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감사원에 따르면, “부당 수령금액을 성과 상여금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민간근무가 시작되면서 건강보험공단에 신고한 표준 보수월액에서 확인되듯이 정당한 실적평가에 따라 지급된 것이 아니다”면서 “연간 총액을 사전에 확정하고 첫 달부터 균등하게 기본 보수로 지급됐으므로, 업체의 주장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부당 급여수령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5년 12월 이후부터 민간근무휴직을 하고 있는 공정위 직원 중 4명이 매월 240만원~600만원까지 부당 수령하고 있는 실정이다.
부당한 보상금을 수령함으로써 공정위 직원들의 업무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간 근무를 했던 기업 또는 법무법인이 소송의 당사자이기 때문에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분석이다.

감사원 “성과금으로 볼 수 없다”
민간 기업에 ‘막강한 힘’을 행사하는 공정위는 이러한 문제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공무원 임용령’에 민간근무휴직제도 운영지침을 규정해 놓았다.
이 지침에 따르면, 민간근무휴직자는 휴직 예정일 전 3년 이내에 소속했던 부서와 직무상 밀접한 연관이 있는 민간 기업에 근무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또한, 복직한 직원은 2년 이내에 근무했던 기업과 관련된 부서에 배치할 수 없도록 명시돼 있다.
그러나, 공정위 자체 규정이 ‘공정’하게 이행되지 않으면서 문제가 불거지게 된 것.
김&장 법률사무소에 근무하다 복직한 4급 직원 이 모씨는 2004년 중순경 시장감시본부 독점감시팀장에 임명됐다. 이씨는 2005년 9월 효성측이 SK가스를 독점규제 위반 등의 혐의로 제소한 사건을 담당했다.
당시 효성은 “SK가스(주)가 시장 지배적 지위를 악용해 프로판가스 공급 가격을 과다하게 인상하는 등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위배되는 행위를 했다”면서 공정위에 관련 사실을 제소하기에 이르렀다. 16년간 공급자와 수요자로서 맺어온 돈독한 관계가 법률 대립으로 치닫는 순간이었다.
문제는, 이씨가 양측의 입장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구설수에 올라 결국 9월 초에 사퇴했다는 점이다. 효성의 법무대리를 김&장이 맡고 있었기 때문에 불공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 내부 감찰팀은 이씨를 불러 관련 사실을 조사했지만, 그 결과를 공개하지는 않았다. 일각에선 “보고서 작성 과정에서 입김이 작용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정책 홍보팀 관계자는 “사실 무근”이라며 “내가 확인해 줄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라고 했다.
공정위 감사담당관실 김이균 서기관은 “이 팀장을 감찰한 이유는 내부 갈등 때문”이라고 밝혔다.
효성 이상철 홍보부장은 “김&장이 법무 대리를 맡고 있지만, 공정위와의 관계는 우리와 전혀 연관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감사원 감사결과에도 이와 유사한 내용이 지적사항에 포함돼 있다.
지난 8월 감사원이 작성한 공정위 감사 결과 처분요구서에는 “법무법인 근무 후 복귀한 직원이 법무법인을 직접 상대하는 심결부서에 배치돼 업무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공정성이 결여된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강한 우려감을 표시한 것.
이에 따라 감사원은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에게 ▲공정거래위원회 업무와 관련 있는 사무를 취급하고 있어 공정성을 해칠 수 있는 법무법인 등 민간 기업은 대상 근무처에서 제외하고 ▲복직자는 해당 기업과 관련 없는 부서에 배치하는 방안을 마련해서 통보하라고 처분했다.
또, ▲민간근무휴직자가 승인된 약정보수 외 금전을 수령하는 일이 없도록 휴직자 관리를 철저히 하고 이미 금전을 수령한 관련자에게 주의를 촉구했다.
공무원 신분인 휴직자들은 주로 민간 기업에서 공정위 관련 업무를 자문해 왔다. 결국, 공직자가 민간 기업의 주요 사안마다 정부의 규제와 법규에 저촉되는지 여부를 판단해 줌으로써 정부와는 정반대 입장에 서게 된다.
2003년 포스코가 행자부장관에게 제출한 공무원 채용계획서에 따르면 채용 요건으로 공정거래 분야에서 7년 이상 재직한 공무원으로서, 주요 담당 업무는 공정 거래와 관련된 부분이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 의원은 이와 관련 “2003년 이후 대법원에서 확정된 행정소송의 경우, 총 11건을 공정위가 패소했다”며 “이 중 4건은 민간근무휴직제로 공정위 직원이 해당 법무법인에 취업한 후에 벌어졌기 때문에 의혹을 사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상대로 한 소송 자문 맡아
이 의원은 또, “공정위에 대항하는 원고측 법률 대리인이 되는 법무법인에 공정위 직원이 근무를 하면서 공정거래법을 자문하고 있다는 것은 문제”라면서 “궁극적으로 공정위의 중립성과 공정성 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법무법인에 근무하면서 의혹을 사고 있는 휴직자를 전원 복귀시키라고 지적했다.
민간근무휴직제도의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1년 이상 민간 기업에 공무원을 파견한 공정위는 이들로부터 제출 받은 보고서가 전무한 것으로 밝혀졌다. 보고서 제출이 의무사항이 아니라는 게 공정위측의 해명이다.
하지만, 제도의 취지를 반영하기 위해서는 복직한 직원들이 체험한 내용을 보고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지적이다.



# “파견 공무원 많을수록 법무법인 승소율 높다”

민간근무휴직제 도입 이후 공정위 패소율, 환급금 늘어나

공무원민간근무휴직제가 도입된 이후 공정거래위원회의 행정소송 패소율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공정위 직원을 영입한 법무법인의 승소율은 증가했다.
지난 2001년~2005년 공정위가 행정소송 패소와 이의신청, 직권취소 등으로 기업체에 환급한 과징금이 모두 867억원(170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민간 로펌이 환급 절차를 대리한 사안은 모두 100여건, 환급금은 473억원에 이른다.
이는 로펌들이 공정위를 상대로 한 각종 분쟁의 58.8%를 대리하고 전체 환급금의 54.6%를 받아냈다는 의미로, 공정위와 로펌이 상식적인 이해충돌 당사자임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지난 2003년부터 민간근무휴직제에 따라 민간 기업에 파견된 공정위 직원 15명 중 10명이 민간 로펌에서 일했다. 이들을 고용했거나 고용 중인 5개 로펌은 공정위를 상대로 한 36건(20.6%)의 환급절차를 대리해 총 156억원을 환급받았다.
특히, 민간근무 휴직제 대상 공정위 직원 5명을 받았던 한 법무법인은 27건(15.9%)의 환급절차를 대리해 108억원(12.5%)을 환급받았다.
2001년 이후 제기된 행정소송은 모두 214건이다. 현재 재판에 계류 중인 114건 가운데 공정위 직원이 근무하는 법무법인이 원고측 법무 대리인을 맡고 있는 소송은 모두 73건이나 된다.
한나라당 이계경 의원은 “누가 봐도 문제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며 “중대한 모럴 해저드로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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