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의원 출마자는 ‘공천권’ 기업은 ‘불이익’ 눈에 아른거려

▲ 지난 21일 새정치민주연합 신학용의원(왼쪽)이 입법 비리 의혹 관련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국회 의원회관을 나서고 있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출판기념회 사람 동원, 버스별로 기초의원들에게 할당량 줘”
이해관계 얽힌 인사들 의원회관으로 찾아와 현금 전달하기도
기업은 부서장 등 통해 사원 명의로~ 기초의원은 ‘명의’ 빌려 사비로~

[일요서울 | 박형남 기자] 검찰의 ‘입법 로비’ 관련 수사가 본격화되고 있다. 벌써부터 현직의원 16명이 수사선상에 올라와 있다는 말까지 들릴 정도로 칼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일부에선 표적 수사, 과잉 수사 논란을 낳고 있기는 하지만 불법 거액 후원금을 받은 의원들과 관련 의혹이 구체적으로 밝혀지게 되면 정치권이 받게 될 타격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정치권 관계자들은 ‘입법 로비’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것은 한 사례일 뿐, 실제로는 보다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순수한 지지의사 표현의 한 형식으로 향해야 할 후원금에 대가성이 담긴 후원금이 상당수 포함돼 있는 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또한 합법적인 정치자금 모금 창구인 출판기념회도 대가성이 따르는 것이 정설이다. 정치인들이 합법적인 창구를 통해 후원금 등을 모금하는 그 이면에는 불법 후원 관행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얘기다. 정치권에 몸담았던 전현직 보좌진들로부터 정치후원금 및 출판기념회를 통한 후원금 모금 실태에 대해 들어봤다.

국회의원이 한 해 공식적으로 받을 수 있는 후원금은 1억 5천만 원(선거가 있는 해에는 3억 원)이다. 정치 후원금은 내역 공개, 영수증 발행, 선관위 신고 및 회계 검사 등이 의무화 돼 있다. 이러한 조항으로 인해 중진의원이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의원의 경우 법적 한도를 넘기기가 ‘하늘에 별따기’다. 결국 조직적으로 산하기관 등에 압력을 행사해 후원금을 걷을 수밖에 없다.

대신 출판기념회는 정치자금법 항목에 해당되지 않는다. 출판기념회를 통한 수익이나 사용내역은 공개하지 않는다. 세금도 없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하지 않아도 된다. 정치인들이 손쉽게 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산하기관들도 불법자금을 전달할 수 있는 통로로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로 인해 초·재선 의원이 수억 원, 중진 의원은 10억 원대의 수익을 올린다는 말이 여의도 정가에 퍼져있다.

츨판기념회 만원사례 이유있었다

실제 산하단체가 많은 상임위원회의 경우 간사는 3억 원, 위원장은 5억 원 이상을 단 한 번의 출판기념회로 끌어모을 수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 안에 이해관계 당사자들이 반드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출판기념회가 한창일 당시 “출판기념회를 개최한 이후 간사가 위원장보다 더 많이 받았다는 말이 나돌면서 위원장실 인사가 산하기관 인사들에게 ‘엄포’를 놓았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그렇다면 정치인들은 출판기념회에서 후원금을 어떤 방식으로 모금할까. 새누리당 전직 보좌진 출신인 A 씨는 “출판기념회를 치를 때마다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온다. 대부분 대형버스를 대여한다”며 “문제는 지역 사람들이 모두 자발적으로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군가 동원했기 때문”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A 씨는 또 “여당 현직 의원의 경우 기초의원들에게 ‘오더’를 내린다. 기초의원들의 현역 의원들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그 ‘오더’를 거부할 수 없다. 거부하게 되는 순간 다음 총선에서 공천을 받기 힘들다. 결국 출판기념회가 성황리에 끝날 수 있게 밑작업을 한다. 대형버스 대여비를 기초의원이 내고, 각 버스에 후원금 할당량에 대한 오더를 준다. 할당량을 누가 더 많이 채웠느냐를 놓고 기초의원들끼리 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기초의원에 대한 공천의 경우 현역의원들에 대한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여의도 주변에선 ‘기초의원들 중에 누가 더 많은 후원금을 냈느냐가 공천권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출판기념회에 대한 후원금 액수에 대한 규제가 없기 때문에 이를 통해 현역 의원들은 ‘대박’을 노리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급기야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기초의원들은 결국 사비를 털어낸다고 한다. ▲버스 대여비 ▲동원한 인사들에 대한 먹거리 제공 ▲차량 당 할당된 금액을 채우지 못할 시 남은 금액 등을 메워야할 때 사비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 이로 인해 의원들이 출판기념회를 하게 되면 엉뚱하게 기초의원들은 ‘사비를 털어 의원에게 충성맹세를 해야 되는 상황이 연출된다’는 게 한 전직 비서관의 전언이다.

이 관계자는 “기초의원 출마를 노리는 인사들은 의원의 눈에 잘 띄기 위해 출판기념회에서 기초의원들보다 더 많은 금액을 내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결국 ‘공천을 달라’는 암묵적 거래가 이뤄진 것이라 봐도 무방하다”고 설명했다.

정치 후원금을 모금할 때도 기초의원에게 할당량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한 할당량을 채우지 못할 경우 기초의원들은 타 인사의 명의를 빌려 본인이 10만 원씩 쪼개기 후원금을 내는 경우도 비일비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더 나아가 의원들은 ‘파리 목숨’인 보좌진들에게 할당량을 줘, 그만큼 채워오지 못하면 ‘해고하겠다’는 식으로 협박하는 이들도 있다.

식사비 명목, 몇 백만 원 건네지만 그 이면에는…

이 뿐만 아니다. 일부 의원들이 이른바 ‘스폰서’를 갖고 있거나 친분 있는 인사를 찾게 되는 이유도 후원금을 모금하기 위해서라는 말이 여의도에 널리 퍼져 있다. 야당에서 근무했던 한 보좌관은 “가장 좋은 경우가 친분이 두터운 인사다. 이들 중 돈 많은 사업가나 친분 있는 기업인을 통해 후원금을 받는다. 일부에서는 상품권 등을 통해 주기도 하지만 대부분 의원이 주최하는 행사가 있을 때 후원금을 낸다. 1만 원권부터 시작해 5만 원권을 두툼하게 넣어서 낸다. 이 외에도 일부에서는 출판기념회가 아닌 다른 방식을 통해 교묘하게 받는 경우도 있다. 결과적으로 국회 내에서 하는 행사 뒤에는 ‘뒷거래’가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대부분 현금으로 받아, 계좌추적 등이 불가능한 돈들”이라고 귀띔했다.

또 돈을 전달하기 위해서 사무실로 보좌관 등을 직접 만나거나 은밀한 장소에서 따로 만난다고 한다. 간혹 의원실로 현찰을 들고 찾아와 돈을 줘 선뜻 받는 의원들도 있다고 한다. 현찰로 적게는 100만 원부터 몇 천만 원까지 직접 전달해준다는 것.

이에 대해 한 전직 보좌관은 “돈을 건넨 이들은 ‘보좌진들과 식사를 하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다른 목적이 있다. 이 경우 뇌물혐의나 정치자금법 위반이 되기 때문에 돈을 선뜻 받는 일이 없지만 돈을 받는 의원도 있었다”고 폭로했다.

기업이나 이익단체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법안이 발의되면 이해 당사자들은 치열한 로비를 하는 경우도 대다수다. 이 경우 출판기념회를 통해 ‘합법적 후원금’의 형태로 로비가 이뤄지기도 하고, 후원금을 걷을 때도 적극적이다. 특히 음성적으로 돈 세례가 펼쳐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20일 재건축 사업을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건설업자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김명수 전 서울시의회 의장이 출판기념회 후원금 명목이었을 뿐이라며 무죄를 주장하기도 했다. 구속 영장 청구가 기각된 새정치민주연합 신학용 의원은 교명 관련 입법 청탁과 함께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SAC) 측으로부터 1500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고,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에서 출판기념회 때 3880만원을 받은 혐의가 있다. 신 의원은 영장실질심사에서 “한유총 돈은 대가성 없는 순수한 정치자금”이라는 주장이라고 편 것으로 알려졌다.

또 후원금을 낼 때도 기업들은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직 한 보좌관 B씨는 “후원금을 낼 때 의원들이 기업들에 후원금을 강요한다. 특혜를 본 이상 기업들은 자발적으로 후원금을 낼 수밖에 없다. 법망을 피해가기 위해 10만 원씩 쪼개기 후원금을 낸다”며 “이들은 각 부서장에 배당금을 정해, 사원들의 이름으로 후원금을 낸다”고 설명했다.

결국 모든 거래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게 마련이다. 정치인들에게 출판기념회을 통해 돈을 내거나 후원금을 지불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무리 친한 지인이라도 돈을 받게 되면 여러 가지 편의를 봐줄 수밖에 없게 되는 관계가 되고 만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해당 기업이나 인사들에게 문제가 생길 경우 영향력을 활용, 도움을 주는 일이 빈번히 일어난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선관위, 가이드 라인 제시 입법 로비 통로 막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최근 음성적인 정치자금 모금 및 입법 로비 통로로 활용되는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와 관련한 개선 방안을 담은 법 개정의견을 이르면 마련키로 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내달 15일 예정된 전체위원회의 때 출판기념회 개선 방안을 안건으로 올리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선관위는 6·4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보완할 문제 등을 담은 선거법 및 정치자금법 개정 방안을 마련해 왔다. 출판기념회 관련 내용도 여기에 포함돼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새누리당도 당 차원의 개선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김무성 대표는 “출판기념회를 없애야 한다”고 말한 데 이어 “잘못된 출판기념회 문화에 대한 국민적인 비판이 매우 강한데 국민 비판을 받는 출판기념회의 개선책을 마련토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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