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수석 3인방과 역대 청와대 비서실장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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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7시간 행적’ 논란에 TF 구성해 공세적 대응
언론접촉 강화 이어 세월호 청문회 증인 출석도 검토

[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최근 한 시사 잡지는 뜻밖의 ‘특종’을 했다. 청와대 김기춘 비서실장과의 인터뷰 기사였다. 이 잡지는 김 실장 관련 기사를 준비하면서 서면 질문서를 청와대 대변인실로 보냈다. 당초엔 답변을 받겠다는 기대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만큼 김 실장이 지난해 8월 취임 후 1년 동안 언론접촉을 기피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잡지의 마감 시간이 임박한 휴일에 김 실장이 담당기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봐서 오늘 오후에라도 (답변을) 메일로 보내겠다. 제가 사무실에 나가서 이걸 하면 한두 시간 안에 답변을 넣을 수도 있다.”

이 잡지는 기대하지 않았던 특종을 낚았다. 자신을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한 해명을 묻는 서면 질의에 서면 답변하는 형식이었지만 사실상 취임 후 첫 언론인터뷰였기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 비서실장 가운데 김기춘 실장만큼 여러 말들이 나돌고 각종 논란의 중심에 섰던 인물은 드물었다. 무엇보다 허태열 전 실장에 이어서 박근혜 정부 청와대 2기 비서실장을 맡은 이후 1년 동안 잇달아 터진 ‘인사 참극’의 책임자로 지목됐다. 청와대 인사위원장인 그를 향해 여권 안에서조차 ‘퇴진론’이 제기됐지만 꿈쩍하지 않았다.

日 신문 보도 후 의혹 확산

또 세월호 참사 수습 과정에서도 비판을 받았고, 고(故) 유병언씨 측의 구원파는 ‘오대양 사건’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김 실장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최근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4월 16일 당일 7시간 동안의 박근혜 대통령 행적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과정에서도 해명에 혼선을 주기도 했다.

특히 ‘7시간 미스터리’에 대해선 일본 산케이 신문이 선정적인 보도를 하는 바람에 의혹이 확산됐다. 산케이는 ‘박근혜 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 누구와 만났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박 대통령의 행적이 7시간가량 확인되지 않았다며 조선일보 칼럼과 증권가 정보지(찌라시) 등을 근거로 사생활 의혹을 제기했다.
김 실장은 이 문제를 중심으로 잡지사의 질문에 번호를 붙여가면서 충실하게 답변서를 만들어 이메일로 보냈다고 한다.

특히 ‘박 대통령 7시간 행적’과 관련, “(청와대) 경내에 계셨다. 경호관과 비서관이 수행했고, 21회에 걸쳐 보고를 받으시고 지시를 하셨다. (그런 사실을) 국회와 언론에 이미 밝혔음에도 의혹을 계속 제기하는 건 이해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대면보고가 없었다는 지적에 대해선 “유선보고와 문서보고로도 충분히 보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고, (당시 김장수) 국가안보실장과도 통화한 사실이 있다. 긴박한 상황에선 문서와 전화보고로 의사소통하는 것이 보다 신속하고 효과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김 실장은 또 "4월 16일에 대통령께서 외부 인사를 접견한 일은 없다고 알고 있다. 비서실장이 넓은 청와대 경내의 많은 집무실 중에 (대통령이) 어느 곳에 위치하고 계시는지는 만나뵙기 전엔 알 수 없는 일이고, 따라서 추측해서 말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통령이 어디에 계신지 모른다는 건 경내에 계셔도 경호상 그 위치를 말씀드릴 수 없다는 뜻이었다고 세월호 국정조사특위 기관보고에서 답변한 바 있다“고 덧붙였다.

‘인사참극 책임론’에 대해선 “저는 청와대 비서실장이면서 인사위원장의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 인사의 잘못된 점은 책임을 통감하며 앞으로 인사수석실을 잘 운영하고 개선해나가겠다”고 답변했다. 안대희·문창극 전 총리 내정자를 누구에게서 추천받았느냐는 질문엔 “인사문제는 후보자들의 개인 사생활과 관계 있으므로 말씀드릴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고 했다.

김 실장이 이처럼 언론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선 배경은 무엇일까. 당장은 ‘7시간 미스터리’ 의혹 제기에 공세적으로 대응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란 관측이 많다. 실제로 산케이신문 보도 이후 청와대는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윤두현 홍보수석은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것을 기사로 썼다”며 “민·형사상 책임을 끝까지 묻겠다”고 밝혔다.

왜곡 보도 막기 위해 선제 대응

실제로 산케이 보도 이후 청와대는 내부에 ‘태스크포스’를 꾸려 대응책을 마련하고, 유사 보도에 강경 대응키로 결정했다고 한다. 따라서 김 실장의 이례적인 언론 답변은 또 다른 왜곡보도를 막기 위한 선제대응일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동안 박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불통’ 이미지에 시달렸던 김 실장이 언론은 물론, 정치권과의 소통 행보에 나서기로 방향을 선회한 첫 단계라는 분석도 많다. 취임 1주년(8월 6일)을 맞은 시점에 자신을 겨냥한 퇴진론을 일축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정국에 대응하기 위한 포석이란 관측이다.

김 실장이 잡지 인터뷰를 통해 정치권에서 자신을 불통, 권위주의, 구시대 인사라고 공격하는 데 대해 적극 해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인사위원장 업무의 성질상 많은 분과의 교류, 교통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해 대외접촉을 삼가고 근신하고 있다”며 “그것을 불통이라고 한다면 그 비판을 감수하겠다. 여야, 기타 관계자와의 소통은 소관 수석의 몫”이라고 선을 그었다.

김 실장은 또 “저는 권위를 내세우는 사람이 아니다. 나이가 많아서 ‘시대에 맞지 않다’고 하는 모양인데 생각이 늙었으면 나이가 젊어도 늙은이가 되고, 생각이 젊으면 나이가 들어도 시대에 맞추어 나갈 수 있다고 생각 한다”고 항변했다.

청와대의 소통 강화는 지난 6월 윤두현 홍보수석, 조윤선 정무수석 등 언론과 정치를 잘 아는 참모들이 합류한 뒤 일어나고 있는 중요한 변화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에 따르면, 특히 윤 수석 취임 이후 브리핑 방식이나, 언론 대응 방향이 크게 달라졌다고 한다. 가급적 기자들의 취재편의를 감안하는 쪽으로 브리핑 일정 등을 짜고 있다. 대통령의 일정 공개에도 적극성을 보인다.

윤 수석의 청와대 입성 첫 작품은 청와대의 공식 인터넷 홈페이지에 ‘청와대 어린이 홈페이지’ 코너를 신설한 일이었다. 초등학교 4~6학년을 주요 대상으로 운영되는 어린이 홈페이지는 아이들의 시각에 맞춰 대통령과 청와대를 소개하고 각종 정보도 제공한다.

아울러 청와대의 인터넷·블로그 등 온라인채널 활용도 강화되고 있다. 앞으로 뉴미디어를 활용한 홍보 기능에 더해 뉴미디어분야 제도·정책 및 문화·산업의 발전도 추진할 계획이라는 전언이다.

조윤선 정무수석도 청와대에 소통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세련된 외모와 언행,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최장수 대변인 출신으로서의 역량을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금융계(씨티은행), 국회, 정당, 정부 등을 두루 거친 경력으로 여의도 정가와의 스킨십을 넓혀나가고 있다.

조 수석은 청와대 입성 이후 거의 매일 여야 의원들과 만난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회의 때마다 민생법안의 조속한 국회 처리를 당부하는 만큼 여의도에 하루 종일 대기할 때도 많다. 박 대통령도 수시로 전화를 걸어 현안을 물어보는 것으로 알려진다.

신임 수석 3인방과 호흡 맞춰

여기다 윤·조 수석과 함께 청와대로 들어간 안종범 경제수석도 참모진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대선 당시 기초연금 등 ‘근혜노믹스’의 밑그림을 짰던 안 수석은 매주 토요일 오전에 박 대통령과 한 시간 정도 소통하면서 일종의 ‘경제과외’를 다시 시작했다고 한다.

신임 수석비서관들을 중심으로 청와대에 새로운 분위기가 조성되자 김 실장도 힘을 받는 모양새다. 그동안 박 대통령의 가신그룹 3인방(정호성 1부속실 비서관, 안봉근 2부속실 비서관, 이재만 총무비서관)의 견제를 받는다는 풍문이 나돌았으나 지금은 많이 숙졌다. 오히려 외부에서 들어온 수석비서관들이 힘을 받으면서 3인방의 기세가 꺾이고 김기춘 체제가 굳건해졌다는 말도 나온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여권 내부에서 ‘김기춘 사퇴론’이 쑥 들어가고 있다. 한 때 후임자까지 거론되면서 신임 각료들의 국회 인사청문회가 끝나면 물러날 것이란 관측이 나왔지만 지금은 유임론이 지배적이다.

특히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조만간 청와대와 각을 세울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김 실장만한 방패막이를 찾기 어렵다는 현실론도 나온다.

김 실장은 청와대 안팎의 분위기가 호전되자 박 대통령의 국정보좌에 상당한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최근 주변 참모들에게 “세월호 청문회에 증인으로 채택되면 안 나갈 이유가 없다. 청문회 증언에 능동적으로 응하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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