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부터 닷새간의 추석 연휴를 맞게 되는 나라 안 사정이 풍성한 것하고는 거리가 멀다. 황량 스럽다는 느낌마저 자아내고 있다. 특히 올 추석이 가을 추석 아닌 38년 만에 찾아온 사실상의 여름 추석이 될 것이란 전망이고 보면 햇곡식, 햇과일을 제사상에 올리기가 힘들다는 사실까지 민심을 흔들어 댄 마당이다. 그 마저 늦여름에 쏟아진 폭우 피해로 해서 정신 못 차리는 지역이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 나라 정치는 세월호에 묶여 한 발짝도 운신을 못하고 있다. 한탄하던 소리가 통분하는 소리로 바뀌고 있는 정황이다. 박영선 비대위원장은 힘들게 만들어 낸 여야 재 협상안을 또다시 파기하고 재 재협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당내 강경세력의 투쟁전선에 합류하겠다는 박 원내대표의 선언은 여권의 무조건 항복 외에는 더 이상의 협상은 없다는 입장 천명으로 보였다.

유교의 가르침을 국시로 삼았던 조선 왕조 때 남편 죽인 원수를 아내가 직접 살해하고 만고의 열녀로 추앙받은 사례나, 부모의 원수를 찾아내 교살한 아들이 천하의 효자로 칭송받는 일이 백성들 정서에 전혀 생뚱맞지가 않았다. 인륜문제에서는 ‘피해자가 가해자를 직접 처단’할 수 있는 통치적 합의가 있었던 시대다. 부모를 죽인 원수는 ‘같은 하늘아래 살 수 없다’는 것이 조선시대 사람들의 윤리의식이었다.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둘러싼 쟁점의 핵심조항은 알려진 대로 수사권과 기소권에 관한 특검 추천권 문제이다. 10수일 전에 다시 여야가 잠정 합의했던 세월호 특별법 재합의 안은 상설특검법 테두리 안에서 유족 측의 의견을 반영해 추천권을 행사토록 한다는 방안이었다. 이를 유족 측이 보이콧 시키고 사실상의 특검 추천에 관한 전권을 보장해 달라는 요구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피해자 측이 가해자 내지 방기자들을 직접 수사하고 기소할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 속이 풀린다는 유족 측 입장이다. 이를 정권 저항세력들이 반정권 투쟁의 호기로 이용하고 있다. 그럴 입장이면 앞으로 또 언제 일어날지도 모를 생활 속 불의의 대형사고가 인재였음이 드러나고 공권력의 방기(放棄)가 논쟁거리로 떠오를 때는 피해자가 직접 처벌에 나서게 해야 마땅하다.

나라 흥망성쇠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제1야당의 정치행태가 걸핏하면 거리로 뛰쳐나가는 것까지는 또 그렇다 쳐도, 전 당력을 과반수 국민이 공감하지 못하는 세월호 유족들의 수사권 행사에 쏟아 붓는 건 스스로 한계에 부딪쳐 희망 있는 ‘새 야당’을 손짓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지금 우리 야당 정치가 세월호를 빼고 나면 무엇 하나 보이는 게 없다. 표현하면 ‘야당정치-세월호=0’의 시대라는 뜻이다.

대통령과 현 정부를 불신한다고 말한 사람들이 입만 열면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는 이율배반은 또 뭔가. 의회민주주의를 지켜야 할 정치인들을 광화문 광장으로 유인한 단식의 명분은 또 얼마만큼이나 타당성 있었는지. 박영선 원내대표를 나무위에 올라타도록 만들어 놓고는 다시 흔들어 대는 정치 공학의 정체는 또 무엇인가에 이르도록 많은 사람들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현재 국회 본회의에는 여야 합의를 거친 법률안 93건이 상정돼있다. 대관절 대한민국 야당 정치가 이 시점에 왜 필요하냐는 의문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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