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취임후 대부분 철거;궁정동은‘무궁화 동산’

YS 취임후 대부분 철거…궁정동 ‘무궁화 동산’ 변신
MB정부 때까지 비밀회식 장소…청와대측선 “모른다”


[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야권이 ‘박근혜 정부의 막후 실세’라며 의혹을 제기하는 정윤회씨가 최근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정씨는 고(故) 최태민 목사의 사위였으며, 박근혜 대통령이 1990년대 국회의원 신분일 때 보좌관을 지냈다.

정씨가 검찰에 출두한 건 일본 산케이신문이 지난 3일 보도한 ‘박 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누구와 만났을까’라는 기사 등에 대한 명예훼손 고소 사건의 참고인 진술 때문이었다. 산케이는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을 때 7시간 동안 박 대통령의 행적이 묘연하다며 정씨와 만났을 것이란 국내의 루머들을 소개하는 악의적인 기사를 내보냈다.

정씨는 검찰 조사에서 “당일은 물론이고 다른 날도 청와대에 간 적이 없고, 대통령을 만난 일도 없다”고 부인한 것으로 알려진다. 청와대 김기춘 비서실장도 한 언론 인터뷰에서 “대통령께서 4월 16일에 외부 인사를 접견한 일은 없는 걸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관저에도 대통령 집무실

현재 여러 가지 정황상 박 대통령은 참사 당일 청와대 경내 관저의 집무실에 머물면서 모두 21차례의 서면보고와 유선보고를 받고 필요한 지시를 내렸던 것으로 파악된다. 대통령 집무실은 본관 뿐 아니라, 관저와 비서동(위민관), 지하벙크(비상집무실)에도 있다고 한다.

당일 박 대통령은 별다른 공식 일정이 없어 참사가 발생한 오전 10시경에 관저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또 최초 상황보고를 받을 때 ‘전원 구조’라고 했기 때문에 승용차로 5분 이내 거리에 있는 본관으로 가지 않고 관저에 머물러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과거 대통령들도 오전 일정이 없으면 관저 집무실에서 업무를 본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산케이신문 보도를 전후해 인터넷 상엔 박 대통령이 청와대 경내 제3의 장소인 안가(安家·안전가옥)에서 외부인을 만나고 있었을 거라는 고약한 루머들이 나돌았다. 산케이신문이 이를 빌미로 ‘정윤회’를 끼워넣은 것이다.

현 정부 들어 청와대 참모들은 안가의 실체를 물으면 “모른다”거나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대답한다. 김기춘 비서실장도 언론 인터뷰에서 “안가 건물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으며, 설령 안다 하더라도 경호 비밀 때문에 말씀드릴 수가 없으니 양해해 달라”고 말했다.

취재 결과, 이명박 대통령 때까지 사용하던 안가가 아직도 헐리지 않고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안가는 삼청동 쪽에 한 곳이란 말과, 효자동 쪽에도 한 곳 더 있다는 말이 엇갈렸다. 안가에는 관리인이 상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이 청와대 안가를 실제로 사용하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박 대통령의 성격상 정치권 인사나 지인들을 따로 만나더라도 은밀한 안가 보다는 공개된 장소를 선호할 것이란 추측은 가능하다.
다만, 박 대통령은 2012년 대선에서 승리한 뒤 당선인 시절에 새 정부의 골격을 구상하면서 삼청동 안가를 활용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을 권역별로 만나 의견을 듣는 장소가 삼청동 안가였다고 한다.

2012 당선인 때 안가 활용

이명박 전 대통령도 당선인 시절에 경호상 필요에 따라 이곳에서 생활했다. 이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에도 간혹 정치인이나 지인들을 안가로 불러 저녁식사를 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곤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새누리당의 한 중진 국회의원은 “MB의 초청으로 동료의원들과 같이 삼청동 쪽의 안가로 가서 청와대 참모들이 배석한 가운데 저녁을 먹으며 ‘폭탄주’를 서너 배 돌린 적이 있다”고 회상했다.

과거 청와대 참모생활을 했던 한 인사는 “대통령의 저녁식사 자리는 대개 세 곳에서 이뤄진다”며 “외국정상 등 VIP와는 영빈관, 참모나 가족들과는 관저 식당, 외부 인사들과는 안가에서 식사를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외부인을 안가에서 만나는 이유는 보안성과 편리성 때문이다. 일반인이 청와대 경내로 들어가려면 신분확인 절차를 거쳐 출입증을 발급받아야 한다. 이 기록은 끝까지 남는다. 이에 비해 안가로 들어가는 출입문은 따로 있다. 입구에 경비초소가 있지만 미리 통보받은 외부인만 들어가기 때문에 신분확인만 하고 기록은 남지 않는다.

과거 대통령들이 안가를 선호한 또 하나의 이유는 편한 마음으로 외부인을 만날 수 있는 까닭이다. 관저에서 식사를 하게 되면 아무래도 격식을 차려야 한다. 가족들이 같이 사는 경우에는 서로 불편하기도 하다.

따라서 대통령의 안가 이용을 부정적 시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대통령은 어차피 청와대 경내를 빠져나와 외부에서 식사를 하기 쉽지 않다. 과거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간혹 극소수 경호원만 대동한 채 정치할 때 단골집을 찾아갔다고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경호상 번거롭다면서 청와대 밖 외출을 삼갔다.

미리 통보한 외부인만 출입

과거 정부에서 청와대 요직을 맡았던 한 중진정치인은 청와대 안가의 ‘순기능 론’을 역설했다.

“대통령도 사람이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과를 마치고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스트레스를 풀고 싶어 한다. 그럴 때마다 밖으로 나갈 수는 없지 않은가. 굳이 스트레스 해소 차원이 아니더라도 안가에서 사람을 만나는 일은 중요하다. 바깥세상의 움직임, 민심을 언론을 통해서 파악하거나 청와대 참모들에게만 들으면 왜곡될 수 있다. 뼈아픈 소리도 전할 수 있는 옛 정치동료나 친구들을 만나 여론을 듣기엔 안가가 안성맞춤이다.”

청와대 안가가 국민들의 뇌리에 부정적으로 인식된 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심복이었던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에게 시해된 1979년 10·26 사건 때문이다. 당시 박 대통령은 청와대 인근 궁정동 안가에서 여성 가수 등을 동석시켜 핵심 측근들과 술을 마시다 변을 당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집권 후 청와대 인근에 모두 12채의 안가를 만들었다고 한다. 유신정권이 끝난 뒤 정권을 잡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도 재임 시절 이 안가들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박정희 시대의 안가들이 철거된 건 1993년 김영삼 대통령(YS)이 취임한 직후다.

YS는 퇴임 후 한 인터뷰에서 “청와대 안에 안가가 12채 있었는데 간단히 말하면 호화스런 요정이었다. 취임한 지 2~3일 만에 전부 뜯어버리라고 했다”고 밝힌 바 있다. YS는 특히 “대통령이 재벌하고 안가에서 술 먹는 일이 참 많았다고 한다. 한 달에 두 번 했다고 한다”며 “재벌을 만난다는 것은 돈 받는다는 말 아니냐. (나도)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많이 만났지만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재벌들을 안 만났다”고 말했다.

YS가 철거한 안가에는 역사의 비극을 간직한 궁정동 안가도 포함돼 있었다. 당시 청와대는 궁정동 안가를 헐고 그 자리에 시민공원인 ‘무궁화동산’을 만들었다. 쉼터에 가까운 규모로, 청와대를 정면으로 봤을 때 왼쪽에 자리잡고 있다. 안가를 공원으로 바꾼 데 대해선 “역사적인 공간으로 남겨뒀어야 한다”는 여론도 있다.
지금 청와대 주변에 있는 것으로 파악된 한두 개의 안가가 그 때 철거되지 않고 남은 것인지, YS 이후의 대통령이 새로 지은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삼청동 안가는 노무현 전 대통령도 간혹 사용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ilyo@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