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홀, 재앙 징조인가

서울시 “싱크홀 등은 제2롯데월드와 관련 없어”
롯데측 “올림픽 하부도로 지하화 비용 전액 부담”

[일요서울 | 김재현 기자] 제2롯데월드 저층부 3개 층의 임시사용 승인 여부와 안전대책 등에 대한 지역 주민의 의견을 묻는 공청회가 열려 관심을 끌었다.
강동송파환경운동연합과 송파시민연대, 참여연대는 지난달 27일 저녁 송파구 불광교육원에서 ‘제2롯데월드 안전대책 수립을 위한 시민공청회’를 개최했다. 이날 전반적으로 제2롯데월드 조기개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최근 송파구 일대 제 2롯데월드가 위치한 석촌호수 주변에서 발생한 여러 개의 싱크홀 때문이다. 이날 공청회에 참석한 이들은 교통문제와 더불어 싱크홀 등 안전문제를 집중적으로 지적했다.
싱크홀은 지하 암석이 용해되거나 기존의 동굴이 붕괴되어 생긴 움푹 패인 웅덩이를 말한다.
정·재계 일부에서는 롯데그룹이 제2롯데월드 조기개장을 추진하는 배경을 놓고 여러 말이 나온다. 롯데가 조기개장을 강행하는 것과 관련, “초고층 빌딩 건설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조기개장을 강행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적지 않다.

패널로 참석한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세월호 참사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재벌과 대기업의 입장이 (일방적으로) 관철되는 방향으로 가는 것 아닌지 걱정된다”고 지적했다.

최회균 협성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저층부만 개장해도 이미 포화상태인 잠실역 주변 교통량이 20% 이상 증가할 것”이라면서 “롯데그룹 측이 애초 약속했던 교통개선대책을 모두 이행하기 전에는 승인을 내줘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최 교수는 “현재 거론되는 무료주차 금지 등은 대책이 될 수 없다”면서 “영등포 타임스퀘어도 개장 초 주차장 폐쇄를 약속했으나 이용객들의 민원으로 지키지 못했고, 결국 주변 주민들만 피해를 봤다”고 강조했다.

공청회에 참여한 시민 대다수는 제2롯데월드를 개장하면 지역 주민이 심각한 피해를 볼게 될 것이라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이미 도로가 포화 상태인데 더 심해지면 차가 아예 다니지 못하는 곳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았다.

최근 송파구 일대에서 잇따라 확인된 싱크홀과 지하 동공(洞空·빈 공간)에 대한 롯데그룹의 책임을 묻는 시민도 많았다.

싱크홀, 재앙 징조인가

공청회에 참가한 한 중년남성은 “전문가들이 아무 이상 없다고 해 일면 안심하면서도 믿음이 가지 않는다”며 불안감을 호소했다.

서울시가 구성한 싱크홀 전문가 조사단의 단장을 맡은 박창근 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제2롯데월드가 무너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많았으나, 기초가 제대로 돼 있다면 싱크홀이 발생할 수 없고 무너질 리도 없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개인 주택 등의 밑을 흐르는 지하수는 대부분 암반을 통하기에 역시 싱크홀 때문에 건물이 무너질 수는 없다”면서 “(주민이) 불안해하는 것은 이해하나 괴담 수준의 소문이 계속 확산되는 것은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싱크홀이 제2 롯데월드와 직접적으로 연관성이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책임성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지만 싱크홀 발생에 일정부분 영향을 끼친 것은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다.

더구나 제2 롯데월드 공사 후 공사장 주변의 지하수 수심에서 심상치 않은 이상 징후가 발견돼, 건물의 안전성에 치명적인 ‘부동(不同) 침하’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롯데 측은 2009년 서울시에 제출한 ‘환경 영향 평가서’에 제2 롯데월드 공사 이후, 주변 물이 공사장으로 흘러들면서 지하수위가 최대 0.7m 낮아지지만 걱정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최근 서울 송파구청의 측정 자료에 따르면 제2 롯데월드 인근 고등학교의 경우 지하수 수위가 3m나 내려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수위 변화가 롯데그룹 측이 조사한 내용과 달라 더 큰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로 인해 생각지도 못한 심각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제2 롯데월드 공사가 시작된 뒤 위험을 알리는 여러 전조증상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수위가 상승한 곳도 있어 정밀조사가 요구된다. 제2 롯데월드에서 직선거리로 800m 떨어진 지하수위 관측정의 지하수위는 터파기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2011년 이후 6m가 높아졌다.

송파구청에 따르면, 제2 롯데월드 반경 1km 이내 지하수위 관측소 6곳 중 2곳은 수심이 높아졌고 2곳은 정상, 2곳은 최고 3m까지 하락했다. 이에 대해 롯데 측은 8곳의 지하수위를 자체 측정한 결과, 1곳이 1m가량 낮아졌을 뿐, 나머지는 전과 큰 차이가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하수위의 변화는 지반 침하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부동(不同) 침하'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서울시 회의자료에도 이를 뒷받침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자료에는 “지하수가 대량 유출되면서 구조물에 불균등하게 수압이 작용할 수 있고, 유출량이 처리 가능 범위를 넘어서면 기초저면 균열 등 안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가 담겨 있다.

한서대 토목공학과 박인준 교수는 “지하수의 불균등한 수압 작용은 건물에 균열을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에 무게를 실었다.

불안감은 곳곳으로 확산되고 있다. 서울환경운동연합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 19일 기자회견을 통해 “제2롯데월드와 관련해서도 ‘전문가들은 지하수 흐름이 급변하며 제2롯데월드 건물 일부에만 높은 압력이 가해진다면, 지반이나 건물이 기울어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며 “송파구청은 공사 시작 때부터 지금까지 일일 지하수 유출량 모니터 결과를 즉각 공개해야 할 것”이라며 송파구청에 관련 자료 공개를 촉구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지반침하나 싱크홀은 모두 지하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말하자면 지하수 흐름이나 수위에 문제가 발생하면 그로인해 파생되는 연쇄작용들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대형사고를 부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급격한 지하수 유출

예컨대 외국의 경우 직경 50m에 이르는 대형싱크홀이 발생해 건물 20층 깊이의 구멍이 지면에 생겼고 이로 인해 건물하나가 통째로 사라졌다.

서울시의 한 간부는 “서울시 내부 회의에서 건설현장의 급격한 지하수 유출에 따른 부동침하 가능성이 제기됐다”면서 “제2롯데월드 타워를 지탱하는 지반은 77층을 짓는 2년7개월간 11㎜ 내려앉은 것으로 확인됐고, 같은 기간 벌어진 지하수 유출 현상은 아직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의견이 분분한 상태”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제2롯데월드 타워 지반의 침하 정도가 설계기준(35㎜) 안에 머문다면 문제가 크지 않다고 본다. 건물 무게만 75만t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내려앉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설명이다. 문제는 그 지반 밑에서 당초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규모로 급격히 유출되는 지하수다.

2009년 11월 완성된 환경영향평가서에는 지하수 유출이 일시적으로 발생할 수 있겠지만 차수벽 시공이 끝나면 지하수에 따른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지하수 유출량은 하루 평균 239t에서 터파기 완료 후 105t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이 때문에 지하수 유출 차단 효과가 큰 철근콘크리트 벽체를 공사부지 외곽에 쌓았다.

그러나 유출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2011년 6월만 해도 83t에 불과하던 하루평균 지하수 유출량은 올해 450t으로 늘어났다. 예상치의 4배가 넘는다. 가장 효과적인 지하수 유출 방지책이 될 것으로 기대했던 차수벽이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에 전문가들은 차수벽이 손상됐을 가능성, 차수벽 아래의 깨진 기반암을 통해 물길이 형성돼 지하수가 유출되고 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또 제2롯데월드가 완공되더라도 배수용량(하루 1350t)을 넘어서는 지하수가 계속 유출될 경우 역시 건물 균열 등이 생길 수 있다고 본다. 서울시는 이런 지하수 흐름이 제2롯데월드 지반과 건물 자체에 불규칙한 압력을 가해 부동침하를 일으킬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지하수가 건물 일부에만 높은 압력이 가해지면 지반이나 건물이 기울어지는 등 변형될 수 있다. 이미 잠실 일대에는 크고 작은 싱크홀이 여럿 발견됐지만 명확한 원인은 규명하지 못한 상태다. 한서대 토목공학과 박인준 교수는 "지하수 흐름이 급변해 구조물에 불균등한 압력을 가하는 상황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결국 지하수 유출의 원인을 밝혀내는 게 급선무다.

환경영향평가서는 이 지역 기반암이 단층의 영향을 받아 대부분 깨진 형태로 나타나며 매우 불량한 암질 상태를 보인다고 평가했다. 또 과거 한강의 일부였던 이곳은 한강 모래와 흙이 15m 이상 쌓인 퇴적층이어서 물이 통과하기 쉽다고 밝혔다. 이 지역의 투수계수(물이 통과하는 정도)는 일반적인 지반보다 100배가량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지질자원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석촌호수를 중심으로 한 잠실 지역은 대부분 퇴적층이 넓게 형성돼 있고, 대표 암석은 흙·모래·자갈이다. 강남구 등 한강 이남의 다른 지역과 달리 퇴적층이 유독 넓게 자리 잡고 있다. 제2롯데월드 건설 부지를 비롯해 싱크홀이 발생했던 석촌동 방이동 일대는 모두 비슷한 지반 형태를 갖고 있다. 지하수 유출이 갈수록 심해진다면 주변 지역은 그에 따른 지반 침하 위험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제2 롯데월드 임시개장 여부를 결정할 때 정작 시민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싱크홀’에 대한 의혹 규명 여부는 빠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제2 롯데월드 임시사용신청을 교통, 안전 대책이 미비하다는 이유로 거부당한 롯데는 이를 보완해 재신청을 한 상태다. 또 롯데그룹은 올림픽대로 하부도로를 지하화하는 비용 전액을 부담하기로 하는 등 제2 롯데월드 개장을 필사적으로 강행하는 분위기다.

최근 제2 롯데월드 주변에서 싱크홀들이 다수 발생하면서, 이에 대한 안전 대책을 마련하기 전까지는 제2 롯데월드 개장을 무기한 연기해야 한다고 시민단체들은 주장했다. 제2 롯데월드 건설과 싱크홀의 관련성은 검토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에 전문가들과 시민단체들은 “위험을 감추기 위한 황당한 조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서울시는 지금까지 발견된 싱크홀들은 제2 롯데월드와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다. 석촌 지하차도 주변에서 발견된 대형 싱크홀들은 지하철 9호선 공사가 원인이라고 추정했다. 다른 싱크홀들은 노후된 수도관 파손 등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서울시는 제2 롯데월드와 싱크홀의 관계를 단기간에 증명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건축기획과 관계자는 “제2 롯데월드와 석촌호수 수위 감소는 용역을 맡겨 조사 중”이라며 “조사 결과가 나오는데 1년 정도가 걸리기 때문에 이번에 이를 검토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롯데가 제2 롯데월드 임시개장에 필요한 법리적 준비를 마쳤다면 서울시가 이를 막을 명분이 없다. 이에 일부에서는 “각종 위기를 롯데가 감지하고도 조기개장을 하려는 것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개장을 나중으로 미룰 경우 여러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한 이후에는 개장이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하고 작은 문제들이 드러날 때 조기개장을 강행하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제2 롯데월드가 임시 개장을 한다면 서울시는 시민의 안전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비난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ilyo@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