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드동영상 무단 유포 A사 피소 내막


국내 언론사 중 하나로 알려진 A사가 최근 송사에 휘말렸다. 계약도 맺지 않은 누드모델의 동영상을 게재, 배포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달 28일 미술전문 누드모델 박모(23)씨는 A사를 상대로 5,000만원의 초상권 침해 등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박씨에 따르면, 지난 9월 자신의 동영상이 돌아다닌다는 소문을 듣고 A사 측에 이같은 내용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 인터넷에 유포된 모든 동영상을 전부 삭제하라고 했지만, 2개월여가 지난 이후에도 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이 같은 소송을 제기했다는 것이다. “동영상 유포로 예술누드모델로서 설 자리를 잃어버리게 됐다”며 울분을 토하고 있는 그를 12월 5일 오후 서울 홍대 앞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만났다.


“저는 돈을 목적으로 하는 상업누드모델과는 다른 예술누드모델이에요. 언론에의 비공개성을 생명으로 하기 때문에 이 일은 제게 치명적인 타격입니다.”
인터뷰에 응한 박씨의 첫마디는 분노와 떨림이 묻어 있었다. ‘언론에 공개된다면 모델작업을 차라리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그는 이번 일로 적잖은 가슴앓이를 해왔다며 A사를 고소한 내막에 대해 낱낱이 털어놓기 시작했다.

지난 4월 누드크로키 행사장서 촬영
박씨에 따르면, 그와 A사의 ‘악연’은 지난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씨는 이 행사를 준비한 이모(화가 겸 교수)씨로부터 ‘대구지역 한 백화점에서 누드크로키(스케치 또는 밑그림을 뜻하는 말로, 빨리 그리는 그림) 미술수업이 있으니 모델을 서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당시 현장에는 약 40여명의 미술실습생들이 모여 수업준비를 하고 있었다. 박씨는 실습생들 외에는 아무도 참여하지 않는다는 확인 하에 모델작업에 임했다고 한다. ‘1분 동작’을 10분씩, ‘2분 동작’을 20분씩, ‘3분 동작’을 30분씩 크로키를 위한 포즈를 취하면서 박씨는 누드동작에만 몰두했을 뿐, 누군가 자신의 몸을 촬영하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게다가 당시 현장은 사방으로 뚫려 있는 오픈된 장소였기 때문에 자신을 보는 눈이 얼마나 많은지, 누가 그를 휴대폰이나 카메라 등으로 촬영하는지 등을 알리 만무했다.
또 미술 단체에서 홍보차원에서 보도용으로 메인표지 등을 장식하는 것이 아니면 아무리 돈을 많이 줘도 사진 촬영은 하지 않는다는 게 예술누드모델들의 룰이기 때문에 자신의 허락없이 사진을 게재하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박씨는 “시간이 좀 흐른 뒤 현장에 한 언론사에서 촬영하는 것을 보긴 했지만, 모델은 촬영하지 않고 크로키작업을 하는 실습생들의 모습만 멀리서 전체적으로 촬영을 하겠다는 전제하에 촬영을 한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그냥 넘어갔다”면서 “하지만 촬영된 동영상의 내용은 달랐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유포된 동영상 파문 일파만파
그렇다면 동영상의 내용은 무엇이며, 어디에 얼마나 유포된 것일까.
‘누드크로키에 빠져 봅시다’ 등의 제목으로 돌고 있는 이 동영상은 1분 50초 분량으로, 초반에는 실습생들이 행사장에 빙 둘러 앉아 누드모델을 크로키하는 전체적인 작업을 담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동영상의 중후반부터. 50여초가 지난 이후부터 동영상 곳곳에 박씨의 전신이 클로즈업 돼 있는가 하면 위로부터 본 얼굴 정면 모습, 측면 얼굴은 물론 박씨의 둔부에 있는 특징적 문신이 명확하게 나타나 있던 것이다. 게다가 모자이크 처리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아, 박씨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는 게 박씨의 주장이다.
실제로 박씨는 지인으로부터 이 ‘청천벽력 같은’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동영상이 유포된 지 5개월 만이다. “지난 9월 아는 후배가 ‘인터넷에 누드크로키 작업 모델 동영상이 도는데 혹시 선배 아니냐’고 묻더라고요. 깜짝 놀라 확인해보니 제가 누드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는 거예요. 그때 받은 충격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박씨는 또 “미술전문 누드모델의 경우 몸에 특정문신을 하는 경우가 그리 흔치 않기 때문에 미술계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나를 다 알아봤을 것”이라면서 “실제로 기사 관련 댓글을 보면 ‘저 모델 누구누구 아니냐’, ‘누드모델 몸매가 어떠어떠하다’는 등의 입에 담지 못할 민망한 내용이 적혀 있어 나를 알아보는 눈에 정신적인 고통을 느껴야 했다”며 한동안 수치심에 고개를 들지 못하기도 했다.
그는 이후 A사 측에 연락해 담당자를 찾아 강력하게 항의했다고 한다. 담당자 P모 부장은 “미안하다”는 말만 계속 반복, 이후 곧 조치를 취할 것을 약속했다고. 실제로 P부장은 박씨의 휴대폰에 ‘본사와 N사이트는 철회됐는데 다른 사이트는 담당자 오후 출근이니 곧 조치하겠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2개월여가 지난 11월 말께에도 몇몇 사이트에는 이 동영상이 검색되고 있으며, 심지어 어떤 사이트에는 현재에도 이 동영상이 실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사 ‘허락 받았다’며 항변
일반적으로 모델의 동의나 사전 통보 없이 사진을 신문에 게재, 배포하는 것은 초상권, 인격권, 사생활보호권 등의 침해로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실제로 박씨는 몰래카메라 여부에 대해 형사 소송도 생각 중이다.
이에 대해 A사 P부장은 “본사의 기자들은 분명히 이 행사를 주관했던 이 교수와 협의 하에 현장 모습을 촬영했다”며 “당시 촬영한 동영상을 이 교수에게 보여주기도 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P부장은 “동영상 화면 곳곳에 보이는 누드모델에 대해 이 교수에게 허락 여부를 확인했을 때, 다 조치를 했다고 말해 그런 줄 알았다”며 “또 이 교수는 ‘만약 누드모델이 어느 부위가 노출됐다고 해서 항변할 것 같으면 누드모델을 안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말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 교수는 이 같은 내용에 대해 일부 반박하고 있다. 그는 “A사와 협의할 때 분명 누드모델은 촬영하지 않고 크로키작업을 하는 실습생들의 모습만 전체적으로 촬영하기로 했었다”며 “당시 내게 보여줬던 동영상에는 누드모델의 자세한 모습이 담겨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모델이라는 직업 자체가 초상권을 중요시하는데다가, 특히 미술전문 누드모델은 언론에 노출될 경우 더 이상 누드모델로서 환영받지 못하는 생리를 잘 아는 내가 누드모델이 집중 촬영된 동영상을 허락했을 리 없다”며 P부장의 주장을 부인했다.
한편, 언론의 소송 등을 접수, 담당하고 있는 A사 기획부는 소송 여부를 확인하지 못한 상태. 아직 법원으로부터 소장을 발부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기획부 담당자는 “수개월 전 이 건에 대해 얘기를 들은 적은 있으나, 사후 처리가 어떻게 됐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모른다”며 “일단 소장을 받아봐야 알 수 있다”며 말을 아꼈다.

박씨 ‘모든 것은 법정에서 가려질 것’
박씨의 변호를 맡고 있는 안모 변호사는 “A사 담당부서에서 이 건에 대해 아직도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국내서 막강한 언론으로 알려진 A사의 악행은 법정에서 가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씨 역시 ‘끝까지 갈 것’이라며 더 이상 A사의 무소불위의 횡포를 두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미 동영상은 유포됐고,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정도로 파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어요. 저는 정신적인 고통과 직업적인 손해를 입었고, 미술계에서는 저를 이제 더 이상 환영하지 않는 분위기예요. 예술모델로서 설 땅을 잃어버린 셈이죠. 게다가 동영상이 아직까지 철회되지 않았다는 것은 저를 비롯해 미술계, 아니 전체 누드모델들을 능멸한 행위로밖에 보여지지 않아요. 저는 A사의 무성의하고 몰염치한 이 같은 태도를 절대 용서할 수 없습니다.”
현재 박씨는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끝까지 싸우겠다는 박씨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 ‘A사의 실체를 알리고, 더 이상 나 같은 모델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는 박씨의 각오는 비장하기까지 했다.
막강한 언론사를 상대로 한 한 힘없는 누드모델의 이유 있는 항변. 양측 주장이 대립되고 있는 가운데 과연 법원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귀추가 주목된다.



누드크로키 모델의 매력 ‘이런 것’
“저는 누드크로키 작업하는 사람들을 위한 모델이지, 음흉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을 위한 모델이 아닙니다.”
박씨가 던진 말이다. 그는 “사람의 몸이야 말로 살아 움직이는 생명력을 제대로 표현하는 그릇”이라며 “스케치북과 연필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미술전문 누드모델의 매력과 실태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했다.
박씨는 누드크로키 모델의 특징에 대해 ‘속도와 생동감’을 꼽았다. 슥삭슥삭. 긴장감 속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실습생들의 손놀림은 모델들에게 묘한 동기부여가 된다고 한다.
또 실습생들이 모델의 개성과 움직임의 영속성을 그리는 것에 모델로서의 자부심 등 독특한 매력을 느낀다고.
그에 따르면, 누드크로키 작업 등을 하는 미술전문 누드모델은 마른 것보다 좀 통통한 편이 좋다. 한마디로 그릴 것(?)이 있고 자연스러운 몸매를 원한다는 것. 외모는 개성이 강해 너무 튀는 것보다는 단아하고 온화한 이미지가 어느 분위기에나 어울려 환영받는다고.
또 무용이나 뮤지컬 등을 해 온 사람이 누드크로키 모델을 하는데 적격이라고 말한다.
몸놀림이 가볍고 부드러워 동작이 자연스럽게 연출된다는 것이다. 나이대는 상관없다. 실제로 현재 미술전문 누드모델은 10대 청소년서부터 50대 주부까지 다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3년 이상의 경력을 지니고 있는 박씨는 미술전문 누드모델로서 약간 마른 편이지만 자연스러운 몸매를 지니고 있어 전국 곳곳에서 섭외, 활동하고 있는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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