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사금융권 ‘터줏대감’ (주)중앙인터빌 최용근 사장 인터뷰


“제1, 2 금융권이 위기 상황에 노출돼 있을 경우, 이를 피할 수 있도록 정확한 기업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내가 하는 일에 보람과 긍지를 느끼곤 한다.”
지난 30여년간 명동 사금융권을 누벼온 (주)중앙인터빌 최용근 사장은 최근 기업정보 제공회사로의 전환에 성공하면서 한창 주가를 높이고 있다. 지난 13일 서울 명동 기독교회관에서 만난 그의 얼굴에선 일에 대한 강한 자긍심이 묻어났다.
현재 중앙인터빌은 국민은행, 우리은행 등 대다수 금융권과 상호저축은행으로 대변되는 제2금융권과 제휴을 맺고 어음 할인율 등 다양한 기업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최근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 개선작업)을 신청한 팬택의 경우에도 그 징후가 가장 먼저 포착된 곳이 바로 명동 사금융권이다.
최 사장은 “팬택의 경우 성공한 벤처 1세대로 급성장을 해왔지만, 자금관리에서 실패한 전형적인 형태로 볼 수 있다”면서 “그만큼 기업에서 경리부서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팬택’ 위기징후 명동 시장서 포착
그는 특히, 기업의 CEO가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는 지혜”를 강조했다.
“경험이 부족한 기업의 오너는 왕왕 앞만 보고 전진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자금의 흐름을 체크하기 위해 기업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팬택의 경우에서 보여지듯, ‘리스크 관리’가 철저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기업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팬택이 처한 위기상황은 핸드폰 시장의 경쟁이 심화되고 단기 급성장한 기업으로서 경험이 부족했던 측면도 없지 않다고 덧붙였다.
신생 기업들이 리스크를 최소화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정부차원에서 교육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도 한 번쯤은 고려해 볼 수 있다”면서 제도적 뒷받침을 언급하기도 했다.
최 사장이 이렇듯 기업정보에 해박한 지식을 갖게 된 것은 그동안 그가 바닥부터 다져온 현장 경험에서 비롯됐다.
그는 지난 1973년 ‘보따리장사’로 명동과 인연을 맺었다. 언제나 자신이 처한 난관에 당당하게 맞서 개척해 왔기에, 1975년 중동 개발현장의 노동자에서 부동산 중개업자로 변신하는 등 강인한 ‘생활력’을 키워왔다.
1970년대 말 부동산규제조치로 사업에 실패를 맛본 최 사장이 다시 명동을 찾은 것은 명동 골목길 사이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1978년 겨울 초엽이다. 이때부터 최 사장은 사채시장 주변에서 이른바 ‘돈 심부름’을 하며 사금융의 운영 ‘노하우’를 익히기 시작했다. 기업과 관련, 제도권 밖에서 성행하던 현장의 정보를 취합하는 일도 그의 몫이었다.
최 사장은 “명동에는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이 들고 난다. 그중에는 잘난 사람도 더러 있겠지만, 대부분 허황된 비전이나 사기성격이 다분한 서류를 들고 찾아온다”며 “30여년간 그들과 몸소 부딪혀 왔기 때문에 이젠 얼굴만 봐도 대충 그 사람의 속내를 읽을 수 있을 정도”라고 했다.
최 사장이 명동의 ‘리더’가 된 것도 30년간 돈의 흐름과 기업의 자금운용을 몸으로 배웠기에 가능했다.
자서전 형태로 출간한 ‘명동 30년’에서 그는 명동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겉의 화려함과 다르게 명동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어두운 구석도 적지 않다. 주식의 작전세력, 가짜 채권서류로 사금융 업자들에게 접근하는 사기꾼, 오갈데 없는 3류 건달들, 조그마한 이권에 혈안이 된 협작꾼들, 정도를 벗어난 초 고금리로 사채시장에서 큰 과일을 따먹는 사람들, 돈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리배 등 온갖 군상들이 한데 엉켜 있는 곳이 바로 명동이다.”
치열하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이곳에서 ‘잔뼈’가 굵어온 최사장은 이제 터줏대감으로 우뚝 섰다. 그러나 최 사장에게도 몇 차례 위기가 있었다. 특히, L건설 어음을 위조해온 ‘사기꾼’에 얽힌 사연 등을 언급할 땐, 그의 얼굴에선 아직도 가시지 않는 씁쓸함이 엿보일 정도였다. 현재 명동 사금융권의 규모는 ‘전성기’였던 1990대 후반에 비해 큰 폭으로 축소됐다. IMF를 전후한 시점에 ‘경’단위까지 거래되던 어음 규모는 현재 20~30조원대로 크게 줄었다. 자연히 어음중개업과 대부업체들도 도태되기 시작했다. 오늘날 일반인이 명동에서 이들의 그림자를 찾기도 어려워진 배경이다.
중앙인터빌은 시장 변화의 흐름을 읽고 능동적으로 변신해 성공한 ‘케이스’로 꼽힌다. 중앙인터빌 최 사장이 가장 역점을 둔 것은 바로 ‘기업정보’였다.
최 사장은 “사회가 발전하고 다양해질수록 정보의 중요성은 커지게 마련”이라며 “정보가 ‘돈’으로 연결되는 상황에서 우리의 역할은 향후 확대될 여지가 많다”고 주장했다.
특히, 기업정보의 경우 금융사를 포함해 시장이 혼란에 빠질 수 있을만한 사안이 많기 때문에 기업과 금융사가 항상 촉각을 세우고 있는 부분이다.
최근에는 저금리의 영향으로 ‘재테크’를 문의하는 고객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사장은 이들에게 ‘부동산’을 언급하곤 한다고 말했다. 한국적 상황에서 부동산이 ‘영원한 재테크 수단’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못내 안타까워하면서도 말이다. 주말마다 충북 보은에 자리잡은 농장에서 생활하는 최 사장은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정치적 계산이 깔려있는 것 같다. 이제 부동산도 산업적 측면에서 거시적으로 보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현재 경희대 객원교수를 맡고 있다.

“돈은 영원히 내 것이 아니다”
어느덧 60대 중반까지 달려온 최 사장은 최근 들어 소탈한 ‘금전철학’을 내놔 주변을 놀라게 했다. 그는 “돈은 영원히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면서 “앞으로는 보다 적극적으로 사회에 환원하는 방법을 찾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 사장은 국내 기업의 글로벌화를 기원하면서도 인터뷰 말미에 일부 상장사에 대한 어두운 전망을 던졌다.
그는 “최근 기업동향을 보면, 불행히도 내년 초에 팬택과 유사한 길을 갈 것으로 보이는 기업이 3~4개 정도 눈에 띈다”고 말하면서 시장 관계자들의 주의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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