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박지원 고래싸움에 등 터지는 전북

[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새누리당 출신으로 호남에서 배지를 단 이정현 최고위원으로 인해 호남지역이 들썩거리고 있다. 지난 7.30재보선에서 최우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순천대 의대 유치가 현실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전북과 전남 나아가 동서 지역으로 나뉘어 지역 갈등 양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당초 ‘朴의 남자’라고 할지라도 의대 유치 공약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높았다. 하지만 관련부처인 교육과학기술부가 내년부터 전북에 소재한 서남대 의대 정원을 최근 정지시킴으로써 희망의 불씨를 살리고 있다. 한 개의 의대가 취소되면 그 정원만큼 다른 대학에서 유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의대를 빼앗길 처지에 몰린 전북과 의대 유치를 위해 사활을 걸고 있는 전남 순천대와 목포대 간 경쟁이 과열되면서 지역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우려감마저 나타나고 있다.

- “의대만 있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호남 국회의원들 편한 세상은 다 갔다. 긴장 좀 해야 할 것”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 전남 순천·곡성에서 당선돼 금의환향하고 최고위원에 지명된 직후 새정치민주연합 호남 의원들에게 던진 일성이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은 ‘예산폭탄’에 각종 굵직굵직한 공약을 내놓은 이 의원이 1년반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실천할 수 있을지 긴가민가했다. 일각에서는 어차피 20대총선에서 재선되기 힘들 것이라는 냉담한 시각도 존재했다. 하지만 이 의원이 당선된 직후 순천·곡성에서 최우선적으로 약속한 순천대 의대 유치가 현실화될 조짐이 나타나면서 야당내 호남권 인사들이 초긴장하고 있다.

전북 서남의대 폐과 우려 현실 ‘부글부글’

발단은 전북 남원에 소재한 서남대 의대 정원 정지를 최근 교과부가 발표하면서 이 의원의 공약이 재차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교육부는 서남대 의대가 2012년에 의사 양성과정에서 실습 교육 등이 소홀했다는 문제가 제기돼 감사를 진행했고 9월 3일 올해부터 의대 신입생 모집을 정지시키는 초강수를 발표했다. 이미 서남대는 설립자 이홍화(74)씨가 수백억원대 교비 횡령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으면서 폐교 위기까지 몰렸었다.

그러나 전라북도와 남원시와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서남대 의대 정상화’를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전북 남원 출신 강동원 의원과 유성엽 의원(정읍)은 2013년 ‘서남대 정상화를 위한 정책간담회’를 열고 “서남대는 전북 동부권 유일의 종합대학”이라며 “학교 폐교 시 전북 지역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 심각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전라북도과 남원시 그리고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노력으로 지난 6월에는 서남학원이 교육부를 상대로 낸 감사결과 처분에 대한 취소 행정소송에서 “교육부가 내린 서남의대생과 졸업생들에 대한 학점취소와 학위취소 처분은 부당하다”며 교육부의 처분을 취소하라는 행정법원 판결을 내려 정상화가 마련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이 높았다. 또한 6.4 지방선거에서 ‘서남대 정상화’는 최대의 이슈였고 서남대 총동문회 부회장이 남원시 시의원에 당선되기도 했다.

하지만 교육부가 서남대 의대 정원 모집 정지를 발표하면서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고 의대 폐과위기에 몰렸다. 의대가 없는 서남대가 폐교 위기까지 겹치면서 그동안 전북도민이 우려했던 ‘서남대 의대를 전남에게 빼앗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감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다.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이자 최측근인 이정현 최고위원이 순천·곡성 재보선에 출마하면서부터 순천에서도 ‘서남대 의대가 폐쇄되면 정원을 받아 순천대 의대를 유치하면 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야당의원들로부터 제기됐다.

그러나 막상 새누리당 이정현 최고가 당선되면서 오히려 순천대 의대 유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모습이다. 실제로 순천시의회는 8월28일 ‘국립순천대학교 의과대학 유치지원을 위한 특위 구성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또한 이정현 최고는 당선되자마자 의대정원을 관리하는 보건복지부 장관과 의대 설치와 관련된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만나 협조를 부탁하는 등 발빠른 행보를 보였다.

이미 순천대는 2012년 12월 국회의원과 시민단체 등 각계인사를 중심으로 의과대학 설립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광역자치단체 중 유일하게 의과대학이 없다’는 명분을 들어 의대 유치를 위한 77만 명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또한 순천대는 약학과와 한약자원학과 등을 신설하고 T/F팀을 꾸려 의대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여기에 ‘박의 남자’로 불리는 이정현 최고위원이 지역구 의원이 되면서 의대 유치에 탄력이 붙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전북 서남대뿐만 아니라 발등에 불이 떨어진 대학은 전남 서부권에 위치한 목포대다. 1990년부터 의대 유치를 위해 노력할 정도로 전라남도와 목포시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다. 목포대는 최근까지 20여 차례에 걸쳐 정부에 지속적으로 의대 유치를 건의하고 있다. 목포가 지역구인 박지원 전 원내대표 역시 발벗고 나서고 있다. 이미 전라남도와 목포시 그리고 목포대는 2008년에 ‘의과대학유치추진기획단’을 발족했고 2012년부터는 목포대 의대유치 도민 결의대회를 열고 100만인 서명운동을 전개하는 등 활발한 유치전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 실세가 순천대 의대 유치전에 나서면서 전라남도는 슬며시 목포대에서 발을 빼는 형국이다. 이는 야당 거물 정치인 박지원 전 원내대표와 ‘박의 남자’인 이정현 최고위원 간 신경전까지 벌이면서 호남내 동서지역으로 나뉘어 소지역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역정서에 기댄 정치인 포퓰리즘 ‘경계’

박 전 원내대표는 최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두 거물이 의대를 놓고 붙었다는 세간의 관심’에 대해 묻는 질문에 “내가 이정현 의원하고 싸울 군번도 아니지만...”이라며 “목포는 섬들이 많아서 섬에 사는 사람들이 환자 이송 중 목포에 나와서 광주 대학병원으로 옮기다가 많은 불상사가 생기기 때문에 25년 전부터 의대를 준비하고 있었고 순천대는 그렇게 (오래) 되지 않은 것 같다”고 이 최고위원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이정현 최고위원 역시 같은 날 다른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박지원 의원님 주장도 일리가 있지만...”이라면서도 “우선 (순천에는) 공단이 많아서 산업재해 발생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며 순천대 유치를 강조했다.

한편 의대 유치전이 지역 간 갈등을 조장하고 정치인 간 자존심 싸움으로 변질되는 것에 대해 정치권 일각에서는 우려와 함께 포퓰리즘으로 흐르는 것에 대해 경계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보건복지위원실 관계자는 “의대만 있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말하고 있는 정치인들을 보면 제2의 서남대 사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된다”면서 “전남 지역에 필요한 게 의대인지 아니면 대학병원 수준의 의료기관인지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의대가 있다고 의료접근성과 의료의 질이 높아질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 인사는 “우리보다 영토가 두 배나 많은 영국은 32개의 의대가 전부다”라며 “의대 숫자에 연연할 게 아니라 구조조정을 통해 부실 교육을 정상화해야지 의대 신설한다고 의료 서비스 수준이 올라가는 게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mariocap@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