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 지내는 회장님, 집안 싸움하는 회장님

[일요서울 | 박시은 기자] 민족 대명절 추석이 다가왔다. 첫 대체휴일 도입에 따라 고향을 향한 발걸음도 더욱 가벼워진 모습이다. 재계 역시 추석맞이로 분주하다. 이런 가운데 재벌 총수들의 명절나기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그룹의 총수가 가정으로 돌아갔을 때의 모습에 대한 궁금함이다. [일요서울]의 취재 결과 재벌 총수들의 올해 추석나기는 대부분 가족들과의 시간을 보낼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직원들에게 메시지를 받거나 집안싸움으로 진통을 겪는 일도 있어 눈길을 끈다.

LG·GS·현대·한화·포스코 등 개인시간
제 2롯데월드 조기개장 여부 놓고 바쁜 롯데
삼성·CJ, 병원서 가족끼리 맞는 명절
형제의 난 재연에 살얼음판 걷는 금호家

▲구본무 LG그룹 회장, 허창수 GS그룹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첫 대체휴일 도입으로 황금연휴를 해외에서 보내거나 예년과 다를 바 없이 고향으로 발걸음을 향하는 등 추석을 보내는 이들의 모습은 각양각색이다. 재계 역시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재벌그룹 총수들은 자택 혹은 큰집에서 차례를 지낼 예정이나 일부 총수들은 병원에서 혹은 경영구상으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또 이중에는 추석을 앞두고 집안싸움으로 진통을 겪는 이도 있다.

그룹 내 특별한 우환이 없는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자택에서 차례를 지내고 경영구상에 몰두할 예정이다. 최근 LG그룹은 ‘1등 LG’에 대한 열망을 실현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구 회장은 “이 정도 만들면 잘 팔릴 거란 생각은 버려라. 신사업은 1등을 하겠다는 목표로 철저하게 키워나가자”면서 “우리는 어떤지 냉정하게 짚어봐야 한다. 선도기업과 격차를 크게 좁히지 못했고 후발 주자들은 무서운 속도로 추격해 오고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 같은 구 회장의 신사업 1등 계획은 LG디스플레이와 LG이노텍 등 부품계열사에서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올해 상반기 매출 11조5667억 원이며 영업이익은 2574억 원이다. LG이노텍의 매출은 3조17억 원, 영업이익은 1530억 원이다.

그동안 ‘2등 LG’라던 이름에서 탈피하기 위해 계열사들이 LG전자에 대한 의존을 버린 결과다. 현재 LG디스플레이는 애플, 샤오미에도 액정화면 패널을 공급하면서 LG전자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있다. LG이노텍도 애플에 카메라 모듈을 공급하고 있으며 스마트카시장 성장에 발맞춰 차량 부품사업 키우기에도 집중하고 있다. 구 회장은 앞으로도 이 같은 적극적인 시장 개척을 통해 업계 1위 자리에 오르겠다는 포부를 보였다.

허창수 GS그룹 회장 역시 자택에서 조용한 추석을 보낼 예정이지만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으로서의 면모도 함께 보이고 있다. 허 회장은 지난 3일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을 찾아 상인들과 대화를 나누며 시장을 둘러보는 시간을 보냈다. 추석을 앞두고 우리 농산물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내수 활성화를 지원하기 위함이다.

이처럼 특별한 논란거리 없는 상반기를 보낸 GS그룹의 매출액은 5조2560억 원이며 영업이익 1346억 원, 당기순이익 724억 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이 다소 감소하긴 했지만 무난한 상반기를 보낸 셈이다.

또 최근 GS그룹은 4세 후계구도에 대해서도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다. GS그룹은 현재 허 회장을 필두로 3세 경영이 이뤄지고 있는 상태다. 현재 경영에 참여중인 GS일가의 주요 4세는 허남각 삼양통상 회장의 아들 허준홍 GS칼텍스 상무와 허동수 회장의 아들인 허세홍 GS칼텍스 부사장, 허창수 회장 아들 허윤홍 GS건설 상무 등이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GS의 비상장 계열사 위너셋 지분을 대거 취득해 경영권 승계가 가시화되고 있다는 관측을 낳았다. 위너셋은 비금융 지주회사로 GS그룹 일가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다. 또 최근 4세 경영인들이 지분을 계속해서 늘리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밖에도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권오준 포스코 회장 등도 추석 명절동안 가족들과 함께 개인적인 시간을 보낼 것으로 알려진다.

앞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지난달 16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 자택에서 열린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부인 변중석 여사의 7주기 제사에 참석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이 자리에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 등 범 현대가가 한자리에 모였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올해 여름휴가 계획도 반납한 채 하반기 경영 구상에 매진했던 만큼 추석 명절에도 경영 구상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 상반기 원화 강세로 현대기아차의 실적이 악화됨에 따른 타개책 마련에 주력하고 있는 것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자택에서만 명절을 보낼 예정이다. 김 회장의 특별한 경영 활동은 없지만 사장단들은 추석을 맞아 봉사활동에 나섰다. 한화그룹의 24개 전 계열사 사장단은 오는 12일까지 임직원 1000여 명과 함께 사업장 근처 복지시설과 홀몸노인, 다문화가정 등을 찾아 봉사활동을 벌인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총수가 연휴에 휴식을 취하며 개인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은 그만큼 큰 우환이 없다는 뜻이다”며 “특별한 경영 일정이 없다는 소식이 곧 희소식이다”고 봤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숙원사업 난항 속 끓는 사연

반면 그룹 안팎의 일로 편히 쉬지 못하는 재벌 총수도 있다. 특히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은 오랜 숙원사업의 미해결로 추석에도 바쁜 움직임을 보일 전망이다. 서울시가 제 2롯데월드 조기개장 여부를 시민들의 뜻에 맡기기로 하면서 다시 한 번 개장이 미뤄졌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롯데그룹이 제출한 자료들을 검토해 ‘적합’ 판정을 내렸지만 안전 문제에 대한 시민 불안이 큰 상황에서 개장을 강행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최종 결정을 추석 이후로 보류했다.

서울시는 임시개장승인 여부를 최종 결정하기 전 열흘 정도 영업행위 없이 임시개장 예정 구간을 개방해 안전성을 점검할 계획이다.

따라서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은 추석에도 마음을 놓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제 2롯데월드는 1987년부터 추진해온 숙원사업이지만 교통체증 심화와 건설 중 사상사고 및 화재 등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으면서 시민들의 불안이 커졌다. 특히 석촌호수 수위가 낮아지고, 싱크홀로 의심되는 현상들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등 잇따른 위기에 봉착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쾌유 바라는 응원 메시지도

반면 병원에 있거나 집안싸움으로 진통을 겪는 총수들도 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이변이 없는 한 이번 추석 연휴도 병실에서 보낼 것으로 예상된다. 이 회장은 지난 5월 심장마비 증상으로 삼성서울병원에서 심근경색 시술을 받은 바 있다.

이 회장의 장기간 입원으로 병실도 덩달아 화제가 됐다. 현재 이 회장이 입원해 있는 병실은 삼성서울병원 VIP 병실로 응접실, 병실과 분리된 방과 주방, 화장실이 모두 따로 있다고 알려진다. 이 회장이 입원한 20층은 삼성가 직계 가족이나 정·재계 유명인사만 사용한다. 또 지하 1층 주차장에 바로 연결되는 전용엘리베이터가 있으며 의사들조차 출입이 제한된 공간이다. 19층 역시 특실 전용 병동이나 중소기업 경영인이나 삼성그룹 임원들이 주로 사용하고 있다.

이 회장의 병세로 삼성그룹에는 이색적인 추석풍경도 연출되고 있다. 삼성 온라인 사내게시판에는 이 회장의 쾌유를 기원하는 글이 7000건에 육박한 것이다. 이 회장이 쓰러진 직후 병세와 관련한 설명문을 올렸는데 이곳에 직원들이 응원 댓글을 단 것이다. 사내 소식에 달린 댓글이 7000건에 육박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다수의 직원들은 “반드시 일어나서 다시 한 번 큰 도약을 할 것이라 믿는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에 따라 이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역시 병원에 함께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 부회장을 비롯한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 등은 이 회장의 병세로 인해 올 여름 휴가도 없었다. 이들은 휴가 기간 없이 하반기 경영전략 구상에 집중한 것으로 알려진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이건희 회장의 병세는 계속 호전되고 있는 상태”라고 밝혔다.

이재현 CJ그룹 회장 역시 건강이 위독한 상태다. 이 회장은 희귀난치성 질환인 샤르코마리투스병(CMT)을 앓고 있으며 신부전증으로 신장이식수술을 받은 뒤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이 회장은 신장 이식 이후 유전병이 겹치면서 70~80㎏이었던 몸무게가 40㎏대까지 떨어지는 모습이 공개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이 회장의 항소심 선고 공판도 오는 12일로 연기됐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집행유예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가는 이재현 CJ회장의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제판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앞서 지난해 8월 최태원 SK 회장도 항소심 선고 공판이 돌연 연기되며 선처에 대한 얘기가 언급되기도 했지만 재판부는 징역 4년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한 바 있다. 이에 최 회장은 이번 추석도 옥중에서 보낸다.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추석을 앞두고 ‘형제의 난’이 재연된 곳도 있다. 바로 금호가의 얘기다. 업계에 따르면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지난달 형인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을 4000억 원대 배임 혐의로 고소해 검찰이 수사 중이다.
앞서 금호그룹 창업주인 고 박인천 회장의 셋째 아들인 박삼구 회장과 넷째 아들인 박찬구 회장은 2006년 대우건설 인수문제 등으로 갈등을 겪은 바 있다. 이후 2010년 금호아시아나그룹과 금호석유화학으로 쪼개 분리 경영을 하고 있지만 ‘금호’라는 상표와 그룹의 상징인 ‘날개 마크’를 둘러싼 사용권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박찬구 회장 측은 박삼구 회장이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의 워크아웃 신청 직후인 2009년 12월 재무구조가 악화된 이들 두 회사의 기업어음(CP) 4270억 원을 발행하고, 이를 계열사에 떠넘겨 손해를 입혔다고 주장했다.
이는 워크아웃의 취지에도 위배될 뿐 아니라 오너를 위해 계열사에게 일방적으로 피해를 전가하는 ‘배임’ 행위에 해당하는 중대한 범죄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에 박삼구 회장 측은 “관련 소송은 전혀 새로운 부분이 아니다”고 밝혔다. 거론된 CP 발행은 신규발행이 아니라 만기를 연장한 것이며 부도와 법정관리를 피하기 위한 대책이었다는 것이다.
또 CP매입 전에 박삼구 회장이 동생 박찬구 회장과 동반 퇴진했기 때문에 경영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난 2월에는 박찬구 회장 측이 박삼구 회장의 개인일정 등 비서실에서 관리하는 문건 등의 일정이 기록된 문건을 빼돌려 악의적으로 이용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기도 했다. 해당 사건은 CCTV를 통해 적발돼 언론에 공개되기도 했다.

이처럼 형제간 갈등의 골이 계속 깊어지고 있어 금호그룹의 추석 풍경은 다소 살벌할 것으로 보인다.

seun897@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