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 안정위해 범죄 덮고 가선 안된다"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이 4일 임영록 KB금융 회장과 이건호 KB국민은행장에 대해 중징계 결정을 내렸다. 보름 전 내린 경징계에서 한 단계 격상한 것이다.

이는 KB금융 내분과 혼란에 책임을 지고 양 수장 모두 사퇴하라는 뜻으로 풀이됐고, 발표 직후 이 행장은 자진사퇴 의사를 밝혔다. 당초 KB금융의 내분은 진정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지난달 22일 KB금융지주 템플스테이에서 갈등이 표출됐고, 이 행장이 KB금융지주 및 KB국민은행 직원 3명을 고발하면서 갈등이 증폭됐다.

지난 2일 이 행장은 고발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이사회에 거취를 맡기겠다고 밝혔지만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았다. 이에 [일요서울]은 KB내분에 대해 조명해본다.

 중징계로 상향…사상초유 제재심 번복
 이건호 행장 사퇴로 일단락…KB ‘당혹’

두 수장에 대해 금감원이 중징계로 수위를 결정하자 KB 내부가 큰 충격에 빠졌다.

금융권에서는 제재심의위원회의 경징계 결정 이후 지배구조 변화 우려 등이 사라졌으면 망가진 조직 추스르기에 나서는 등 자중하는 모습을 보여야 했음에도 각기 다른 행보를 보인 두 수장의 책임이 무엇보다 크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급기야 이 행장은 금감원의 제재수위 발표 직후 자진사퇴 입장을 밝혔다.
앞서 최 원장은 “범죄수준에 육박하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면서 “KB내부적으로 해결이 되지 못하고 있고, 해결해야 할 최고경영자 스스로 문제를 확대시키고 있다”며 중징계 결정 배경을 설명했다.

임-이 갈등 발단은

임 회장의 중징계 사유는 주전산기를 유닉스로 전환시킬 목적으로 국민은행 임원 인사에 부당하게 개입했고 수차례 유닉스 전환 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보고 받고도 강행했다는 점이다.

이 행장은 취임 이후 감독자의 위치에서 주전산기 전환사업에 대해 수차례 보고 받았음에도 감독의무 이행을 태만히 해 위법·부당행위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고 사태확대를 방치했다는 점이 지적됐다.

이들은 앞서 경징계를 받아 현 체제를 유지한 채 경영 현장으로의 복귀가 가능했다.
금감원이 지난달 21일 6번째 제재심의위원회를 열고 오랜 시간 동안 논의 한 끝에 임 회장과 이 행장 모두에게 경징계에 해당하는 ‘주의적 경고’ 제재 조치를 내렸다.

결과가 알려진 22일 오후부터 다음날 오전까지 두 사람은 템플스테이 행사를 통해 화합 모드로의 변화까지 예상됐다. 계열사 전 임원이 각각 지주가 위치한 명동과 은행이 자리잡은 여의도에서 2대의 버스에 나눠 타고 화합을 위한 장소인 백련사로 향할 때만 해도 순탄해 보였다.

고요한 사찰에서 두 사람이 손을 잡고 환한 미소로 기념촬영에 나서자 그간 모든 갈등과 상처를 치유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수근 되는 목소리도 많았다. 그러나 이도 잠시. 이날 이 행장이 현장을 떠난 사실이 알려지면서 또 한번 갈등의 불씨가 커졌다. 임 회장의 방 배정에 대한 불만이 직접적인 이유였다는 오해가 생기면서 그 진위를 놓고 공방이 뜨거워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 행장이 김재열 KB금융 전무와 문윤호 KB금융 IT기획부장, 조근철 국민은행 IT본부장 등 전산교체 관련 임원을 업무방해죄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면서 진정 양상을 띄던 KB사태는 또 다른 활화산이 되고 말았다.

이 행장 측이 작성한 고발장에는 임 회장과의 적나라한 대화내용이 담겨 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더욱 관심을 모았다. 특히 김 모 전 IT본부장을 교체하는 과정에서 임 회장이 다섯 차례 구두로 의견을 전달했고, 이 행장이 이를 내켜하지 않은 게 이번 사태의 발단으로 지목되고 있다.

공교롭게도 당시 김 전 본부장은 IT업무를 총괄하는 동시에 주전산기 교체를 논의했던

고발장 적나라한 내용 담겨

국민은행 운영위원회(SC) 위원장을 겸임하고 있었다. 더욱이 운영위원회가 외부 컨설팅사에 의뢰한 4차 보고서를 토대로 유닉스로 주전산기 교체를 결정한 직후 김재열 KB금융 최고정보책임자(CIO) 겸 전무에게 “은행의 주전산기 교체에 더 이상 지주가 개입하지 마라. 전산시스템 변경 계획은 은행이 주도하고 모든 것이 은행 책임이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주전산기 변경 주도권을 놓고 지주와 국민은행 간 대립구도가 형성된 셈이다. 이에 김 전무가 임 회장을 움직여 김 전 본부장 교체를 주도했고 허위 보고서로 이사회 결정을 유도했다고 이 행장 측은 주장하고 있다.

이 행장은 “이번 사안을 갈등으로 보니까 그렇지 이번 문제는 처음부터 범죄행위에 대한 단죄를 어떻게 바로잡느냐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지난 5월 이후 줄곧 강조해 왔던 사안이고, 금감원 징계 수위 이후에 고발하려고 했던 것이지 다른 의도가 없음을 재차 강조했다.

이는 일각에서 제기되는 ‘타깃이 임영록 회장 아니냐’는 시선에 대한 대답으로 풀이된다. 이 행장은 “말도 안되는 것”이라며 “회장과의 갈등도 아니고 또 다른 의혹이 아닌 본질적인 문제의 조직 바로잡기”라며 관련의혹을 일축했다.

학계와 금융계 안팎에서도 단기적으로 ‘조직 추스르기’에 역점을 두는 것도 좋지만 장기적으로는 ‘조직 바로잡기’가 맞다는 견해를 보인다. 항상 외풍에 흔들리고 파벌, 줄서기 등 각종 문제로 점철된 KB전체를 살리는 길이 될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설명이다.

조직 안정을 이유로 서류를 위조하고 허위보고하는 등의 범죄를 옹호하고 덮고 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파행을 거듭하는 KB금융의 경영이 정상화될지에도 주목이 쏠린다.

은행장 사임으로 일단 국민은행은 영업본부 부행장인 박지우 부행장의 대행체제로 유지된다고 하지만 상당기간 혼란을 겪을 것이란 전망이다.

LIG손보 인수를 포함한 여러 영업활동에도 지장이 불가피하다. 
국민은행 한 관계자는 “현재로선 혼란이 불가피하다"며 “이번 사태의 파장이 언제 끝이 날지 도무지 앞이 보이질 않는다"고 토로했다.  

한편 지난달 21일 결정된 제재심의위원회의 결과에 대한 후폭풍도 제기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제재심의위원회 구성원 다수가 제재 대상인 임 회장과 이 행장의 직간접 친분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제재심의위원장인 금융감독원 최종구 수석부원장은 강원도 출신으로 임 회장과 동향이다. 특히 최 수석부원장은 강원도 출신 재경 고위공직자 모임인 ‘강우회’를 통해 강우회 회장인 임 회장과 오랜 인연을 맺어와 이번 결정의 공정성이 의심되는 부분이다.

일각에서는 최 부원장이 제재심의위 결정 이전에 임 회장과 사석에서 만나 경징계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져 구설수에 올랐다. 제재심의위원회 민간위원 중 2명도 이 행장과의 친분이 드러나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skycros@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