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없는 군지휘부, 끝내 묻힐 사건이 됐을 수도…

[일요서울Ⅰ오두환 기자] 대한민국 군이 국민의 불신, 군기 문란 사건 등으로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다. 국민들의 생명을 지키는 군대가 창군 이래 최대 수치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최근 국방부는 성추행 여장교 자살사건, 윤 일병 사망사건, 포로 체험훈련 중 부사관 사망사건 등으로 전 국민의 원성을 사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신현돈 육군 1군사령관(대장)이 군사 대비태세 강화 기간에 근무지를 이탈해 과도한 음주를 한 사실이 적발돼 전격 경질됐다.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시민들은 군사령관의 정신상태가 저 정도인데 일선 부대의 기강은 말할 필요도 없다며 탄식하고 있다. 대한민국 군대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윤 일병 사망사건 피고인들 ‘살인죄’ 적용해 공소장 변경
포로 훈련 도입한 전인범 특전사령관 책임론도 제기돼

지난 8월 윤 일병 사망사건으로 전국이 떠들썩했다. 윤 일병 사망사건은 4월 28사단 의무대에서 후임병을 집단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을 말한다.
윤 일병은 부대로 전입해 온 지난 3월 초부터 사건 발생일인 4월 6일까지 매일 폭행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상이 좋지 않고 대답이 늦는다는 이유로 사망전까지 매일 괴롭힘을 당했다.

선임병들은 폭행을 당해 다리를 절고 있는 윤 일병에게 다리를 절뚝거린다며 다시 폭행했다. 힘들어하는 윤 일병에 링거 수액을 주사한 뒤 체력이 회복되자 다시 폭행을 가하는 등 잔혹하게 윤 일병을 괴롭혔다.
또 허벅지 멍을 지운다며 윤 일병의 성기에 안티푸라민을 발라 성적 수치심을 주기도 했으며 치약 한 통 먹이기, 잠을 재우지 않고 기마자세 서기 등의 가혹행위를 빈번히 자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밖에 드러누운 얼굴에 1.5L 물을 들이붓고 개 흉내를 내게 하며 바닥에 뱉은 가래침까지 핥아먹게 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온 국민은 분노했고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 결과 지난 2일 3군사령부 검찰부는 윤 일병 가해 병사 4명에 대해 살인의 미필적 고의를 인정할 수 있다고 보고 주위적으로 ‘살인죄’, 예비적으로 ‘상해치사죄’를 적용하는 것으로 공소장을 변경했다.
이는 지난 5월 2일 군사법원에 제출한 공소장에 “가해 병사들이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는 등 살인의 고의성은 없었다”는 28사단 검찰부의 최초 판단을 뒤집은 것이다.

3군사 검찰부는 “4월 6일 범행 당일 윤 일병은 극도로 신체가 허약해진 상황에서 많은 이상징후를 보였다는 것을 피고인들이 인지하고 있었지만 지속적으로 잔혹한 구타가 계속됐으며, 대부분의 피고인들은 대학에서 의료 관련 학과 재학 중 입대한 의무병으로 일반인보다 우월한 의료지식을 갖추고 있어 지속적인 폭행과 가혹행위로 사망할 수도 있었다는 것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며 살인죄 적용 배경을 설명했다.

앞서 국방부 검찰단도 지난달 8일 윤 일병 폭행 사망사건에 살인죄를 적용하라는 의견을 3군사 검찰부에 제시한 바 있다.

3군사 검찰부는 이번에 공소장을 변경하면서 가장 많은 폭력을 행사한 이 병장과 하모 병장에게 적용된 ‘단순폭행’ 혐의를 각각 ‘상습폭행’과 ‘흉기 등 폭행’으로 변경했다. 유 하사와 이 병장, 하 병장이 휴가 중 성매수를 한 혐의도 공소장에 추가됐다. 이밖에 이번 사건과 관련된 지휘계통상의 직무유기 혐의와 관련, 대대장 등 5명의 지휘관과 간부를 입건했다.

훈련 중 사망한 부사관
누구 책임일까

지난 2일 밤 10시 30분경에는 충북 증평의 한 특전사부대에서 고강도 특수전 훈련을 받던 하사 2명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전시상황을 가정한 훈련 중 하나인 포로 체험훈련을 받다 호흡곤란 등의 증세를 보여 청주 시내의 모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사고를 당한 부사관들은 1시간반 이상 양팔과 발목을 뒤로 묶인 채 무릎을 꿇고 머리에는 두건을 쓴 상태로 있었다. 특히 숨지기 30분 전부터 “살려달라”고 소리쳤으나, 교관들은 이를 훈련 분위기 조성을 위한 연출이라 판단해 방치한 것으로 전해졌다. 교전 중이 아닌 훈련 중 부사관 둘이 사망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특전사는 “포로 체험 훈련은 포로가 됐을 때 행동요령 훈련의 한 과정으로 미군의 훈련 과정을 벤치마킹했다”고 밝혔다. 독방에서 머리에 두건을 쓰고 손발을 뒤로 결박당한 채 2시간을 버티면 통과하는 방식이다. 유래는 영국군에서 시작됐다. 이후 미국과 호주로 전파됐고 우리나라에도 넘어왔다. 외국에서도 이 훈련을 하다가 사망자가 발생한 적이 있다고 전해졌다.

하지만 문제는 포로 체험훈련 준비가 제대로 안 됐다는 점이다. 교범도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부사관들이 시험대상이 됐다. 포로 체험훈련은 지난해 10원 전인범 특전사령관이 취임한 이후 특전사 훈련을 강화하면서 도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강한 군대를 만들겠다는 의지는 좋지만 준비되지 않은 훈련으로 젊은이 2명이 아까운 생명을 잃고 말았다.

군 수사당국이 사건을 조사하고 있지만 과연 수사가 어디까지 진행될지도 의문이다. 사건 현장에서 희생자들을 감시했던 대항군 역할의 교관들이 제 역할을 못한 책임도 크지만 훈련을 도입한 특전사령관의 책임도 묻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국방부는 아직까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전 사령관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고 있다.

4성 장군의 음주추태
할 말 잃은 시민들

사실 최근 일어난 사건들만으로도 군은 명성에 큰 흠집이 났다. 하지만 우리나라 군의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 쌓여온 병폐가 이제야 드러난 것뿐이었다. 결국 상처는 오래 곪으면 터지고 만다. 그렇게 드러난 사건이 신현돈 대장의 음주추태로 인한 경질사건이다.
1군사령관은 대한민국 제1야전군을 지휘하는 자리다. 1군사령관 계급은 대장으로 4성 계급에 해당한다. 현재 우리나라에 4성 계급을 가진 군인은 단 8명뿐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역 조치된 신 전 대장은 제38대 지휘관으로 임명된 바 있다. 1야전군은 대한민국 육군의 첫 번째 야전군으로 한반도 군사 분계선을 기준으로 남한의 동부 전선을 책임지고 있다. 사령부는 강원도 원주시에 위치한다.

신 전 대장의 음주추태 사건은 6월 19일 발생했다. 이날 모교인 충북 청주고에 방문해 안보강연을 마친 뒤 학교 선후배들하고 술 한잔을 거하게 하고 저녁에 돌아오는 길에 오창휴게소에 들렀다.
이때 이미 만취한 상태였던 신 전 대장은 제보에 의하면 군화 한 쪽은 신고 한 쪽은 못 신을 정도였고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하고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급기야 수행요원들이 화장실을 폐쇄하기에 이르렀고 그 과정에서 화장실에 들어가려던 민간인을 제지하면서 마찰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이 민간인이 수도방위사령부 당직실에 민원을 제기했고 수방사는 1군사령부에 제보 내용을 다시 통보했다.

결국 다음날 신 전 대장은 해당 민간인에게 전화로 사과했으나 이 소문이 조금씩 퍼져나가 언론에까지 알려지게 됐다. 당시 민원을 제기했던 민간인은 청와대에도 연락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 전 대장의 음주추태가 문제가 되는 것은 신분도 신분이지만 그날이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 해외순방 중이던 기간으로 특별경계태세 시기였다는 점이다. 4성 장군이 본인의 위수지역을 이탈해서 대비태세 기간에 음주추태를 벌였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보고 여부’ 번복으로
국방부 은폐 자인

이후 군의 대처는 더욱더 안일했다. 이 정도 상황이면 기무사 등의 자체조사나 인사조치가 진행돼야 했지만 군은 약 3개월 가까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가 언론에 알려지자 뒤늦게 전역조치를 했다. 게다가 징계가 아닌 신 전 대장 본인의 전역 지원서 제출을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사실 이정도 사안이면 경질이 원칙이지만 군은 결국 제 식구를 감싸안았다. 고위 장성의 잘못도 숨기는 판국에 과연 병영폭력의 가해자는 얼마나 엄하게 다스릴지 의문이다.

신 전 대장의 음주추태 사건이 터지고 나서 또 다른 문제도 지적됐다. 사건 내용이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김관진 장관에게까지 보고가 됐느냐 하는 문제다. 왜냐하면 사건과 관련한 내용을 국방부 관계자가 은폐한 정황이 밝혀져 논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2일 신 전 대장 사건을 파악한 시점과 관련 “사건 발생 후 공식적으로 보고받은 것은 없고, 최근에야 인사계통을 통해 사건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국방부 핵심 당국자는 3일 기자실을 찾아 “신 전 사령관이 만취 상태로 오창휴게소에서 발각된 사실을 알게 된 수도방위사령부가 바로 6월 19일 육군본부에 보고했다”며 “당시 권오성 육군총장이 신 전 대장에게 지휘소(공관)로 즉각 복귀하라고 명령한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사건 발생 9일 만인 6월 28일 김관진 당시 국방부 장관(현 국가안보실장)에게도 보고가 됐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6월 30일 취임한 한민구 장관도 보고를 받았고 7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신 전 사령관에게 엄중 경고했다”고 말했다. 상황 발생 직후 육군 수뇌부가 사건에 대해 인지했고, 육군 참모총장이 공식적으로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했다는 얘기다.

전날 설명과는 완전히 다른 내용이다. 군 당국이 신 전 사령관 사건을 사전에 인지하고도 은폐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인정한 셈이다. 28사단 윤모 일병 구타 사망사건 당시에도 축소 은폐 의혹을 받아 홍역을 치렀던 국방부가 지휘부를 감싸기 위해 또다시 똑같은 논란을 자초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새정치민주연합
김관진 책임론 제기

박근혜 정부는 ‘철통 안보태세’를 기본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성추행 여군 장교 자살사건, 22사단 총기난사 사건, 윤일병 구타 사망 사건, 28사단 장병 둘의 자살 사건 등이 일어나면서 안보문제는 둘째치더라도 군인은 물론 지휘부에 기강문란 사태가 만연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만약 이번 신 전 대장의 음주추태 사건도 국회와 언론 기관에 제보가 없었다면 끝내 사건이 은폐됐을 수도 있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4일 신현돈 전 1군 사령관의 음주사건과 특전사 포로체험 훈련 사망 사건 등 군의 잇따른 사건·사고와 관련 “군의 총체적인 문제에 대해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정애 당 대변인은 이날 현안브리핑을 통해 “군의 총체적인 안전불감증과 인권의식의 부재가 만연해 있음이 또 다시 드러났다”며 “사전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죽음으로 내몬 특전사 포로체험으로 부사관 2명이 사망한 것은 그야말로 무능하고 무책임하고 무감각하기까지 한, 군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대변인은 “최근 대장부터 이등병까지, 장성부터 병사에 이르기까지 군의 총체적인 문제에 대한 전면적인 점검과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확인됐다”면서 “안전하지 않은 군대, 이러한 군이 어떻게 대한민국의 안보를 책임질 수 있겠느냐. 잇따른 군 사고와 군의 문제들에 대해 최장수 국방장관을 역임한 김 실장의 책임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김 실장은 국방장관 시절 도대체 무엇을 한 것이냐. 그 긴 세월 동안 노크귀순으로 안보 허점 노출에, 병사 폭행사망에, 장성의 음주추태에, 특전사 포로체험 프로그램까지, 거기에 더해 사이버사령부의 대선개입이라는 점입가경의 국방부를 만든 책임은 도대체 누구에게 있는 것이냐”라고 날을 세웠다.

그는 “군 기강은 해이해져만 가고, 인권의식도 없고, 안전에 대한 책임과 준비도 없는 허점투성이, 문제투성이 군을 이렇게 방치하고, 은폐해왔으면서 어떻게 대한민국의 안보를 총괄 책임지는 청와대 안보실장으로 영전할 수 있었단 말이냐”며 “이런 분에게 대한민국 안보를 책임지게 해도 되는 것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김 실장은 계속해서 드러나는 군의 사고 속에 자신의 오명이 더욱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면서 “군을 위해서,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해서라도 거취를 스스로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freeor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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