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각상태서 수술 집도

마약성 약물을 복용하고 환각 상태에서 환자를 돌본 의사가 붙잡혀 충격을 주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마약조직범죄 수사부(부장 김해수)는 지난 14일 모 산부인과 원장 신모(46)씨를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신씨는 올해 초부터 지난 9월까지 마약성 진통제와 진정제를 빼돌려 상습적으로 투약해왔다. 더불어 신씨는 환각 상태에서 200여 차례 이상 임신중절 수술을 집도하고 환자들을 돌본 것으로 알려졌다. 마약의 늪에 빠진 의사는 필로폰의 약 2배 효과를 내는 진통제를 자신의 어머니에게 수년간 복용토록 한 사실도 검찰에 의해 드러났다. ‘사람 잡는 의사’의 엽기 행각을 밀착 보도한다.


지난 8월 서울중앙지검 수사부는 의외의 첩보를 입수했다.

첩보의 내용은 마약성 의약품을 빼돌려 상습적으로 투약한 사례가 있다는 것. 제법 신빙성 있는 첩보 내용을 근거로 수사망을 좁혀간 검찰은 범행의 실마리를 잡고 드디어 용의자의 실체를 파악했다. 수사 착수 한 달 여 만인 지난 9월 4일, 검찰 수사관들은 서울의 한 산부인과 의원을 급습했다. 용의자로 지목된 인물은 병원장 신모(46)씨. 검찰 수사관들이 들이닥친 당시에도 신씨는 임신 중절 수술을 집도 중이었다.


검거 순간에도 환각상태

검찰 수사관들은 검거 현장에서 곧바로 신씨의 소변을 채취해 성분 분석을 의뢰했다. 결과는 뚜렷한 양성. 소변 검사에서 마약 성분이 검출된 신씨는 마지막 중절 수술을 집도하는 순간에도 약에 취한 상태였다.

검찰에 따르면 신씨는 올해 초부터 9월까지 약 9개월간 디아제팜, 펜디메트라진 등의 진정제를 상습적으로 투약했으며, 환각상태로 총 210여 차례의 임신 중절 수술을 감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검거 현장에서 신씨가 소지하고 있던 마약성 약품을 압수한 검찰 관계자는 “이 정도 양이면 종합병원 수준의 병원에서 쓰고도 남을 양”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어머니에게도 환각제 투약

신씨의 엽기 행각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신씨는 수년간 신경통 등 노환을 앓고 있는 노모에게도 환각제를 건넸다. 신씨가 어머니에게 권한 약물은 진통제의 일종인 날부핀. 이는 보통 산부인과나 외과 등에서 마취제로 쓰이는 약품으로 정확한 진단 없이 투약 할 경우 약물 쇼크 등으로 사망 할 수도 있다. 검찰 관계자는 “날부핀은 같은 양의 필로폰을 투약했을 때의 두 배에 해당하는 환각 작용을 수반하는 강력한 진통제로 정신 착란 등의 부작용을 일으키는 등 필로폰과 동일한 효과가 발생 한다”고 밝혔다.

신씨는 이러한 약물을 지난 수년간 5800여 차례에 걸쳐 어머니에게 투약한 혐의다. 신씨의 어머니는 이 같은 마약성 진통제의 부작용으로 금단증상 치료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씨, 환자 요양비 500여 만원도 가로채

이 같은 신씨의 정신 나간 행각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의 피해가 없었다는 것은 이상할 만큼 다행스럽다. 불구속 기소된 신씨의 산부인과 의원에서는 환자들의 피해 사실이 한 건도 접수된바 없다고 검찰은 전했다.

검찰 관계자는 “사건의 수사 방향이 신씨의 마약류 투약 혐의에 대한 것이라 수사를 확대하지는 않았지만 알려진 바에 따르면 신씨와 관련된 의료 사고는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검찰조사 결과 신씨가 환자의 요양비 명목으로 받은 500여 만원을 가로챈 사실도 드러났다. 신씨는 환자들의 임신 중절 수술을 자연 유산인 것처럼 꾸며 건강보험공단측으로부터 요양비 총 470만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가 추가 적시됐다.

그러나 검찰은 신씨를 검거하고도 속앓이를 하고 있다. 법원이 신씨의 구속영장을 두 차례나 기각한 것. 지난 9월 초 검찰이 신씨를 검거한 직후, 법원은 “신씨의 주거지가 일정하고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두 차례의 영장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처방전 위조, 다른 범죄 가능성?

신씨가 빼돌린 의약품은 진정제인 디아제팜, 펜디메트라진 등의 진정제와 치오펜탈, 날부핀 등이다. 이들은 모두 비만치료제와 마취제, 진통제로 사용되며 향정신성의약품에 속한다. 모 제약업체 관계자는 “이들 약품은 허가된 자격자가 아니면 다룰 수 없고 구입절차에는 반드시 처방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그는 “환자 치료 목적이 아닌 개인 투약 목적으로 약물을 구입한 이상 필요한 처방전을 의사인 신씨가 위조했을 가능성도 있다”며 조심스러운 의견을 밝혔다.

한편 일각에서는 수년간 지속된 신씨의 상습적 ‘환각진료’를 환각 상태로 임한 신씨의 행동을 주변인이 전혀 모르고 있었는가를 놓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더불어 신씨가 구입해 갖고 있던 약물의 양이 상당한 것으로 보아 신씨가 외부로 해당 약품을 불법 거래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무게가 실리고 있다.



#마약사범 두 달간 1553명 검거

지난 8일 경찰청 마약 수사과는 9월1일부터 10월 30일까지 마약류사범 일제 단속을 실시한 결과 모두 1553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작년과 대비해 934명의 검거사범이 증가한 이번 단속에서 향정신성의약품사범은 전체의 84.5% 인 1313명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검거사범을 직업별로 살펴보면 무직이 674명(43.4%), 노동자 72명(4.6%), 유흥업 56명(3.6%), 회사원 50명(3.0%), 농업 37명(2.4%), 운전기사 36명(2.3%), 의료인 26명(1.7%)순이며 성별로는 남자가 전체의 89.7%인 1388명, 여자는 10.3%인 159명이었다.

경찰은 “공, 항만과 인터넷을 이용한 밀거래 사범을 연중 단속하고 엑스터시 등 지역별 주요 마약류 유통 현황을 분석해 앞으
로 집중단속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