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 일가 회사에 올 상반기 7천 억 매출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지난해 대한민국 10대그룹 총수들이 받아간 현금배당 총액은 2445억 원이다. 최저시급 5210원 받는 아르바이트생이 일일 24시간씩 1년 365일 내내 일만 했을 때, 5431년 뒤에나 모을 수 있는 돈이다. 단, 월급을 한 푼이라도 쓰거나 잠을 한 시간이라도 잔다면 시간은 그만큼 늘어난다. 이러한 현실에 혹자는 “기업들은 부익부만을 지향하고 있는 가운데 소득재분배를 외면하고 있다”고 비난을 하기도 한다. [일요서울]은 ‘자기 배만 불린 재벌들’ 이라는 기획연재를 통해 ‘부익부빈익빈’의 진실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이번호에서는 대한유화공업(회장 이순규)을 살펴본다.
 
재산 증식·지배구조 강화 동시에…부의 축적 ‘의심’
자산 총액 5조 원 이하…공정위 내부 거래 규제 벗어나
 
대한유화공업은 막대한 수준의 내부거래를 통해 총수 일가의 자산 증식에 힘을 보태고 있다는 지적을 듣는다. 대상은 케이피아이씨코포레이션(자회사 등 포함·이하 KPIC코포레이션)인데, 해당 회사는 대한유화공업과 한 해 1조 원이 넘는 규모의 매출·매입이 오간다. 
 
실제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살펴보면 대한유화공업은 지난해 KPIC코포레이션과 1조 2772억 원의 매출과 매입을 진행했다. 대한유화공업이 KPIC코포레이션에 유화제품 9143억 원어치를 판매했고, KPIC코포레이션은 대한유화공업에 나프타를 판매해 3629억 원을 받았다. 
 
올해 상반기 내부거래 역시 7281억 원에 육박하는 금액을 올렸다. KPIC코포레이션의 지분을 이순규 대한유화공업 회장과 그의 부인 김미현씨가 100%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부의 축적을 위한 움직임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살 수 있는 대목이다. 
 
또 종합상사업체인 KPIC코포레이션은 대한유화공업의 원재료 매입과 제품 판매를 대행하는 형태로 판매 마진을 가져간다. 이순규 회장의 개인회사로 볼 수 있는 KPIC코포레이션이 대한유화공업의 외부 거래 중간 단계에서 수입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KPIC코포레이션이 대한유화공업의 거래 중간 단계를 담당하는 것은 일종의 통행세로 볼 수 있다”또는 “없어도 되는 중간 회사를 만들었다는 건 사업적 측면이 아닌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주장을 내세우기도 한다. 
 
지난해 대한유화공업이 쓴 운송비용 등은 320억 원 상당이다. 지난해 뿐만 아니라 2012년 355억 원, 2011년 310억 원, 2010년 333억 원의 운송비용을 대한유화공업이 지급한 것으로 공시됐다.
 
하지만 이러한 논란 속에서도 이순규 회장의 KPIC코포레이션은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KPIC코포레이션의 2012년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1조 8983억 원과 122억 원을 기록했다. 
 
이익잉여금은 1000억 원이 넘어섰다. KPIC코포레이션과 지난해 말 합병한 유니펩은 2012년 매출액과 영업이익으로 각각 305억 원, 50억 원을 기록했고 이익잉여금은 1903억 원에 달했다. 역시 이순규 회장의 개인회사다. 
 
대한유화공업의 배당금도  눈에 띈다. 지난해 대한유화공업은 61억 원(배당성향 27%)의 배당을 실시했다. 2011년에는 92억 원(33%) 2010년 123억 원(16%) 2009년 157억 원(13%) 등 해마다 수십억 원에서 수백억 원대의 배당을 지급했다. 
 
두 마리 토끼 잡기 
 
아울러 KPIC코포레이션이 대한유화공업 지분의 30.22%를 보유한 지주사라는 점을 봤을 때, 이와 같은 내부 거래는 이순규 회장의 경영권 강화에도 일조하고 있다는 평가다. KPIC코포레이션이 지주사가 된 것은 기존 지주사였던 유니펩을 지난해 12월 합병하면서다. 
 
즉, 이순규 회장이 KPIC코포레이션를 지배하고 이어 KPIC코포레이션이 대한유화공업을 지배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KPIC코포레이션이 내부거래를 통해 튼실한 재무구조를 갖춘다는 것은 지배구조를 탄탄하게 만드는 것과 동일한 상황이다. 
 
이순규 회장 입장에선 KPIC코포레이션을 비롯한 개인회사들의 덩치가 커지는 동시에 경영권 강화가 함께 이루어진 셈이다. 다만 대한유화공업 측은 이러한 지적들이 사실과는 다르다는 입장을 밝힌다. 
 
대한유화공업 관계자는 “우선 통행세라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종합상사 업체라면 물건을 주고받는 것이 당연한 과정 아니냐”면서 “총수의 지분이 높기 때문에 오해를 받는다는 점은 알지만 내부거래라는 말은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KPIC코포레이션의 싱가포르 자회사 ATMAN에 맡긴 나프타 해외구매업무를 회수해 내부 트레이딩 부서에서 담당한다는 점도 지적에 대한 반박이다. 이는 일감을 일부 반납해 내부 거래에 대한 지적들을 최소화 하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한편 올해 초 대한유화와 같이 100대 그룹 중 공정거래 규제 대상에서 벗어난 중견 그룹들의 편법적 부의 대물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 결과가 나온 바 있다. 규제 기준이 자산총액 5조 원 이상인 터라 총수 일가 계열사 지분율이 높아도 법망을 벗어나 있다는 설명이다. 
 
앞서 공정거래위원회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을 시행했다. 이로써 총수가 있는 자산총액 5조 원 이상 그룹의 경우, 대주주 일가 지분율이 30% 이상(비상장사는 20% 이상)인 계열사 간 내부거래는 규제 감시 대상이 됐다. 
 
이와 관련해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 시이오(CEO)스코어가 지난 2월 자산총액 기준 국내 100대 그룹의 대주주 일가 지분율을 조사한 결과, 공정거래위원회 감시 대상에서 벗어난 49개 그룹 가운데 대주주 지분율이 공정위 기준을 초과하는 계열사 비중이 17%에 달했다. 
 
감시 대상 43개 그룹의 13%보다 높은 수치였다. 이는 곧 자산총액이 적어 일감몰아주기 감시 대상에서 제외된 그룹들이 총수 일가의 계열사 지분율만 따지면 감시 대상에 해당하는 계열사 수가 더 많다는 설명이다.
 
상호출자제한 51개 대기업집단에서 제외된 자산규모 52~100위권 그룹을 대상으로 동일 기준을 적용해 규제비중을 조사한 결과, 대한유화(회장 이순규)와 경방(회장 김담)이 50%로 가장 높았다.
 
시이오스코어는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단순히 자산총액 5조 원 잣대로 못 박는 것은 형평성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면서 “재벌의 탈법적 자산 증식을 막는다는 당초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hwihol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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