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명 ‘긴노 유리(황금백합)’ 일본군이 숨겨둔 보물찾는 보물사냥꾼 이야기

필리핀 군 역사에서 발췌한, 포트 보나파시오에 관한 자료들. 여기에는 마닐라 지하 비밀 터널 시스템 지도가 포함되어 있다. 처음에는 스페인인들이 이 시스템을 건설하기 시작하여 20세기 초에는 미군들이 그것을 확장하고, 그 후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는 일본군이 강화 콘크리트 벽체를 대어 35마일로 크게 확장했다.

<지난 이야기>
미군은 보물을 찾아내기 위해 야마시타 장군의 운전사였던 고지마 카시이 소령을 고문했다. 고지마 소령은 ‘샌티(Santy)’라 불리는 미군 장교에게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그는 고지마 소령으로부터 야마시타를 태우고 돌아다니 모든 장소, 곧 금괴와 보물이 묻혀있는 장소를 추궁했다. 샌티의 고문을 지시한 인물은 에드워드 랜즈데일 대위다.
10월 초 고지마는 결국 모든 사실을 털어 놓았다. 그는 샌티와 랜즈데일을 마닐라 북구의 산악지대에 있던 10여 곳의 골든 릴리 보물창고로 인도했다. 그 중 두 곳은 쉽게 개봉됐는데, 그 안에 있던 것을 보고는 모두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것이 야마시타 골드라는 전설의 시작이었다. 이를 통해 일본이 전쟁기간 중 아시아 전역에서 수십억 달러의 보물을 약탈했다는 사실을 미국은 뒤늦게 확인 했다. 필리핀에서 발견된 보물은 일본이 약탈한 뒤 미처 가져가지 못하고 남은 일부에 불과했다. 일본은 전쟁으로 패망한 게 아니라 더 큰 부를 축적했던 것이다.
트루먼은 각료들과 협의 후, 발굴 작업을 진행시키되 그것을 국가 기밀로 할 것을 결정했다. 미 행정부는 이 보물을 공산주의와 싸우기 위한 정치 활동자금으로 사용했다. 또 이 검은 황금은 미국이 동맹국의 국교를 강화하거나 정치 지도자들을 매수하는데 쓰였다. 심지어 제 3국의 선거를 조작하는 작업에도 이 검은 황금이 동원됐다.
검은 황금의 존재를 숨기고 탐닉하기 위해 미 정부는 일본과 추악한 거래를 했다. 미 정부는 일본이 아무런 약탈도 하지 않았으며 완전히 파산했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엄청난 비밀을 은폐하기 위한 거대한 왜곡이 시작됐다.


황금백합작전으로 부를 챙긴 일본과 미국은 이를 비밀에 부쳐야 했다. 때문에 양국은 철저하게 자국민을 속였다. 1951년에 체결된 일본과의 평화 조약은 이 사기에 의해 왜곡되었으며, 수천 명의 전쟁 포로와 민간인들(일본의 기업을 위해 강조 노역을 했던)은 자신들이 치른 고통에 대한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

존 포스터 덜레스는 전쟁배상금 요구로부터 일본을 방어하기 위해 세 명의 일본인을 사적으로 만나 비밀리에 조약안을 구체화했다. 그 중 한 사람이 후에 일본 수상을 역임하고 재무대신을 여러 차례 맡았던 미야자와 기이치이다. 조약 제 14조에는 다음과 같이 써져 있다.

“일본은 전쟁 동안 끼친 손해와 고통에 대해 연합국들에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이 인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서는 일본의 자원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도 인정된다.”

검은 자금과 관련, 믿을만한 정보에 따르면, 닉슨 부통령은 1960년 일본 자민당 지도자들에게 그 자금들 가운데 최대 규모의 하나인 ‘M-펀드’를 제공했다. 그 대가로 닉슨은 미국 대통령 선거 캠페인에 사용할 엄청난 양의 리베이트를 약속받았다. 이 펀드는 현재 일본 자민당 킹메이커들의 통제 하에 있다.

그렇다면 이 막대한 양의 보물들은 다 어디서 온 것일까. 지금까지 아시아에 대한 일본의 약탈은 술 취한 군인들이 생각 없이 저지른 도둑질과 폭력행위처럼 무시되어왔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정보다. 일본은 갱단들에게 금과의 교환으로 마약을 공급하면서 중국을 마약으로 뒤덮었다. 이 과정에서 모든 비밀 장소의 보물들이 드러났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장군, 부족 원로, 은행가, 사업가 등을 포함한 부유한 사람들을 협박하여 보물을 강탈했다.


보물의 원천을 찾아라

일본으로 보내진 최고급 물품 중에는 예술 작품과 역사적 공예품도 포함돼 있었다. 오늘날까지 이 세습 재산 중 극히 일부만이 강탈당한 나라와 개인들에게 반환되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최근 필리핀의 지하 비밀 장소에서 순금 불상을 포함한 주요 공예품들이 발견됐다. 그러나 아직도 대부분의 예술품과 공예품은 일본의 개인금고나 도쿄의 황실 진열실에 있다. 공식적으로는 황가, 자이바츠, 야쿠자, 관료 등 일본의 전시 엘리트들은 군벌 광신도들의 희생양이었으며, 전쟁이 끝날 당시에는 거의 파산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히로히토 천황을 비롯한 일본의 많은 엘리트들은 전쟁이 끝나면서 그 전보다 훨씬 더 부자가 되었으며, 일부는 항복하기 바로 전에 수십억 원의 재산을 모았다.

또 일본은 전쟁의 패전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았으며, 전쟁이 끝날 즈음에는 먹고 살기도 힘들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파괴되거나 심각한 피해를 본 공장과 주택은 놀라울 정도로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으며, 인프라도 거의 손상되지 않았다.


미국의 추악한 이면

워싱턴은 일본을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보루로 만들 긴급한 필요성에 사로잡혀 전쟁 지도자와 황가, 금융 엘리트들이 아시아의 12개국에 저지른 파괴와 궁핍화의 모든 책임을 면제해 주었다. 단지 전시 지도자들만이 속죄양으로 처형되었다. 전후 점령이 끝날 즈음에는 일본의 모든 전범들이 석방되었다. 이들 중에는 1930년대와 1940년대에 동아시아 전역에서 세계최대의 마약거래시스템을 운영해온 대부도 있었다.

워싱턴은 일본 정부가 전쟁이 시작했던 바로 그 사람들의 손아귀에 다시 들어가도록 만들었다. 미국이 점령초부터 맥아더 장군, 트루먼 대통령, 존 포스터 덜레스 그리고 소수 인사들이 전쟁 약탈과 전후에도 유지된 일본 엘리트들의 엄청난 부에 관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점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1950년 맥아더의 본부에서 작성된 공식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놀라운 점이 드러난다.

“점령의 중대한 과제 중 하나는 엄청난 양의 금, 은, 귀금속, 외국 우표, 조각판, 각종 화폐 를 수집하고 보호하는 일이었다. 이 다량의 부를 모으고 미국의 군사적 보호 아래 둔 것은 일본 관리들이었지만, 신고되지 않은 이 보물들의 은닉처가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다.”

맥아더와 참모들은 20억달러의 금괴가 도쿄만에 가라앉았다가 나중에 발굴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를 침묵했다.

[윤지환 기자] jjh@dailypot.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