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서 ‘막걸리 의문사’ 미스터리 추적

막걸리 독극물사건이 또 다시 발생했다. 지난 5월 21일 수원에서 중년 남성 2명이 막걸리를 나눠 마신 뒤 숨졌다. 이에 지난 5월 24일 수원 남부경찰서는 가족 등 주변 인물을 상대로 조사에 나섰지만 아직 정확한 사고경위를 찾지 못해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다. 경찰은 숨진 이들이 약물중독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는 병원의 1차 진단 결과에 따라 시신 부검과 막걸리 용기에 대한 성분 분석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했다. 그러나 막걸리 용기에 독극물 주입 흔적이 없고, 막걸리 뚜껑 바코드 조사 결과 유통기한이 한 달이나 지난 점, 평소 숨진 이들의 사이가 좋았다는 주변 진술에 따라 원한관계나 동반자살의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동기도, 이유도 없는 두 남자의 이상한 죽음, 사건에 얽힌 미스터리를 추적했다.

숨진 조모(50)씨와 이모(41)씨를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조씨의 아내 임모씨였다.


사라진 막걸리 속에 어떤 약물이

그는 경찰 조사에서 “남편과 이씨가 막걸리를 마신 뒤 복통을 일으켰다”고 진술했다. 임씨가 119에 신고한 시각은 지난 5월 21일 오전 11시 39분.

사건 당시 현장에 출동한 119 관계자는 “구조 당시 두 사람 모두 심각한 호흡곤란을 보였으며 토한 흔적이 있었고, 병원에 이송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망했다”고 전했다.

병원의 1차 진단 결과 숨진 두 사람의 사인은 메트헤모글로빈혈증이었다.

메트헤모글로빈혈증은 질산염 과다섭취나 유전적인 장애 등으로 혈색소의 철분이 산화되어 혈색소가 갈색화 돼 정상적으로 산소 결합이 이뤄지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특히 두 사람 모두 반 컵도 되지 않는 소량의 막걸리 마셨다는 정황상 이들이 마신 막걸리에 치명적인 독극물이 들어있었다는 셈이다.

하지만 임씨가 남은 막걸리를 전부 개수대에 버려 두 사람의 부검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막걸리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다.

사건을 담당한 경찰은 “부검 결과 전엔 정확한 사고경위를 할 수 없는 상태”라며 “막걸리 제조업체도 조사해봤으나 제조나 유통상 문제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한, 경찰 조사 결과 숨진 두 사람이 마신 막걸리는 이미 유통기한이 한 달이 지나 있었다. 경찰은 “유통기한이 막걸리 용기에 표기돼 있었으며, 주사기 바늘은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남은 의문점은 최초로 누가 막걸리를 개봉했는지, 이씨가 막걸리를 가져오기 전에 누군가 몰래 독극물을 넣었는지 등이다. 하지만 이 점에 관해서는 아직 이렇다 할 증거가 발견되지 못해 사건은 여전이 미궁 속에 빠져있다.


“원한살인, 자살 말도 안 된다”

숨진 조씨와 이씨는 의형제로 불릴 만큼 사이가 좋았다는 것이 주변 지인들의 전언이다. 특히 택시기사였던 조씨는 평소 성실하고, 마을 일에도 솔선수범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월 25일 수원 연화장에서 만난 조씨의 누나 A씨(52)는 “가족에게 헌신적이고, 착하기만 했던 동생이었다”며 “원한을 살만한 아이가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 막걸리에 무엇이 들어갔는지, 누가 그런 짓을 했는지 경찰이 철저히 조사해 주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조씨의 화장은 이날 오후 1시 20분께 이뤄졌다. 망자의 영혼을 위로하는 30여 명의 사람들의 곡소리가 이어졌다. 8년간 조씨와 같은 동네에서 살았다는 B씨(56·여)는 “며칠째 하늘도 울더니 이런 일이 터졌다”며 “숨진 전날도 둘이(조씨와 이씨) 빵집에서 사이좋게 식빵을 사서 나오는 걸 봤는데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고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B씨의 말에 따르면 숨진 이씨는 왜소증을 앓고 있었으며 기초수급자였다. 20년 간 가족도, 직업도 없이 혼자 살던 이씨를 조씨는 친동생만큼이나 아꼈다. 항상 같이 밥도 먹고, 습관처럼 반주도 즐기는 사이였다고 B씨는 두 사람을 회상했다.

B씨는 “평소 둘이 기분 좋게 소주나 막걸리 몇 잔씩 즐기는 정도였다”며 “누군가에게 빚을 진적도 없고, 늘 밝기만 했던 사람들인데 ‘타살이다 자살이다’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경찰 역시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진술에 따라 원한관계 살인과 자살일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부검 결과에 따라 막걸리에 들어있던 정확한 약물 확인 및 구입 경로를 추적할 예정이다.


잇단 막걸리 독극물 사고 ‘왜’

최근 막걸리 독극물 관련 사고가 잇따라 발생해 그 원인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해 7월 전남 순천에 이어 지난 3월에도 진도의 한 주점에서도 독극물 막걸리 사고가 터져 소비자들의 불안이 높아지고 있다.

한 누리꾼은 “예전 왕들처럼 막걸리 먹기 전에 은 사발 담아 독극물 테스트라도 해야 하나”라며 막걸리 독극물 사건에 불안감을 나타냈다.

값 싸고 여럿이 즐겨먹기 좋은 막걸리는 용기가 플라스틱 소재여서 주사기로 독극물 주입이 가능할 뿐 아니라, 특유의 냄새와 불투명한 색감 때문에 외부 식별이 쉽지 않아 범죄에 악용되기 쉽다. 이와 유사하게 80년대 후반에는 야쿠르트 독극물 사고가 빈번히 일어났다. 높아진 막걸리의 인기만큼이나 범죄에 악용될 위해 요소도 높아진 셈이다.

이에 이번 사건을 비롯해 계속해서 터지는 막걸리 의문사를 방지하기 위해 해당 제조업체 및 관리 및 소비자들의 주의가 요구된다.

[김수정 기자] hohokim@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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