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이 대중문화계 또 다른 ‘실세’로 떠오르고 있다. 팬덤은 특정한 인물이나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문화현상)을 지칭하는 것으로 흔히 팬클럽과 통용된다. 가수와 배우를 비롯해 TV프로그램이나 영화 등 까지가 그 대상에 오른다. 기본적으로는 팬들의 모임이라고 볼 수 있지만 ‘거대 팬덤’은 단순히 좋아서 함께 하는 집단과는 다르다. 선망하면서 일방적으로 정보를 받는 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인 의견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인터넷에 힘입어 또는 오프라인에 모여 자신의 스타를 옹호하거나 스타에 반하는 대상을 공격한다. 또는 스타를 위해 독자적인 움직임을 보이거나 스타의 행보를 파악해 제재를 가하기도 한다. 거대 팬덤으로 인해 기획사 내지는 스타가 양분했던 권력이 3강 구도로 바뀐 것이다. 대중들에게 비춰진 팬덤의 모습들을 살펴봤다.

30~40대들도 팬덤 문화에 한층 다가섰고 다양한 장르에서 팬덤 활동을 공유하지만 거대 팬덤의 주축은 여전히 10~20대다. 네이버가 2010년 조사한 인기검색어에서도 동방신기, 빅뱅, 소녀시대는 각각 3~5위를 차지했다. 이들 그룹의 팬클럽 회원 수는 빅뱅의 VIP가 40만 명, 동방신기의 카시오페아가 80만(해체 전)명, 소녀시대의 소원이 25만 명이나 된다.

전국에 분포된 막대한 인원을 효과적으로 통합하기 위해 현재의 팬덤은 위계질서가 뚜렷한 조직으로 변모하고 있다. 뚜렷한 위계질서는 팬덤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도 하지만 몇몇 문제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회사 임원 안 부러운 기업형 조직

아이돌 팬덤은 지역마다 회장과 부회장을 두고서 운영된다. 서울과 경기 등 큰 지역의 경우는 보통 두 명의 부회장을, 그 밖의 지역은 한명을 뽑는다. 서열은 대개 전국 회장 대표가 1위, 서울지부 회장이 2위며 다른 지역 임원들의 순위는 팬덤에 가입한 기간 등에 따라 매겨진다. 팬덤의 안건을 논의하기 위해 각 지역 회장들이 모여 회의를 벌이고, 또한 이들을 총괄하는 역할을 전국 회장 대표가 맡는다. 상하관계가 분명한 전국구 조직인 것이다.

회장 선거는 보통 1년에 한번 씩 치러진다. 아이돌이 정규 앨범을 낼 때마다 새로 선출하기도 한다. 회장은 투표에 의해 선출되지만 누구나 지원할 수는 없다. 경력이 많은 기존 회장들이 재출마해서 당선되는 일도 많다. 꾸준히 자기 사람을 만들고 관리해가면서 장기 집권을 노리는 것이다. 공개방송, 공연 등 공식 행사에 참여해 얼굴을 알리는 것도 회장이 되기위한 중요한 요소다. 공식 팬 카페에 주목받는 글을 자주 올리거나, 자기만의 콘텐츠로 채운 개인 카페나 홈페이지를 운영하면 영향력이 높아진다. 그렇게 얼굴과 이름을 알리고 팬덤 내 추종세력을 키우며 회장 자리를 노린다.

하지만 회장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이들은 회원들에게 얼굴과 이름이 많이 알려져 있는 팬덤 회원이란 전제조건이 붙는다. 그래서 대개 아이돌이 데뷔하기 전 연습생 시절부터 꾸준히 팬클럽 활동을 해온 이들이 회장 또는 부회장 자리를 차지한다.

회장이 되면 음반 구입 선물 마련 등으로 개인적 비용이 많이 들기도 하지만 선망하는 아이돌을 더 가까이 보게 되는 혜택이 있다. 팬덤 회장은 타 회원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다.

이밖에 회장단은 기본적으로 기획사에게 교통비와 식비 등 진행비를 지급받는다. 지역 회장은 전체 회의 때 서울에 올라오는 교통비를 지급받는다. 매니저와의 관계 유지도 필수다. 아이돌의 주간 스케줄 등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아이돌이 가는 장소에 다른 사람보다 먼저가거나 미리 도착해 아이돌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콘서트가 열릴 때면 대기실에 들어갈 수도 있게 된다. 팬들이 마련한 선물을 전달하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사진도 찍는다. 아이돌이 먼저 아는 척을 하며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제공하는 혜택만큼 기획사가 거대 팬덤에게 기대하는 점도 많다. 실질적인 소득뿐만 아니라 간접적인 이미지 광고까지 해주길 바라는 것이다.


아이돌, 팬덤 밟고 성장

기획사 직원들은 회장, 부회장들과 따로 관계를 유지하면서 아이돌 활동을 위한 세부 사항을 의논한다. 팬덤 관리 매니저들은 회장단들과 함께 팬 미팅 일정을 짜거나 응원방법, 응원도구를 협의한다. 그리고 의견을 수렴해 행보와 콘셉트를 정하는데 참고한다. 기획사 내에는 회장단을 관리하는 부서까지 있다.

그리고 팬덤이 주도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 있다. 아이돌의 음반과 곡을 차트 1위에 올려놓는 일이다. 아이돌의 음반 활동이 한창일 때는 팬덤 역시 분주해진다. 앨범 홍보와 판매를 위해서다. 한 사람당 앨범을 5~6장씩 사서 선물로 돌리는 고전적인 방법부터 시작해 다양한 방법이 동원된다. 일정 금액을 모금한 뒤 그 액수만큼 음반을 사기도 한다. 그리고 기획사에 기증하는 것이다. 홍보를 위한 음반을 한 장이라도 더 돌리라는 의미다. 실제 이런 방법은 일부 스타의 음반 판매량을 최상위권으로 올리고 있다. ‘올킬 차트현상’은 팬덤으로부터 나오고 있는 것이다.

홍보 활동도 이에 못지 않다. 연예 기자보다도 열성적으로 언론사 등을 돌면서 직접 음식물과 선물을 배달 하며, 이메일과 전단지로 보도자료를 배포하기도 한다. 인기 아이돌의 팬덤일수록 기획사 못지않은 마케팅 업무 처리 능력을 자랑한다.

오랜 기간 활동하다 보면 회장단들은 기획사 직원이 될 수도 있다. 연예매니지먼트과나 예술경영학과에 입학해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공부한 뒤, 기획사에 취직하는 것이다. 이때 팬덤 회장이었다는 점은 스펙으로 작용된다.

팬클럽 활동을 거쳐 현재 기획사에 몸담고 있는 정모씨는 “임원직 애들을 눈여겨본다. 지금 있는 아이돌 팬덤 매니저 90% 이상은 팬클럽 출신인 것 같다”고 말했다. 가르쳐서 중간 다리 역할을 할 수 있겠다 싶으면 입사 제안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팬덤 활동이 매번 일사분란하게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만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회장단과 회장단, 또는 회장단과 회원들 사이에서의 갈등은 항상 도사리고 있다.

팬덤 내 직급과 연차에 따라 차별되는 대우가 갈등의 대표적 사례다.

평회원으로 시작해 주로 팬 페이지 작업가로 활동했던 윤모씨는 “회원들과의 사소한 다툼 뿐만 아니라 아이돌 행보에 대한 이견이 달라 회장단끼리 싸우기도 한다”고 말했다. 윤씨는 “회장단이 가진 특권을 시기 질투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고 덧붙였다. 아이돌이 좋아 함께 활동하는 데 누릴 수 있는 특권이 각각 다르다는 것이다.

윤씨는 “공식 팬 카페가 아닌 개인 팬 카페의 경우, 회장 이름을 검색창에 쳐보면 욕이 몇 페이지씩 나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팬덤의 가장 큰 수혜자이자 피해자는 아이돌

팬덤이 오히려 아이돌과 기획사에게 피해를 주는 일도 많다. 무조건적인 지원과 언론을 통한 이슈 생성 이면에 부정적인 면도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에는 티아라 팬덤 회장이 활동비 1000만 원을 가지고 잠적한 사건까지 있었고, 일부 팬덤 회장은 회원들로부터 돈을 받고 스타의 사생활 정보를 제공했다.

이 같은 문제는 아이돌에 대한 어긋난 사랑 때문에 빚어진다. 거대 팬덤과 인터넷의 익명성 안에서 아이돌 ‘매니저’를 자처하면서 악플, 테러, 루머양산, 신상공개 등을 자행하는 것이다.

최근에도 팬덤으로 인해 피해를 받은 사건이 이어졌다. 지난 5일 그룹 JYJ의 팬 김모씨가 JYJ 팬덤 소속이었던 이모씨에게 피해를 받은 것이다. 이씨는 김씨의 신상정보를 퍼뜨리는 등의 악플로 다른 회원들을 선동했다. 이씨가 이같은 일을 저지른 이유는 팬클럽 회원도 아닌 김씨가 JYJ 인터넷방송국을 운영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지난해 JYJ의 믹키유천이 나온 KBS 드라마 ‘성균관스캔들’을 본 후 JYJ의 팬이 됐다. 이후 김씨는 지난 3월 자비 3000만 원을 들여 팬 카페 성격의 인터넷 방송국을 개국했다. 이씨의 협박 때문에 김씨는 개국 4일 만에 방송국 문을 닫아야 했다. 이씨는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타 아이돌도 예외는 아니다. 토크쇼와 연예정보 프로그램 등에서 연예인들에게 주어지는 주된 질문 중 하나는 팬덤 때문에 빚어진 피해다. 방송을 통해서 과거에 겪었던 고충과 스트레스를 털어 놓는 것이다. 팬덤의 감시와 눈치 때문에 특정 아이돌을 피해 다니거나 잠적해 버린 적이 있는 연예인들도 많았다. 또는 소포, 전화, 인터넷을 통한 테러나 악의적인 루머 때문에 고생한 연예인도 있었다.

이 같은 팬덤 현상의 부정적 이미지는 팬덤 문화를 이끈 거대 팬덤이 상당수 기여했고 또다른 사회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이창환 기자] hojj@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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