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액의 보험금 노리고 노숙인 살해 후 본인 사망 위장
법원 “보험가입, 살인방법 검색 정황상 보험금 노린 살인”


[최은서 기자] = 사인도 불분명하고 화장해 시신도 없는 ‘시신 없는 살인사건’에 대해 부산지법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시신이 없는 경우 살인 혐의 적용이 가능한지 여부가 이번 재판의 쟁점이었다. 법원은 살인혐의의 직접적 증거인 시신이 없이도 정황증거로 살인 혐의를 인정했다. 향후 유사 소송에서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중형을 선고받은 피고인이 이번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힘에 따라 ‘시신 없는 살인’을 둘러싼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부산지방법원 형사합의 6부(부장판사 김동윤)는 지난달 31일 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손모(41·여)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또 손씨의 사기행각을 도운 어머니 박모(74)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각종 사기로 얼룩진 삶

손씨의 굴곡진 삶은 1997년 11월 대학동창과 결혼식을 올리고 동거를 시작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손씨는 남편 몰래 남편을 계약자 또는 연대보증인으로 해 차량할부구입계약을 체결했다. 손씨는 피해자들에게 차를 팔겠다고 속여 매매대금을 받은 뒤 계약을 해약해버리는 일명 ‘차치기’수법 으로 수천만 원을 가로챘다. 손씨는 결국 사기죄로 고소당해 1999년 3월 구속됐고 같은 해 10월 부산지법에서 징역 8월을 선고받았다. 손씨는 이 일로 결혼생활은 파국을 맞았고, 사실혼 관계 해소에 따른 위자료 청구소송을 당했다.

손씨는 이때부터 딸과 어머니를 홀로 부양하는 가장이 됐다. 손씨가 학원 강사로 일하며 어렵게 생계를 이어오던 중 딸이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을 앓게 됐다. 이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되고 의료보호대상자로 지정받게 되는 등 생활은 급속도로 궁핍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머니 명의로 운영하던 어학원을 영업 부진으로 7개월 만에 처분하고, 야심차게 시작한 커피숍도 영업 부진으로 폐업하게 됐다. 재산이나 일정한 수입이 없는 상태에서 빚은 1억600만 원에 이르렀고, 채무를 변제하지 못해 집 마저도 지난해 3월 경매로 넘어가 버렸다.

손씨는 2003년경부터 13살 연하인 김모(28)씨와 사귀게 됐다. 손씨는 김씨와 김씨의 부모에게 환심을 사기위해 “아버지로부터 20억 원 상당의 유산을 상속 받았으니 결혼해 함께 해외로 나가 살자”라고 말하는 등 허위로 재력을 과시했다. 김씨와의 만남을 위해 많은 돈을 쓰면서 경제적 위기에 처했다. 지난해 1월 손씨는 김씨가 자신의 결혼경력을 알아채고 결별을 통보하자, 과도한 집착을 보이며 관계회복을 위해 거금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르게 됐다.

결국 손씨는 보험사 등 5개 기관을 속여 총 2억3000여만 원을 보험금과 창업자금명목으로 편취했지만 곧 채무변제와 생활비, 유흥비 등으로 모두 탕진하고 말았다.

노숙자 시신 이용해 사망조작

경제적 위기에 처한 손씨는 완전범죄를 계획하기 시작했다. 손씨는 사회적 인간관계가 단절돼 주변 사람들이 찾지 않는 여성 노숙자를 살해해 마치 자신이 사망한 것처럼 위장, 보험금을 수령하려 마음먹었다. 손씨는 이를 통해 신분을 세탁하고 연인인 김씨와의 관계회복을 꿈꿨다.

손씨는 지난해 3월 자신을 피보험자로 하고 어머니를 보험수익자로 해 거액의 보험을 들었다. 무려 7개 보험사 생명보험을 가입해 사망보험금이 33억5000만 원에 달했다.

대구 여성노숙자쉼터 인터넷 카페에 가입한 손씨는 여성노숙자쉼터 운영자에게 “부모도 없고 찾는 사람도 없는 사람으로 소개시켜달라”고 부탁하는 등 범행대상 물색에 나섰다. 이와 함께 손씨는 지난해 4월부터 6월까지 인터넷을 통해 살해방법과 여성노숙자를 찾기 위해 각종 검색어를 입력해 검색하는 한편, 뉴스기사 등을 통해 살해방법 등을 연구했다. 여성노숙자쉼터에서 김모(26·여)씨를 만난 손씨는 김씨가 연락하는 가족이나 지인이 없다는 점을 확인하고 범행대상으로 삼았다. 손씨는 지난해 6월 16일 “내가 운영하는 어린이집 보모로 근무하면 월급으로 130만 원을 주고 가까운 대학에 공부를 시켜 보육사자격증까지 취득하게 해주겠다”는 감언이설을 늘어놓아 김씨를 자신의 승용차에 태워 부산으로 데리고 왔다. 재판부는 손씨가 다음날 새벽에 김씨를 살해한 후 시신을 본인이라 속인 후 6월 18일 화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손씨는 화장한 직후 유골을 바다에 뿌렸다. 때문에 김씨의 정확한 사망 원인은 미궁에 빠져있다.

또 지난해 7월 8일 어머니에게 자신이 사망한 것처럼 기재된 사체검안서를 담당공무원에게 제출하라고 건네줘 허위 사망신고를 하게 했다. 이후 손씨는 보험사를 직접 방문해 사망보험금 2억5000만 원을 청구했으나, 손씨가 사망하지 않은 사실을 눈치 챈 보험사의 신고로 덜미가 잡혔다.

손씨는 사기와 위조사문서행사 등 모든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살인혐의는 완강히 부인해왔었다. 손씨는 사건 당일 김씨가 갑자기 가슴이 아프다고 해 곧바로 응급실로 옮겼으나 사망했으며 김씨가 자연사 또는 자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사건은 시신은 화장됐고, 목격자도 없어 직접증거가 없었다.

“정황상 혐의 인정된다”

하지만 재판부는 “손씨의 진술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며 중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씨가 자연사했거나 자살하였을 가능성이 거의 없고, 손씨가 김씨를 살해할 동기가 있었다고 충분히 추정된다”며 “보험가입경위나 인터넷 검색 경과, 응급실에서 손씨가 김씨인 양 행세를 하고, 김씨 시신을 화장한 후 보험금을 청구한 사실 등에 미뤄 혐의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는 법원이 살해에 대한 직접적 증거 없어도 간접적인 정황 증거만으로 혐의를 인정해야 한다는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인 셈이다.

재판부는 이어 “사회적 약자인 여성노숙자를 살해해 보험금을 가로채려 한 것은 저급하고 비열한 범행으로, 사전에 고액의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보험을 집중적으로 가입한 다음 살해준비를 해 계획적으로 저지른 범행으로서 그 죄질이 극히 불량하다”며 “손씨가 납득할 수 없는 변명으로 일관하며 뉘우치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고, 김씨의 시신을 화장한 후 보험금 지급을 청구하는 등 자신의 범행을 관찰시키려는 인면수심의 행태를 보여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하는 형을 선고함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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