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폭탄 테러’안전지대 아니다

지난달 22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일어난 정부청사 폭탄테러로 17명이 숨진 것으로 확인된 가운데 경찰들이 부상자를 옮기고 있다.

화학물질 관리 시스템 관리 허술 지적하는 목소리 높아
사제폭탄 테러 이후 폭발물 오인 신고 잇따르는 등 후유증


최은서 기자 = 평화와 복지의 상징인 노르웨이에서 일어난 폭탄테러와 총기 난사로 전세계가 충격에 휩싸였다. 노르웨이 오슬로 도심과 우토야 섬은 테러범 브레이빅의 테러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이는 스페인 마드리드 열차 테러 이후 유럽에서 발생한 사상 최악의 참사다.

노르웨이 테러 여진이 가시지 않은 가운데 국내에서도 폭탄 테러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올 들어 사제폭탄 등으로 인한 사건사고가 연이어 발생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인터넷 사이트 검색 등을 통해 ‘사제폭탄 제조법’을 쉽게 알 수 있어 화학물질 관리 시스템 관리 허술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경찰도 최근 인터넷 상의 사제 폭발물·독극물 매매 행위에 대해 내사를 진행 중이다. 경찰은 또 내년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G50 핵안보정상회의를 앞두고 폭탄 테러 초비상 경계태세다. 폭탄 테러 위험에 노출돼 있는 현주소를 되짚어 봤다.

‘부산 아파트 폭발 자살사건’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서울역 연쇄 사제폭탄 폭발 사건’ ‘국회 정문 앞 사제 폭발물 소동’ 등 폭탄으로 인한 폭발 위험이 커지면서 시민들의 공포심이 고조되고 있다.

헤어짐에 격분해 ‘자폭’

지난 4월 3일 부산 서구 토성동의 한 아파트 10층 복도에서 송모(51)씨가 자신의 몸에 폭탄을 설치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사건은 3년 간 동거생활을 해왔던 내연녀 문모(36)씨가 더 이상 만나주지 않자 격분한 송씨가 배에 두른 폭발물을 터트리면서 발생했다.

송씨는 현장에서 사망하고, 신고를 받고 출동한 서부경찰서 소속 강모(42)경사와 표모(39)경위 등 2명이 다쳤다. 이른 새벽 발생한 폭발 굉음에 놀란 주민 100여명이 아파트 밖으로 대피하는 소동도 일어났다.

폭발이 발생한 10층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폭발로 숨진 송씨의 시신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이 심했다. 10층 복도 곳곳에는 폭발 여파로 찢긴 송씨의 신체 잔해가 나뒹굴고 송씨의 피로 흥건하게 얼룩졌다. 현관문 앞바닥은 움푹 파이거나 내려 앉았고, 10층 천장이 큰 구멍이 뚫린 채 일부 무너졌다. 충격의 여파로 9층 천장 일부가 내려앉고, 베란다 쪽 통유리도 박살났다.

부산 서부경찰서는 이 폭발 사고와 관련해 “건설용 다이너마이트나 사제폭탄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사제폭탄 가능성도 제기됐으나 폭발물은 산업용 에멀전 폭약으로 잠정결론 났다.

지난 5월에는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서울역과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사제폭탄이 잇따라 터져 시민들이 불안에 휩싸였다.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폭발음과 연기 때문에 시민들이 대피하는 등 일대에 소란이 일었다.

한탕 노린 사제폭탄 테러

김모(43)씨 등 3명이 주가가 떨어지면 이득을 보는 풋옵션에 투자한 뒤 주가폭락을 노리고 서울역과 강남터미널 물품보관함에 사제폭탄을 설치해 터트린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3억 원을 빌려 주식과 옵션에 투자했으나 손실만 보고 빚 독촉에 시달리자, 사제폭탄을 터트려 주식하락을 꾀해 시세차익을 챙기려 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 조사에서 김씨는 “공공시설에서 연쇄 폭발사건이 발생하면 사회적 불안감이 조성돼 주가가 폭락할 것이라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폭발이 일어난 당일 실제로 주가는 44포인트 가까이 떨어지기도 했다.

이들은 인터넷에서 사제폭탄을 만드는 방법을 익힌 뒤 폭죽 8통과 타이머, 휴대용 부탄가스, 배터리 등으로 폭탄 2개를 만들었다. 이들은 이 사제폭탄을 서울역과 강남고속터미널 물품보관함에 설치하고 폭발시켰지만, 폭발음과 연기만 발생했을 뿐 큰 위력은 없었다.

하지만 이 사제폭탄이 제대로 폭발했다면 폭발 위력은 상당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부산지방경찰청은 같은 달 대테러팀과 특공대 요원 등 100명을 상대로 사제폭발물 위력실험을 했다. 이 실험에 따르면 부탄가스 사제폭탄의 경우 기폭장치 스위치를 누르자 굉음과 함께 가방이 산산조각 나 공중으로 날아갔다. 화공약품 사제약품의 경우, 충격파가 30m 정도 떨어진 곳에서도 느껴질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이 사건 이후 서울 시내 곳곳에서 폭발물 의심 신고가 잇따라 경찰 특공대가 출동하기도 했다. 사제폭탄 모방범죄로 확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았다. 인터넷에 사제폭탄 제조 사이트도 존재하는 데다 사제폭탄 제조법도 자세히 나와있어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도 쏟아졌다.

사회적 관심 끌려
사제폭탄 폭발 시도


이 뿐 아니다.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서울역 사제폭탄 테러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인 지난 6월 국회 정문 앞에서 사제폭탄 폭발 시도가 있었다.

민원 처리에 불만을 품은 김모(45)씨가 기계설비공장 근무 당시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폭발물을 제조한 뒤 국회 정문 앞에서 폭파시키려 했으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미수에 그쳤다.

김씨는 인화성 물질과 설탕으로 만든 폭발물질에 선풍기 타이머와 점화장치를 연결한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김씨는 점화장치를 이용해 폭파시키려 했으나 불이 붙지 않자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당시 사건은 김씨가 자수하면서 일단락됐다. 경찰 조사에서 김씨는 “2003년 폭행당했다고 신고를 했으나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아 불만을 품었다”며 “인명 피해를 입힐 의도는 없었으며 사회적 관심을 끌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경찰, 사제폭발물
매매행위 내사


사제폭탄 폭발 사건이 잇따름에 따라 경찰은 인터넷상의 사제 폭발물·독극물 매매 행위 139건을 두고 내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은 지난 6월 13일부터 26일까지 인터넷 상에서 사제폭발물이나 독극물을 사고판다는 내용 139건을 내사 대상으로 분류해 정식 수사 착수 여부를 논의 중이다.

포털 사이트 등에서는 폭탄 등의 단어로 검색하면 각종 폭탄 제조법을 손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현행 총포·도검·화약류 등 단속법 제3장 제10조에 따르면 허가 없이 총포·도검·화약류·분사기·전자충격기·석궁을 소지하기만 해도 불법이다. 폭탄을 소지하는 것 자체가 불법인 것이다.

이 뿐 아니라 폭탄 제조시 이용될 수 있는 물질들도 쉽게 구매할 수 있어 화학물질 관리 시스템을 재정비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질산암모늄 등 69종의 유해 화학물질을 판매할 때 구매자의 신원과 용도 확인을 의무화하는 ‘유해화학물질관리법 개정안’이 지난해 말 국회에 상정됐으나 현재까지 통과되지 못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G50 앞두고 안전준비태세

한편 경찰은 내년 3월 서울에서 개최되는 G50 핵안보정상회의를 앞두고 폭탄 테러 경계에 나섰다.

47개국 정상과 3개 국제기구 수장이 참석하는 핵안보정상회의는 대형 국제행사다. 또 내년 4월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 정상회의, 미주지역 정상회의, 브릭스(BRICs) 정상회의 등 정상들의 행사가 몰려 있다. 이 때문에 경찰은 핵안보정상회의를 앞두고 안전준비태세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지난해, G20을 앞두고 폭탄 테러 공포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것으로 비춰 이번 핵안보정상회의를 앞두고 각종 안전 문제가 우려되고 있다. 통상 정상회의 등 국제적 행사를 앞두고 테러리스트들의 주요 활동 지역을 비롯해 각국 정상과 대사관을 노린 폭탄 테러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G20을 앞두고 우편물 공포가 확산된 적 있다. 그리스가 발송지인 소포폭탄이 유럽 각지로 발송된 것이다. 예멘에서 미국으로 부쳐진 폭탄소포를 시발로 전 세계적으로 우편 테러 시도가 잇따랐다. 이 때문에 유럽 국가 대부분은 예멘발 우편물과 항공화물 반입 자체를 금지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G20 당시 각국 정부의 보안도 대폭 강화됐다. 또 군·경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다양한 대응책을 마련했다. 당시 최고 수준의 군사대비태세 돌입은 물론 대북 감시수준을 대폭 강화했으며, 테러에 대비한 모의연습과 실제훈련으로 만반의 태세를 갖춘 바 있다. 경찰은 또 G20 정상회담 당시 경찰특공대를 전진 배치해 24시간 출동태세를 갖추는 한편 지하철 환승역 등 사람이 몰리는 846개소를 지정해 인력을 배치했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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