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오후 목동 방송회관에서 진행된 한국TV드라마PD협회 주최 세미나 'TV 드라마 위기와 출연료 정상화'에서 김진웅 선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발제를 하고 있다.

전 세계가 경제난에 허덕이는 요즘. 한국 연예계도 사상 최악의 불황을 겪고 있다. 방송사와 제작사는 생존을 위한 몸집 줄이기에 나섰다. 가장 먼저 칼을 댄 부분은 ‘출연료’. 비정상적으로 증가한 출연료를 잡아 위기를 극복한다는 방침이다. ‘출연료 상한제’까지 논의되는 가운데 어려운 제작 환경에 공감한 스타들의 출연료 자진 삭감도 잇따르고 있다. 연예계의 ‘뜨거운 감자’, 출연료에 대해 살펴본다.


“출연료 할인합니다”

톱스타들의 출연료 자진 삭감이 잇따르고 있다. 대표적인 한류스타이자 두터운 친분을 자랑하는 권상우와 송승헌, 소지섭이 대표적이다.

지난 2일 권상우는 차기작인 드라마 <신데렐라 맨>의 회당 출연료를 1500만원 이내에서 계약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는 전작인 KBS 드라마 <못된 사랑>의 회당 출연료 5000만원의 4분의 1 수준이자 최근 방송사 관계자들이 제시한 출연료 상한선이다.

권상우는 출연료 자진 삭감과 관련, “어려운 드라마 제작 현실을 충분히 이해하며 출연료 상한선제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출연료의 10%를 연예인 봉사모임 단체 ‘따사모’(따뜻한 사람들의 모임)에 기증해 어려운 선배, 동료 배우들을 돕겠다고 했다.

친구 송승헌도 몸값을 낮췄다. 현재 출연 중인 MBC <에덴의 동쪽> 회당 출연료의 ‘50% 자진 삭감’이라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린 것.

지난 3일 송승헌 소속사 엠넷미디어는 “일단 50%를 삭감하고 드라마가 손익분기점을 넘기면 해외 판권 수익에서 이를 받는 것으로 출연 계약을 수정했다”고 밝혔다. 계약 수정 이유는 권상우와 마찬가지로 ‘드라마 제작 현실의 고통 분담’이다. 드라마가 인기를 얻더라도 제작사 및 스태프들은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어려움을 분담하고 싶다는 것.

소지섭 역시 내년 2월에 방영되는 MBC 드라마 <카인과 아벨> 출연료를 기존 3000만원 대에서 30% 정도 낮은 2000만원 선으로 결정했다고 보도됐다.

중견배우 김해숙도 MBC 드라마 <하얀 거짓말> 출연료를 30% 자진 삭감했다. 언론에 따르면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고 싶어 제작사 측에 먼저 제안했다. 또 “제작비 가운데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출연료를 줄이는데 공감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영화계도 예외가 아니다. 김래원이 새 영화 <인사동 스캔들> 출연료를 낮추는 대신 러닝 개런티를 받기로 했고 봉태규는 역시 <돌 플레이어>에 출연하며 몸값을 ‘반액 세일’했다. 기존엔 2~3억원 정도를 받았지만 이 영화는 1억원에 계약했다.

<영화는 영화다>의 소지섭과 강지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과 <모던보이> 주연배우들,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의 권상우, 이범수, 이보영 등은 출연료 전액 혹은 일부를 투자비로 돌려 제작을 도왔다.


드라마 제작 환경 ‘고사’ 직전

톱스타들의 출연료 자진 삭감 혹은 제작비 투자를 방송사 및 제작사 관계자들은 쌍수 들어 환영하는 분위기다. 출연료 문제가 개선되면 제작 환경에 숨통이 트일 것이라는 것.

현재 영화와 드라마 제작 환경은 고사 직전에 처해 있다.

한국TV드라마PD협회 자료에 따르면 2005년 1월부터 방송 3사가 방송한 미니시리즈 84편 가운데 20여편 만이 수익을 냈다. 제작비는 증가한 반면 방송사의 광고 판매율은 급감한 탓이다.

구본근 SBS 드라마 국장에 따르면 올해 SBS의 광고 판매율은 30% 초반에 불과하다. 11년 전 IMF 때도 60%대를 유지했던 광고율이다.

KBS, MBC도 큰 차이가 없다. 여기에 한류 열풍이 시들해지면서 드라마 최대 수출 시장인 일본 반응도 예전 같지 않다.

그럼에도 드라마 제작비는 계속 상승하고 있다. 지난 달 24일 열린 한국TV드라마PD협회의 기자간담회와 ‘TV드라마 위기와 출연료 정상화’라는 주제로 지난 1일 열린 세미나에서도 이같은 상황이 확인됐다.

당시 참석자들의 주장 및 자료에 따르면 2005년~2007년까지 3년 사이 드라마 제작비는 100% 이상 인상됐다.

2004년 작 <대장금>의 회당 제작비는 1억3000만원이었지만 2007년 작 <주몽>은 2억6000만 원에 달한다.

대작 드라마 증가와 물가 상승에 따른 지출 증가도 제작비 상승 이유지만 가장 큰 원인은 천청부지로 치솟은 배우들의 출연료다.


‘억’ 소리 나는 출연료

‘TV드라마 위기와 출연료 정상화’ 세미나에서 하윤금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연구원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2000년 초까지 주연배우들의 회당 출연료는 100만 원대.

대부분의 배우들이 방송사에 마련한 등급(18등급) 기준으로 출연료를 받았고 자유계약을 맺은 일부 톱스타 몸값도 300만원 대를 넘지 않았다.

하지만 2005년 전도연이 <프라하의 연인>에 출연하며 회당 1천5백만 원을 받은 후 톱스타들의 몸값은 수직상승했다.

현재는 2500만원에서 5000만 원, 그 이상을 받는 경우도 있다. 톱스타의 출연료 인상은 조연 및 인기 중견배우들의 몸값까지 높였고 결국 많을 경우 제작비의 60~70%가 출연료로 지출되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유발했다.

1일 열린 세미나에서 김선웅 선문대 교수가 드라마PD협회 내부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한 자료에 따르면 1회 출연료 기준 배용준은 MBC <태왕사신기>로 2억5000만원, 송승헌은 <에덴의 동쪽>으로 7000만원을 받았다. 권상우(<못된 사랑>)와 박신양(<바람의 화원>), 이정재(<에어시티>)는 각 5000만 원을 받았다. 회당 1000만 원이 넘는 몸값을 자랑한 신인 연기자도 있었다. 배용준의 경우 추정치긴 하지만 일반인들에겐 놀라운 액수.


출연료, 1500만 원까지만?

현재 스타의 출연료와 관련한 또 따른 문제점은 객관적인 책정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국내의 경우 한번 오른 스타의 몸값은 웬만해선 내려가지 않는다. 전작의 흥행 성적과 상관없이 유지되거나 오히려 오른다. 때문에 드라마가 망할 경우 선불로 출연료를 받은 배우는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고 제작사만 부담을 안게 된다.

제작사 관계자는 “조금만 인기가 있다 싶으면 금세 출연료가 몇 배씩 올라간다”며 “반대로 인기가 식고 작품이 실패해도 기존 출연료를 고수하는 스타가 적지 않다. 형평성에 맞지 않는 일 아닌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방송 3사와 드라마제작사는 최근 출연료 상한제를 논의하기도 했다. 배우들의 회당 최고 출연료를 ‘1500만원 선으로 하자’는 것.

또 현행 18등급으로 나눠진 방송사 출연료 기준표를 25등급으로 변경, 자유계약 스타들에게도 적용을 유도한다는 방침도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윤금 연구원은 세미나에서 일본의 출연료 산정 방식을 참고하자는 의견을 냈다. 일본에선 배우의 지난 3년간의 활동 내용 및 성과를 기준으로 잠재시청률을 산출해 출연료 책정 시 이를 반영하는데 우리나라도 이같은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


“출연료 탓만 하지 마라”

현재 적지 않은 배우 및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들이 드라마 및 영화 공멸을 막기 위한 출연료 인하 움직임에 공감을 표하고 있다. 다 같이 살기 위해 일정 부분 양보를 할 수 있다는 것. 드라마의 경우 제작 환경이 이대로 지속되면 다양성이 소멸돼 시청자들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도 배우들의 동참 의욕을 자극하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금액 책정에 있어서는 배우 측과 제작사 관계자들의 의견 대립이 예상된다. 1500만 원이라는 출연료 상한제도 지켜질 지 의문이다. 5000만 원을 받던 배우가 당장 30%의 출연료만 받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강제성을 띄지 않는 만큼 실효성 여부는 불분명하다. 이창섭 MBC 간사도 지난 달 24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출연료 상한선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진 않는다”면서 호소 차원임을 밝혔다.

일각에선 드라마 제작 환경의 어려움을 출연료 탓으로만 돌리는 게 옳지 못하다는 지적도 가한다. 방송사의 무분별한 외주제작 시스템 도입과 스타를 잡기 위한 외주제작사간 경쟁이 지금의 출연료 폭등을 만든 것 아니냐는 것.

탤런트 매니저는 “출연료 비중이 높은 건 사실이지만 출연료만 줄인다고 좋은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며 “출연료 인하와 더불어 콘텐츠 개발에 힘써야 할 것이다. 좋은 작품이 있다면 배우들도 얼마든지 몸값을 낮출 수 있다”고 목소리 높였다.

한편 출연료 축소가 ‘조·단역 배우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라는 걱정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제작비가 삭감되면 자연히 조,단역 배우들의 출연료도 내려갈 수밖에 없지 않겠냐는 것.

실제 지난 1일 세미나에 참석한 김성환 한국방송연기자협회 이사장은 “지난 40~50년 간 오르지 않은 출연료가 한류 흐름을 타고 급등했을 뿐 출연료는 늘 정상이었다”며 “연기자협회에 등록된 회원 1670명 중에서 200여 명만 출연료로 생활이 가능하고 나머지는 복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한국TV드라마PD협회 관계자들은 “지금의 드라마 제작 환경을 2005년으로 되돌려야한다”고 했다. 제작비와 출연료를 그때와 똑같이 만들자는 게 아니라 당시처럼 다양하고 좋은 드라마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을 다시 조성하자는 호소다. 불황 타개를 위한 방송사 및 연예 관계자들의 노력이 계속되는 가운데 ‘거품 가득하다’는 지적을 받아온 스타 출연료가 어떤 식의 변화를 겪고 자리매김할 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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