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벌이만 급급…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CSR)’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중국, 브라질 등 신흥시장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들은 해당 국가에서 CSR 활동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사업의 기회마저 잡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하지만 한국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들은 그간 기부금을 포함한 CSR 활동에 상대적으로 무관심했다. CSR에 대한 요구가 국내 대기업에만 집중되면서 외국계 기업은 사실상 ‘면죄부’를 받아온 셈이다.

돈은 국내서 다 벌고 배당금은 본국으로 빼돌려
한국 최고책임자 대개 법인장 정도…재량권 없어

SC제일은행(5000억 원)·오비맥주(3700억 원)·에쓰오일(2795억 원)·르노삼성자동차(1400억 원)·유한킴벌리(1300억 원)·동우화인켐(1203억 원) 등의 공통점은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이다. 괄호 안에 금액은 이들 기업이 최근 진행한 배당금이다. SC제일은행과 한국화이자제약은 지난해 2858억 원, 96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는데도 배당을 했다.

문제는 이들 몫의 배당금 상당 규모가 이달 안에 해외로 송금될 예정이다. 각종 로열티(사용료) 명목으로 지급하는 금액까지 포함하면 기업의 해외 송금액은 수조 원에 육박한다.
이 때문에 한국 사업장이 외국계 기업 해외 본사의 ‘현금인출기’로 전락했다는 비판적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

고배당 해외 송금
결국 국내에선 0원

이 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기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버버리코리아, 페라가모코리아, 프라다코리아, 불가리코리아, 스와치그룹코리아 등 5개 회사가 한국에서 벌어 본사에 배당한 액수는 1117억 원에 이른다. 최근 4년간 배당한 금액만 2558억원. 이미 출자금의 10배 이상을 회수한 상태다.

업체별로 보면 프라다코리아의 매출이 3551억 원으로 가장 높았다. 프라다코리아는 지난해 당기순이익(567억 원)보다 높은 800억 원을 배당했다. 이어 스와치그룹코리아(3055억 원), 버버리코리아(2394억 원), 페라가모코리아(1392억 원), 불가리코리아(953억 원) 순이었다.
이들 기업들의 배당금은 적게는 수십억 원에서 많게는 수백억 원으로 그해 순이익에 육박하는 돈을 배당으로 보냈다. 버버리코리아가 유일하게 배당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 명품업체들이 지난해 낸 기부금은 모두 합쳐 1249만 원에 불과하다.
지난 4년간 지출한 기부금을 다 합쳐도 1억 원 정도에 불과하다.
지난해 담뱃값 인상으로 최대매출을 기록한 외국계 담배업체들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월 정부는 흡연율을 낮추겠다는 명분으로 담배 한 갑당 1550원이었던 세금을 3318원으로 올렸다. 이에 따라 평균 2500원이던 담뱃값은 4500원이 됐다.

담뱃값이 인상되면서 출고가 및 유통 마진이 950원에서 1182원으로 24% 증가했다. 그 결과 이들 기업들은 지난해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말보로의 제조사 필립모리스의 한국법인 필립모리스코리아는 지난해 영업이익이 2519억2100만원으로 전년 대비 35.98% 늘었다.

이 기간 매출과 순이익은 각각 8108억7000만 원, 1917억7100만 원으로 각각 전년 대비 15.34%, 37.66% 급등했다.
던힐 등을 생산하는 BAT코리아 역시 2014년 적자에서 흑자 전환했다. BAT코리아의 영업이익은 2014년 마이너스 56억6700만 원에서 2015년 115억6900만 원으로 담뱃값 인상 효과를 톡톡히 봤다. 매출액은 3910억2900만 원이다. 순이익은 2014년 마이너스 96억8900만 원에서 지난해 270억7600만 원으로 대폭 늘었다.

하지만 이들 회사들도 다른 외국계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한국 사회에 대한 기여나 공헌에는 인색했다. 이익의 대부분을 본국에 배당금으로 송금한 것으로 드러났다. 필립모리스코리아는 2015년 순이익 1917억7109만1452원을 외국계 대주주 미국법인 필립모리스인터내셔널로 100% 송금했다.

더욱이 이 회사는 대주주와 상표권 계약을 하고 상표권 사용의 대가로 순매출액의 6~12%를 로열티로 추가 지급해 사실상 100%를 훌쩍 넘기는 배당성향을 보였다. 필립모리스코리아가 지난해 지급한 로열티만 508억 원이었다.

BAT코리아 역시 2015년 순이익 270억7627만5674원에서 손실분을 제외하고 남은 173억8722만8000원 전액을 주주인 미국법인 ‘브라운앤드윌리엄스(B&W)홀딩스’에 배당금으로 지급했다.

반면 한국에 대한 재투자나 사회 환원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실제로 필립모리스는 2014년 3억4200만 원, 지난해 3억7100만 원을 기부하는데 그쳤다. BAT는 2014년 6800만 원에서 줄어든 5600만 원을 기부했다. 국내 담배 업체인 KT&G가 매년 수백억 원을 기부금으로 내놓는 것과도 대조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외국계 기업들은 한국시장에서 적지 않은 이익을 내고도 한국사회에 대한 기여나 공헌에는 인색하다”고 지적했다.

기업관이 다르다는
인식부터 바뀌어야

그러면 외국계 기업들이 기부금에 인색한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여러 가지 분석을 내놓는다.
그 중 가장 많은 대답인 ‘기업관이 다르다’는 점을 꼽는다. 서구에선 돈을 벌어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하면 그걸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한국의 최고 책임자가 대개 법인장 정도여서 기부금에 대한 재량권이 없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또 일부에서는 외국기업들이 아프리카나 동남아 등 소외된 저개발국가에서는 많은 사회공헌활동을 펼치지만 한국은 그나마 정부의 사회보장이 정비돼 있어 기업들이 그럴 절박한 이유가 없는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견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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